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마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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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마주하는 법”
  • 한인경
  • 승인 2018.09.2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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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한인경의 시네공간>은 2016년에는 그해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2017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평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다시 주목하는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제  작 : 2011년
감  독 : 스티븐 달드리
출  연 : 산드라 블록, 톰 행크스, 토마스 혼
장  르 : 드라마   
등  급 : 12세 관람가 

 
                                 출처: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어머니 장례 당시 조문 오신 분으로부터 ‘호상’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분의 마음은 헤아려졌으나 정작 딸인 나에게는 조금의 위로가 되지 않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얻는 것도 많이 있지만 반대로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한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복잡할 정도로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각자에게 차이는 있겠지만 다양한 상실을 경험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빨리 잊어라, 세월이 약이다. 실컷 울어라…… 등등 어떤 위로의 말이 각자에게 닥친 상실의 슬픔에 위로가 될까.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자식과 아내를 모두 잃은 50대 남자에게 친구가 ‘괜찮아 넌 건강하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시는 거야. 애들과 부인은 좋은 데 갔을 거야’라고 말했다면 진심 어린 위로였겠지만 과연 이 비탄에 빠진 남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상실로 인하여 깊은 슬픔에 처한 사람을 대했을 때 어떤 애도와 이해가 이루어져야 하는 가에 대하여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이라는 장애를 가진 9살 소년 오스카와 그의 유일한 대화 채널이었던 아버지. 오스카의 표현을 빌자면 the worst day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뉴욕 무역센터 건물 106층에서 회의를 하다가 안타깝게도 사망하게 된 아버지 토마스 쉘(톰 행크스)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고, 자신에게 닥친 상실감을 어떻게 마주하며 또 어떻게 처절할 정도로 벗어나려 애쓰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출처: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제목이 낯설게 보일 정도로 길다. 2005년 출간된 조나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 미국)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한국에선 아쉽지만 미개봉작이다.


첫 장면
텅 빈 하늘에서 구두 신은 남자의 다리 부분이 보이면서 그 남자인 듯 보이는 거꾸로 된 상체 일부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종잇장처럼 속절없이 떨어진다.

9.11 테러 당시의 상황을 중심 소재로 하고 있으나 테러 당시의 생생한 장면은 한 단계 걸러서 보여 준다. 짧게 9.11 테러를 기억해 본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에 의해 납치된 미국의 민간항공기 4대로 벌인 자살 테러는 무려 3,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미국의 역사가 9.11 테러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은 자국 안보와 관련, 많은 변화가 있게 됐다. 육해공 망라한 미국 소속 영토에 두꺼운 보호막과 철저한 감시망이 설치됐다.


상실. 울타리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스카는 시신은 커녕 옷자락 하나 찾지 못한 아버지를 빈 관을 만들어 굳이 매장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생전의 아버지는 일명 ‘정찰 탐험대’ 게임을 했었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의 대인관계를 위해서 의도된 내용으로 짜이곤 했다. 사망 1년 후, 아버지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열쇠와 그 봉투에 쓰여 있는 ‘블랙’이라는 글자를 아버지의 탐험 게임으로 받아들인 오스카는 아빠와의 마지막 게임의 답을 찾기 위해 열쇠에 맞는 상자와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찾는 탐험에 나서게 된다.

 

출처: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특히 함께 ‘블랙’을 찾아 나선 할아버지도 오스카 외에 영화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할아버지는 늘 문을 닫아 놓고 외부와 단절하며 살고 있다. 수첩에 글을 써서 의사를 표현하고 두 손바닥에 'YES', 'NO'를 새기고 말을 닫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말을 잃은 것.

오스카는 계속되는 탐험 실패로 예민한 반응, 분노까지 표출하게 된다. 그리움을 극복하려고 시작했는데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고 아버지는 더더욱 그립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속내는 자신의 몸을 꼬집어 뜯어 흉터 투성이로 변해버렸다.


상실. 두려움

오스카는 지능, 언어 면에서는 생활에 아무 이상이 없다. 오히려 한 부분에 몰두하고 탐구하는 열정과 분석 능력은 또래보다 우월하다. 오스카는 ‘블랙’ 찾기 계획을 세우는데 9살 소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분석적이며 숫자 셈에 치밀함을 보인다. 그러나 오스카는 낯선 사람들이 두렵고 엘리베이터나 대중교통에 공포증을 가진 아이다. 게다가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이후 공포 대상이 훨씬 더 늘어났다.

