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대청봉 아래서 텐트 1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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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대청봉 아래서 텐트 1박
  • 조영옥
  • 승인 2018.10.1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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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컬럼] 조영옥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회원


 가을 하늘이 파랗다. 흰 구름이 두둥실 여유롭게 떠 있다. 산허리에 걸린 뭉게구름을 타고 산을 훌쩍 넘어 가고 싶은 어느 날 남편이 뜬금없이 설악산을 가자고 한다. 오색약수터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대청봉을 올라 수렴동 계곡으로 내려가서 비박을 할 거라고 한다. ‘비박?’ 비박이 무어냐고 물었다.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이란다. “아니 그냥 오르기도 힘든데 침낭까지 등에 메고 험한 산을 오른다고? 그리고 산에서 자는 거라고? 난 못해” 하고 펄쩍 뛰었다.


   “그렇게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잠을 자? 짐승이라도 튀어 나오면 어쩌려고?” 남편은 “내가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 걱정 하지 마”라고 한다. 무거운 것은 자기가 다 지고 갈 것이니 나는 내 것만 챙기고 천천히 자기 뒤만 따라 오면 되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당신과 비박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가는 거다.” 하면서 그날부터 등산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못 간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는 했지만,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남편이 너무 쉽게 말하는 바람에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가 ‘한번 해보지!’ 하는 마음도 생기며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드디어 설악산 가는 날, 자동차에  짐을 싣고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났다. 자동차에 타자마자 나는 졸기 시작했다. 얼마 쯤 지났을 때 “이제 일어 나,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잠만 잘 거야? 눈 떠!” 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딘데요?” 하고 물었다.

   “거의 다 왔어!”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얼마 쯤 달리니 목적지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려 등산화 끈을 조인다. 산을 쳐다보니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름 모를 나무들로 빽빽이 들어 찬 산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기 전에 근엄한 기상이 느껴진다.

저 산속으로 배낭을 메고 올라가다니? 그냥 풍선을 타고 ‘부웅’ 하고 올라갔으면 좋을 것 같다. 산만 쳐다봐도 벌써 주눅이 든다. ‘괜히 따라 왔구나’ 후회가 막심이다. 가슴도 울렁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신이 났다. 배낭을 등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빨리 가자고 성큼성큼 앞장을 선다. 나도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걷다보니 ‘어! 갈 만하네,’ 이 정도면 따라 갈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오르지 않아 이마에 땀이 배기 시작한다. 앞서 가던 남편은 뒤를 돌아보며 “어서 와” 하고 기다리더니 자기가 뒤로 물러서고 나보고 앞장을 서라고 한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다가 험한 바위가 나오면 앞장서서 손을 내밀어 잡아 주기도 하고 내 다리가 짧아서 바위 위로 올라서지 못하면 아래서 밀어 올려 주기도 했다. 한 발이 천근인 듯 무겁게 내딛으며 가고 있노라니 “그렇게 힘들면 여기 앉아, 잠깐만 물 한 모금 마시고 초콜릿 하나 먹고 가자” 한다.

 

  바위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시원한 바람에 겨우 땀을 식히려 하니, “자 이제 일어나자, 오래 쉬면 더 힘들어진다” 하며 남편은 또 길을 재촉한다. 이제는 해도 중천에 올랐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땀이 줄줄 흐르면서 몸이 축 늘어진다. 힘겹다. 도저히 오르지 못 할 것 같아 숨을 헉헉 거리며 남편을 쳐다본다. 내 짐 무게에 서너 배나 되는 짐을 메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도 땀이 비 오듯 한다.

  “어서 가자. 해 지기 전에 부지런히 올라가야 텐트 치고 잘 자리를 찾는다.” 하고 달래는 말에 힘을 내서 걸어 보지만 몇 발자국 못가서 다시 주저앉고 싶어진다. 말할 기운도 없어져서 묵묵히 간다. 그도 말이 없다. 그렇게 얼마를 가다가 산 능선을 바라보던 남편이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고 한다.

 

   “드디어 대청봉 정상이다! 어서 올라 와!”

