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의 양상 혹은 육체로부터의 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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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양상 혹은 육체로부터의 탈주
  • 정민나
  • 승인 2018.08.0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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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정민나 / 시인



자전거는 늘 스쳐 지나는 것의 순간을 달린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자전거의 뒷바퀴는 자신의 앞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간다. 굴린다는 단순한 동력이 0.01mm 두께의 어스름을 뚫고 그 너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투명과 불투명의 어스름을 건넌다. 어 스름의 정막에서 풍기는 냄새를 추적하느라 자전거는 살이 찔 겨를이 없다. 뼈만 앙상한 貧者가 되었다.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엔 중간 기착 이나 공중 급유 없이 1만 피트 상공을 통과하는 구름의 체액이 보인다.
 
- 장인수, 「자전거는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동한다 」 전문



필자의 아파트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일명 문고이다. 이 문고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들이다. 주민이 이사 갈 때 간혹 다 죽어가는 화분을 문고 앞에 놓고 간다. 어쩌다 보니 필자가 그것들을 들여놓고 물을 주고 가꾸게 되었다. 여름이면 문고 밖 테라스에 그동안 끌어들인 화초들을 내어놓고 비와 바람 햇볕을 마음껏 만나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 동안 실내에서 지낸 화초들을 밖으로 내 놓았다.

며칠 후 명랑하고 청초한 화초들이 새까맣게 타서 잎사귀를 떨구기 시작했다. 해피트리, 군자란, 다육이 염좌가 내리쬐는 태양 앞에서 속수무책 시들고 있었다. 필자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화분을 서늘한 실내에서 뙤약볕에 내놓기 전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어야 했다는 것을……. 사경 속에 든 화초들은 어느 순간 작정하고 시름시름한 잎들을 스스로 떨구어 내기 시작하더니 한동안 습기와 열기 속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해피트리는 움이 돋기 시작했다. 군자란도 싹을 내밀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를 탐색하여 재정비된 환경 속에서 다시 생명의 잎새를 피어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지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말한 현상학자는 메를로 퐁티이다. 이런 몸의 정치학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 현재의 상태를 스스로 느낀다는 것. 프랑스 한적한 소도시로 전근하게 된 필자의 딸은 최근 자전거를 사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비교적 운동 신경이 둔하지 않아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낯선 모퉁이를 돌다가 돌부리에 채어 크게 넘어졌다. 그녀가 다친 것이 부주의에 의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생소한 지리와 바뀐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무의식중에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메를르 퐁티는 세계 인식의 통로가 정신과 육체로 구분되지 않고 지각이라는 자율적인 의식으로 통합된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다.

딸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피아노의 음율처럼 그녀의 일상이 익숙하거나 심원한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면, 위 시에서처럼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동하는” 자전거처럼 “뒷바퀴가 자신의 앞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가는 일상이었다면, 그녀는 육체의 피나는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혹은 마음의 근육을 살피면서 그녀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재조정했더라면 그녀 삶의 단순한 동력 또한 “0.01mm 두께의 어스름을 뚫고” 지나갔으리라 “그 너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 넘어지지 않고 “투명과 불투명의 어스름을 건너”갔으리라.

뜨거운 태양 아래 화초들이나, 미지의 땅에 발 들여놓은 그녀나, 어스름의 정막에서 냄새를 추적하는 자전거는 모두 같은 처지다. 식물도, 사람도, 사물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갱신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중간 기착이나 공중 급유 없이 1만 피트 상공을 통과하는 구름의 체액”처럼 말이다.

피아노 위에 손을 얹어 진동을 느끼면서 음악을 듣던 헬렌켈러처럼 다행히 그녀는 지금 새로운 환경에 사뿐히 안착하고 있다. 온몸으로 체험된 지각이 그녀의 의식을 생성하고 그것이 계속해서 그녀를 추동하는 삶이 된다면 바랄 게 없다. 고립되고 정체된 육체로부터 탈주를 꿈꾸는 것은 끊임없이 교정되는 정체성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제 3의 가능성을 겨냥한다. 그것에 필자는 ‘자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너는 바람장수
아니, 호박장수
다른 아침에서 온 떠돌이 신발장수
 
너는 짐짓 자신의 가슴 안으로 손을 찔러 넣어
쪼그라든 부레를 꺼내 흔들어 보이곤 했다
“알고 있었니 우리가 바다라는 거”
똥그랗게 물고기 눈으로 올려보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주곤 했다
 
저문 강물 쪽으로 서 있던 사진 속 아프가니스탄의 그 풍선장수처럼
너는 자전거 뒷바구니 가득 풍선다발을 매달고
바다시장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키다리 풍선 장수
 
- 류인서, 「풍선장수」 부분


 

세계나 인생의 도처에는 재난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공화국으로 지리적인 요건 때문에 강대국들의 공격을 받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편견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아파한다. 갈등과 다툼은 끊이지 않고 그 속에서 연약한 아이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사진 속 풍선장수는 전쟁이 일어난 과거의 저문 강물 쪽으로 서 있다. 하지만 시 속의 ‘풍선장수’는 바람처럼 현재의 이곳을 지나고 있다. “자전거 뒷바구니 가득 풍선다발을 매달고” 전쟁같은 바다시장을 건너간다. 「풍선장수」는 순간순간의 상황 속에서 바람장수, 호박장수, 떠돌이 신발장수로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주체는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조정된다. ”자전거 뒷바구니 가득 풍선 다발을 매달고 / 바다 시장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키다리 풍선장수“는 경쾌하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발산한다. 그 어디에도 남루한 그림자가 얼비추지 않는다. ‘탈경계’와 ‘탈정체’와 관련된 ‘노마드’에 비추어 그는 분명 변방인이지만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똥그랗게 물고기 눈으로 올려보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주기 때문이다. 아니 자유를 불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쪼그라든 부레를 활짝 펴고 물고기 같은 아이들이 바다(바다시장)을 이리저리 헤엄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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