오스카가 밖으로 나갈 때의 복장을 보면, 지하철을 들어갈 때는 방독 마스크를 쓰고 도시의 소음을 상쇄시킬 수 있는 탬버린을 흔들면서 걷는다. 가장 싫어하는 다리를 건널 때는 소리를 지르며 탬버린을 크게 흔들고 마구 달린다. 다리가 곧 무너져내리기라도 할 듯.

오스카는 열쇠에 맞는 상자가 아빠가 자신에게 남긴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빠가 자신에게 뭘 남겼는지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아내면 아빠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출처: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상실. 슬픔을 표현하다

오스카는 맘속의 비밀에 대해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변화가 온다. 마치 죄를 숨기고 있었던 듯이 마음 깊이 숨겨놨던 자신의 속앓이를 털어놓는다.

9월 11일, 무역센터 106층에 있었던 아버지는 비행기의 충돌로 위급해진 그 상황에 집으로 전화를 했다. 오스카 앞에서 계속 울리는 전화, 그리곤 자동응답기로 넘어가면서 들리는 아버지 반복되는 “Are you there?, Are you there?……” 전화가 갑자기 끊기면서 거실 TV 화면에서는 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보인다. 그 당시 무서워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자신을 지금껏 자책하고 있었던 것. 오스카를 괴롭혔던 죄책감은 아버지가 “Is anyone there?”라고 하지 않고 “Are you there?”라고 했다는 것 즉, 아들이 집에 있음을 알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는 것. 용기를 내어 전화를 받으라는 의미로 아버지는 그렇게 계속 오스카를 불렀음에도 오스카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비밀을.

결국 열쇠와 ‘블랙’ 이름과 아버지의 탐험 게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오스카가 공포증을 딛고 밖으로 나서게 하였고, 그 치열했던 과정이 홀로 세상과 만나는 첫발이었고 슬픔의 치유가 되었다.

 

출처: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정리해본다

피아제(Piaget)가 말한 구체적 조작기 아동의 특징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류경숙(세브란스 암병원 놀이치료 수퍼바이저)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아동의 죽음 인식에는 가족 혹은 성인의 역할 모델(애도, 극복, 종교 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슬픔은 억누르고 참으면 줄어들거나 혹은 사라지기까지 하는가? 정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게 회복되도록 적절한 애도가 필요하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또는 슬픔을 달래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서두르기보다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있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서적 도움이 절대적이다.


누구나 맞게 되는 원치 않는 이별. 그 이별은 부동의 관계망에 여지없이 상처를 남긴다. 슬픔의 깊이를 자로 잴 수는 없겠지만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특히 어렸을 때 부모의 상실은 매우 조심스럽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스카에게 특별히 애착이 강했던 아빠의 죽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출처:영화『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오스카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벽을 쌓았지만 정작 오스카의 엄마(산드라 블록)는 아들 모르게 미리 아들이 만나볼 사람들을 만나고 지켜봐 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노력이 오스카의 상실 극복과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오스카의 노력은 만났던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하였다. 아들과 손주의 이유 있는 외침을 그대로 들어주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보호해 주는 어른들의 태도는 부모를,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잃고 힘들어하는 그들 각자에게 치유의 성장을 갖고 오게 하였다.


관련 영화로 인도 영화로 ‘내 이름은 칸’을 소개하고 싶다. 주인공 ‘칸’도 오스카와 같은 증후군을 갖고 있고, 갈등을 유발한 소재도 9.11 테러다. 그런데 처지가 다르다. ‘칸’은 무슬림. 그즈음  대다수 무슬림들에게 쏟아졌던 테러리스트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칸’의 아름다운 여정을 보여주는 감동이 있는 영화다. 마음의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상실로 인한 주변의 이해와 조력 등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비교가 될 수 있는 영화다.
 

오스카가 만난 사람들, 할아버지의 실어 증상, 오스카가 두려워하는 것들은 한 겹 열고 들여다보면 상실과 회복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어쩌면 상실의 슬픔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지난(至難)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9.11 대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0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그중 소년 오스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움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 마음을 열어 가는 소년의 애처로운 몸부림이 한 편의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린아이지만 그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었고 그래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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