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연을 기획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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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연을 기획하는가
  • 이권형
  • 승인 2018.09.1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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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어쩌다 보니 음악을 하면서 살고 있다. 직접 하기도 하지만, 다른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기획 색깔에 따라 그 조율 과정 자체가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음악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초기 가톨릭 교황들은 교회의 권위를 중앙집권화하기 위해 모든 교회의 전례 의식과 성가를 통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각 지역의 성가를 집대성하고, 재정비하는 작업도 이뤄졌는데, 그 후 천년이 넘도록 공식적으로 전래된 이 음악을 두고 그것을 정비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the Great)’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라고 한다. 전통적인 그레고리안 성가에는 기악이 포함되지 않는데, 중세 교회에서 음악은 오로지 가사 전달을 통해 종교적 분위기를 고취하고 신성한 교리에 대한 영적 체험을 이끌어 주는 도구적 역할만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가사가 없는 기악은 교회에서 들려질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가사 전달을 방해하는 요소라 여겼다. 인간의 몸 자체가 악기가 되고, 노래하는 행위 자체가 신을 찬양하는 의식의 한 부분인 것이다.

교회의 건축과 예배당의 분위기, 기악을 배제해 가사 전달에 유리한 단선율의 성가. 이 모든 형식의 목적은 분명하다. ‘의식(Ceremony)’의 권위를 위한 것이다. 공연을 기획할 때 그러한 종교의식의 요소들을 참고하기도 한다. 형식미를 갖추면 ‘의식’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흔히들 “분위기 잡는다” 이런 표현 쓰지 않나. 중세 교회 의식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오로지 하나의 신이나 조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며, 고로 통일된 형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거다. 공연을 기획할 때의 고충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소개하고자 하는 음악의 개성이 다양한 만큼 그에 따른 다양한 형식적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집>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는 은퇴한 노년의 기획자 ‘제리’가 등장한다. ‘제리’는 딸 상견례 차 로마에 갔다가 샤워하며 노래하는 사돈어른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고 감탄한다. 어떻게든 그를 무대에 세우려 해보지만, 문제는 그가 샤워할 때 빼고는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다는 것. “샤워할 땐 너도나도 가수”인 거다. ‘제리’는 샤워할 수 없는 실제 오디션장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자 묘수를 떠올리고는 실행해버리는데, 그 묘수라는 게 오페라 무대에 샤워 장비를 설치해 샤워하면서 노래하는 ‘샤워 공연’을 세우자는 거였다.


나는 이 기상천외한 콩트가 공연 기획자의 고충을 절묘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제리’의 ‘샤워 공연’을 두고 욕심이 과했던 기획자의 무리수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좋은 가수를 소개하려는 형식적 고민과 과감한 추진력을 높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극 중 ‘제리’는 결국 최악의 기획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발견한 훌륭한 목소리를 무대에 소개하는 데엔 성공한 셈이다.

당연히 중세 유럽에도 지역마다 다양한 음악이 존재했을 거다. 기보 체계가 없었으니 대부분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고, 이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강한 권위를 배경으로 집대성되어 구전된 그레고리안 성가는 여전히 남아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떤 음악은 기록되고, 어떤 음악은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이왕이면 좀 더 다양한 음악이 힘을 받을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 생태의 다양성이랄까. 모든 교회가 그레고리안 챈트만 고집한다거나, 길거리에 건전가요만 나오는 세계에 산다면 재미없지 않겠나. 대중적 성과를 떠나 그런 것도 계속 기획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영화 로마 위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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