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차라리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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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차라리 폐기하라
  • 박영일
  • 승인 2010.11.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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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박영일 교수 /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통상장관회의 이틀째인 9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쟁점현안 해결을 위한 '끝내기 담판'을 위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로 향하며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 동안 밀실협상 의혹을 야기하던 한미 FTA 재협상이 한국 측의 굴욕적인 양보로 끝을 맺는가 보다. 앞으로 한국 무역체제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제도 전반을 규정할 한미 FTA가 촌스럽고 경망스럽기 이를 데 없는 G20 분위기에 묻혀 휩쓸려가고 있다. 

원래 한미 FTA는 2007년 6월 노무현 정부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타결했었다. 협상 초기부터 밀실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불평등조약이라고 비난됐었다. 그 결과 지지 세력의 대다수가 이반하고 신자유주의의 화신이라 할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역사적 비극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쇠고기 전면수입을 약속하는 등 FTA 비준에 종작없이 덤벙댔다. 다행히도 전국을 뒤덮은 촛불이 겨우 진화했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한미 FTA가 비준되어 효력을 발생했더라면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세계적 금융위기와 뒤이은 오바마 정권의 출범으로 한미 FTA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었다. 한미 FTA에 비판적인 미국 자동차 업계와 전미 자동차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오마바 대통령과 민주당 지배의 미국 의회는 취임과 동시에 재협상을 제기했다. 반면에 한미 FTA에 그렇게도 집착한 이명박 정부는 조속한 비준을 위해 미국에 매달린 나머지 변변한 대응 하나 제대로 한 흔적이 없다. 

오바마 정부가 원래 불평등협약이었던 협정에 추가 요구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측 양보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끝내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누가 보면 기존 협정이 한국에 유리하고 미국에 불리한 것으로 여기질 않겠는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한미통상교섭은 한국통상정책의 총체적 실패와 오류, 무능이 되풀이된 과정이었다. 

졸속과 굴욕이 낳은 기존 협정

기존 한미 FTA 원안은 미국이 맺은 FTA 중에서 상대국에게 최악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한국에 불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막론하고 국민이 결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협상 원칙으로서 주고받음이 없이 일방적인 양보만 있었고 국익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다. 2007년 타결에 앞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시 추진 중인 한미 FTA협정에 반대하고 유보하거나 더 낮은 수준의 FTA를 권장한 바 있다. 
 
첫째, 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당면과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인데, 한미 FTA는 양극화를 더욱 조장한다.  

둘째, 무역의 확대는 국민경제 전체로서 이익이 있더라도 국내에서 산업·계층 간에 이해관계를 달리하여 수출이 확대되는 산업에는 유리하지만, 수입이 확대되는 산업에는 불리하다. 따라서 FTA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무역상대국 상대의 국제협상과 동시에 국내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협상을 소홀히 하여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셋째, 한미 FTA는 단순히 무역확대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협정이 조인되면 적어도 50개 이상의 국내법을 재·개정해야 할 정도로 한국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이다. 요컨대, 미국과 FTA는 미국형 신자유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우려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SSM(기업형 슈퍼마켓) 관련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넷째, 받은 것은 없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 불평등협정이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서비스시장 개방의 네거티브 시스템, 래칫(ratchet) 조항, 스냅백(snap-back) 조항,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금융서비스의 전면 개방 등 경제적 손해만이 아닌 국가의 경제주권을 침해하는 수많은 독소 조항이 들어 있다. 협정에서 우리나라에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의무규정이 55개 조항인데 반하여 미국의 의무조항은 7개에 불과하다고 한다(참고로 미국이 체결한 FTA 협정에서 미국이 지켜야 할 조항과 상대국이 지켜야 할 조항의 비율은 호주 1:0.8, 파나마 1:1.5, 칠레 1:2, 페루 1:3, 싱가포르 1:4.5인데 비하여 한국은 1:8로 가장 불리하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는 정치 안보적인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한국 측 협상대표가 공언한대로 한미 FTA는 안보동맹에 경제동맹을 추가하는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공존의 신질서를 확립하는데 매개자 역할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의 화해협력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주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당한 요구와 한국의 한심한 대응

양국이 이미 합의·서명한 협정문을 자국 여론을 핑계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전례가 드문 오만불손한 일이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존 협정내용 자체가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미국은 업계, 노조, 의회의 반대를 협상력으로 활용하면서 한국의 추가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 의제는 쇠고기와 자동차분야의 한국시장 접근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유보한, 그것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지켜낸, 쇠고기를 연령과 부위 제한 없이 전면 수입하라는 요구다(수입 제한은 원래 FTA 협정과 관계없이 위생조건에 해당되는 것임). 다음은 미국자동차의 한국시장점유율 확대를 보장하기 위해 세제, 환경기준, 안전기준을 완화하라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 안전을 아랑곳하지 않은 주권침해에 해당한다.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국민을 향해서는  ‘재협상은 없다’, ‘실무협의일 뿐’이라고 속이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요구를 수용하는데 급급했다. 미국으로부터 재협상 필요성이 제기된 지 3년이 되가는데도 효과적인 대응조차 없었다. 재협상에 지니고나갈 변변한 요구사항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 발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금융시장 전면 개방에 관한 재점검을 요청했고, 당연히 한미 FTA의 재협상을 서둘러야 했다. 원래 원인제공자이자, 한미 FTA체결을 위해 일로매진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조차 미국 발 금융위기가 발발한 후에 재협상 필요성을 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재협상 노력을 외면한 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수용범위에 대한 논의만을 대비했다. 재협상의 내용, 일정, 장소마저 비밀로 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고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말하자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내 손으로 뽑았으니 어찌하리라 체념하기에는 착잡하고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폐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일찍이 통상과 관련된 국제협상에서는 “The strong do as they can, the weak suffer as they must"란 말이 있다. 한미FTA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재확인할 수 있었다. 자국 여론을 핑계로 수정을 강요하는 미국의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국민을 상대로 이중플레이를 하고 속이면서 반대를 협상력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억압만 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비애에 젖는다. 

이럴 바에야 수용불가를 천명하고 협정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정도다. 물론 미국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가 그럴 능력이나 용기도, 의지도 없음을 잘 알기 때문에 공허한 주장이지만. 한국사회는 지금 진퇴의 기로에 서있다. 국민을 배제한 밀실 협정이라면 아무런 정당성도, 합법성도 인정할 수 없다. 국회비준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국민적 저항을 부딪쳐 홍역을 치를 것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이미 신자유주의를 거부했다. 양극화를 극복하고 보편적 복지사회를 지향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래서 집권 한나라당조차도 보편적 복지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신자유주의의 산물인 현재 추진 중인 한미 FTA는 폐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 필요하다면 명실 공히 무역확대만을 겨냥한 보다 낮은 수준의 FTA를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더라도. 

끝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이미 합의하여 서명까지 끝낸 협정문을 자국 여론을 무기로 수정을 강요하는 것은 패권적인 발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여론을 수렴함이 없이 민의에 반하여 밀실에서 졸속으로 임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더욱 명심할 점은 한미 FTA로 인하여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될 경우, 한국사회에 반미의식이 고조될 것이고 한미동맹체제에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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