고향, 빨간 팥 아이스깨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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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빨간 팥 아이스깨끼의 추억
  • 은옥주
  • 승인 2018.08.01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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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어린 날의 동네 풍경 - 은옥주 / 공감미술치료센터 소장

 
어머니는 대구 중앙통에 맞춤의상실(드레스양장)을 경영하고 계셨다. 엄마 가게 옆에는 뱀탕집이 있었다. 그 곳에는 촘촘한 망으로 만든 토끼장 같이 생긴 장이 여러 개가 있었다. 그 장 안에는 커다란 구렁이 들이 알록달록한 것도 있고 시커먼 것도 있었다. 가늘고 긴 뱀들은 같이 엉겨서 천천히 스르르 스르르 움직이고 있었다. 혀를 날름날름 거리는 구렁이 얼굴이 무서웠지만 나는 자주 뱀 구경을 갔다.

뱀탕집 앞에는 커다란 솥에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 솥 위에는 손잡이가 세로로 2개 달린 나무 뚜껑이 있었고 커다란 돌을 얹어 놓았다. 뱀탕집 쪽지고 깡마른 몸매의 아주머니는, 뱀 장에서 손님이 고른 뱀을 꺼내서 주둥이를 꼭 잡으면 아주머니 팔에 뱀이 칭칭 감겼다. 그 뱀을 뜨거운 솥에 순식간에 집어넣고는 나무 뚜껑 위의 돌을 꾹 눌렀다. 뱀이 뜨거워서 펄쩍펄쩍 뛰는지 뚜껑이 들썩들썩했다. 한참을 꾹 누르면 들썩거리던 움직임이 조용해졌다. 이상한 노린내가 진동을 하고 누런색 국물에 기름이 동동 뜨는 뱀탕이 완성되었다. 그 가게에는 아저씨들이 와서 뱀을 골라서 잡아 끓여서 짙은 흑색 뚝배기에 담아 맛있게 먹던 것이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도 아저씨 손님들이 많았지만 삼복더위에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서 먹을 만큼 붐볐던 기억이 난다. 아마 보양식으로 최고라고 해서 맛집으로 유명한 가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게 2층 바느질 공장에서 언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났다. 다들 놀라서 무슨 일인가 가봤더니, 공장 언니가 퇴근하려고 우산을 걸어 놓았던 것을 내리려고 하는데, 우산위에 혀를 날름거리며 뱀 한 마리가 노려보고 있었더란다. 옆집에서 가끔 뱀이 탈출하는데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도망 온 것이었다. 뱀탕집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뱀의 주둥이를 꼭 잡고 팔에 칭칭 감아서 데리고 갔다. 그 뒤부터 나는 공장에서 인형옷을 만드려고 조각 천을 주우러 올라갈 때 뱀이 나올까 무서워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요즘도 TV나 동물원에서 뱀을 보면 징그럽고 무섭긴 하지만 색깔과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는 습관은 어릴 때의 그것과 흡사한 것 같다.
 

 



뱀탕집 옆에는 어머니의 단골 미장원이 있었고, 또 몇 개의 가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거리 모퉁이에 있던 아이스깨끼 가게가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여서 일 것 같다.

그 가게는 여름이 되면 빨간 팥을 넣은 팥 아이스깨끼와 우유를 넣은 흰색 아이스깨끼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아저씨가 아이스깨끼 모양의 틀에 주전자로 쭉 팥물을 부으면, 기계가 덜커덩덜커덩 하며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고는 막대기를 꽂아 아이스깨끼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름에 더워서 땀이 삐질삐질 날 때면 엄마에게 빨간 돈을 달라고해서 아이스깨끼 가게에 자주 갔다. 나무통을 맨 오빠들이 여러 명 줄을 서 있었고 순서대로 아저씨는 통 안에 아이스깨끼를 가득 담아 주었다. 그 통 위에는 색색의 동그란 뺑뺑이가 있어, 그것을 빨리 돌리면서 바늘이 달린 깃털을 꽂으면 거기에 가끔은 1개 더 주는 말하자면 원 플러스원에 걸린다고 했다. 나는 항상 공장 직구를 했기 때문에 뺑뺑이가 돌리고 싶어서 오빠들한테 졸랐던 기억이 난다. (졸라서 돌아가는 뺑뺑이에 꽂아도 한번도 원플러스원이 걸리지 않아 실망을 많이 했었다.)

그 오빠들은 대구 시내를 그 나무통을 메고 아이스~깨끼이~하며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다 팔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와 물건을 또 받아가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나무젓가락에 붙어있는 팥 아이스깨끼를 돌려가며 살살 녹여 먹으며 그 기가 막힌 맛 때문에 여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가게 손님들은 선물로 자주 아이스깨끼 한 봉지씩을 들고 오곤 했는데 그럴 때는 그 아줌마들이 얼마나 고맙든지…….

지금도 나는 여름이면 그것과 비슷한 ‘비비빅’이라는 아이스깨끼를 자주 사먹는다. 고향의 맛이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은 입맛에도 그대로 남아 늘 그것과 같은 맛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건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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