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 생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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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 생채기
  • 유광식
  • 승인 2018.09.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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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유광식 / 사진작가
미추홀구 주안4동, 2018 ⓒ유광식
 
 
도시에 이사를 온 다음날 나는 집을 잃어버렸다. 섬 아닌 낯섦을 느낀 그날, 다짐을 했다. 다시는 집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도시는 같은 모양의, 높은 기세로, 회색 평야처럼 집들이 빼곡하다. 그리고 30년, 50년 자식을 품고 지낸 세월이 지난 후에 어느 골짜기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개발풍이 평온했던 집안과 동네분위기를 헤집어 놓게 된다. 누구는 부채질, 누구는 방패질을 하며 집단지성의 혼란과 분리가 시작된다. 이 후 여러 가지 생채기가 나는 것이다.

주안 동네가 거친 시즌을 시작했다. 주안 2·4동은 이제 의료복합단지로 뒤바뀌기 위해 2~5층 규모의 주거단지가 순차적으로 정리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사를 가면(다시 올까?) 집은 비워지고 냄새와 재만 남게 된다. 기존의 질서는 사라지고 분위기는 뭔지 모르게 험악해진다. 빨간색 볼드체 'X' 표시가 던지는 메시지는 아이와 어른에게 모두 같은 이해일 것이다. 더 이상 덤벼들지 말며 침범시에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 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 말이다. 수많은 가족을 품었던 집들은 허우대만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하다. 부서질 정도로 대를 이어(관리 필수) 사용하는 오래된 집들의 단단함이 경이로울 만도 한데, 지금 우리는 너무도 과격한 선택(정치)과 생산(이익)의 논리 반복에 쏠리고 있다. 생채기가 나면 쓰리다. 우리는 진정 ‘새 살이 솔~솔~ OO연고’만 믿고 도시 바닥을 긁어도 되는 걸까? 의료단지도 필요하겠지만 그 많은 주택과 골목길, 사람들이 단박에 해체되는 것이 안쓰럽다. 

집 밖에 나가면 필요로 하는 소비시설이 다 있다는 사실은 집안에 자신의 삶을 가두는 이유로도 작용한다. 생채기가 깊다. 이 지역 재정비촉진지구에 당선된 새 이름은 새로울 것 없는 ‘뉴타운’이다. 미추홀구 새마을! 감동도 놀라움도 없다. 내 것도 아닌데 잃어버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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