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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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어요.
  • 은옥주
  • 승인 2018.09.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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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은옥주 / 미술치료공감센터 소장



이번 추석은 왜 이렇게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한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명절에 제사 드리던 모습도, 환하게 보조개를 지으며 웃으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멋진 양복을 입고 큰 키에 준수한 얼굴로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온 동네 사람들이 반가워하며 인사하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오셔서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으로 일하시던 아버지는 참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아내와 성격차이로 인한 이혼과 재혼은 아버지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고 아픔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재혼 후 새엄마와 같이 사는 동안 나는 그의 우유부단함과 이기적인 성품에 몹시 실망했었다. 새엄마의 무리한 요구나 나에 대한 질책이 이어질 때 아버지는 비겁하게도 자리를 피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미웠고 싫었고 증오하기까지 했다.
  
“이중인격자” 내가 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붙여준 별명이었다. 
고 2때 대구를 떠나 서울 엄마 집으로 왔다. 그리고 공부도 마치고 결혼도 하고 두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 26년이란 세월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봄날 대구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2년 전부터 아버지와 같이 인천에 올라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내가 살고있는 집과는 차로 2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살고계셨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 은근히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여 두 아이를 데리고 인사를 갔다. 아버지는 교직을 은퇴하시고 사업을 하시다가 재산을 몽땅 날리고 아들이 사는 아파트 문간방에 얹혀살고 계셨다.
 
젊은 날 멋지고 위엄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가 없고 깡마르고 구부정한 초라한 노인 한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새엄마는 사이비종교에 빠쳐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도망을 갔다고 했다. 어느 누구하나 아버지를 챙기는 자식은 없는 듯했다. 나는 자주 찾아가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용돈도 드리기로 작정했다. 식당에 가면 꼭 메모지를 달라고 하고, 없으면 냅킨에라도 멋진 필체로 ‘사자성어’를 쓰시고는 아주 고상한 언어로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요리가 나오는데도 끝이 없으니 짜증이 났다.
 
“아부지, 밥 묵고해요. 다 식잖아요.” 딸의 볼멘소리에도 아 버지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일부러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다음 코스가 나와서 아직 손도 안댄 음식을 가지고 가려하면 그제야 종업원의 서빙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아직 안 묵었어요.” 하며 허겁지겁 앞에 가득히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이미 짜증이 난 내가 옛날 원망스러운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하면 “나는 하늘을 봐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하며 한결같은 말로 내 말을 일축하셨다.
 
그 말만 나오면 숨어있던 분노가 올라와서 드리려던 용돈도 안 드리고 그냥 와 버리곤 했다. 어느 때는 밥 먹다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가 나가버리는 바람에 오기로 내가 2인분을 다 먹다가 배탈이 나서 고생한 적도 있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다시 찾아가고 하는 사이에 10여년이 지나고 많이 쇠약해지신 아버지가 지방에 의사로 성공한 동생 집으로 가시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가장 드시고 싶다는 따끈한 추어탕을 앞에 놓고 앉은 아버지는 다른 날 보다 표정이 많이 달라보였다. 옛날 고향 이야기나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도 하시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셨다. 밥을 다 먹고 아버지는 내 눈을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보시더니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평소 내가 듣고 싶어하던 사과의 말을...
“내가 많이 부족한 아버지였는데, 니가 이렇게 잘 살아 주어서 참 고맙고 미안하데이”
말을 꾹꾹 눌러 담듯이 하시는 한 마디에, 내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마음이 스르르 녹아 버렸다.
“나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그냥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어요.”
우리 부녀는 손을 맞잡고 한동안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서로 눈물을 흘리다가 헤어진 것이 아버지의 진정어린 마지막 말씀이셨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실 아버지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듯 이야기해본다.
“아버지 그때는 아버지를 이해해드릴 만큼의 여유가 없었어요. 이제는 아버지의 고통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또 부모노릇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도 알 것 같아요.
그 때 미안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다 풀렸거든요.”
 
이렇게 부모의 진정어린 사과는 참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내 자식들에게 자주 사과를 하곤한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 생각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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