   서너 발 먼저 오른 남편이 큰 소리로 외친다. 1708 미터 표지석이 묵묵히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해냈다는 뿌듯함에 땀으로 범벅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띄고 “만세” 하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직 우리 둘이서만 대청봉 정상을 오른 것 같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아름다웠다. 아! 하고 탄식이 나올 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줄기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오르지 않았다면 도무지 느끼지 못했을 벅찬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발 한 발의 위대함, 땀을 식히는 잠시 동안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희망에 부푼 청사진을 그리며 시작한 사업이 쫄딱 망하고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하고 막연하고 두려웠던 일. 어려운 때에도 형제들의 혼사는 줄줄이 이어지고. 돈이 들어가는 크고 작은 일이 연실 생겼다. 그럴 때마다 적은 힘이라도 보태며 열두 형제의 장남 노릇을 하려고 했던 남편…… 구슬땀을 흘리며 정상을 향한 무거운 걸음이 삶을 등에 지고 지금까지 힘겹게 살아 온 발걸음과 너무나 똑같다고 느껴진다.

   정상 표지석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서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당신 대단하다. 당신은 해낼 줄 알았어” 하며 힘든 중에도 용기를 북돋워 주는 남편의 칭찬으로 나 역시 온 몸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하다.

 

   “이제 내려가자. 미끄러지지 말고 이 지팡이를 잘 짚고 따라와” 하며 늘어지려는 나를 다시 잡아 일으키며 남편은 성큼 앞서간다.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 험하다. 뾰족이 솟은 돌 뿌리에 발이 채이기도 하고 땅바닥으로 길게 뻗친 나무뿌리에 발이 주욱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다. 내리 쏟아질 듯한 경사에 다리가 아픈 것보다 발끝이 더 아파오기 시작한다. 넘어 질까 봐 옆도 볼 사이 없이 땅바닥만 보면서 내려온다.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길을 막고 있다. 앞서가는 남편이 막대기로 내리쳐서 길을 터 준다. 얼마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사방이 금방 어둑어둑 해진다. 하산을 다하지 못하고 중간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바빠진다.

   산세가 험해서 골짜기를 한참 내려오도록 텐트 칠 만한 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바위가 불쑥 불쑥 나와 있고 평평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지려고 한다. 조바심을 내며 한참을 내려 와서야 겨우 텐트하나 칠 만한 자리를 발견하고는 털썩 주저앉는다. 그때서야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 가지에 끈을 묶어가며 간신히 텐트를 치고는 먹을 준비를 한다. 랜턴을 켜서 불을 밝히고 라면을 끓여 꿀맛처럼 먹고 나니 온 몸이 파김치가 된 듯하다.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어 그릇에 건더기 남긴 그대로 텐트 밖으로 밀어 내어 놓는다. 남편이 등산용 칼을 꺼내들고 텐트 밖으로 나가더니 굵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가지고 들어온다.

   “무엇 하게요?” 하고 물으니 만약을 대비해서 머리맡에 준비해 놓는 것이라고 한다. 나뭇가지 그림자만 거무스름하고 바람과 비 소리에 사방이 적막강산처럼 느껴진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대강 침낭을 펴고 누웠다. 울퉁불퉁 돌멩이가 등에 배기고 바람 섞인 빗방울이 텐트 지붕을 후드득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꼭 붙들어 매었는데도 텐트자락이 바람에 펄럭인다.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지친 몸에 식곤증이 겹쳐서 눈꺼풀이 내려오고 잠이 쏟아진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린가? ‘산짐승이 왔나?’ 하고 잔뜩 긴장해서 밖에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등이 오싹해진다. 다시 달그락 달그락… 신경이 곤두선다. 가만히 들어보니 큰 짐승이 온 것 같지는 않다. ‘아하! 라면 먹다 내놓은 그릇에 찌꺼기를 다람쥐가 와서 먹나 보다.’ 작은 짐승이라는 생각이 드니 긴장이 풀리면서 잠에 빠져 들었다.

 

  일찌감치 잠이 깼다. 텐트 자락을 들추고 밖을 내다 보았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하늘이 맑게 개어 있다. 비에 젖은 초목들은 한층 푸르고 싱그럽다.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우리도 나무가 된 듯 싱그럽다. 밤새 달그락 거렸던 라면 그릇에는 빗물과 함께 국물만 흥건하고 건더기는 하나도 없다. 다람쥐가 와서 다 건져 먹었나보다.

 

   “하룻밤 산에 내는 숙박료치고는 너무 싸다“ 하면서 남편은 텐트를 걷는다.

 

   한 십분 쯤 내려 왔을까? 위에서 내려다보니 저 아래에 아주 넓은 대피소가 눈에 띈다. 한 쪽에는 수도 시설도 되어 있고. 아침 준비 하느라고 부산히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만 더 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우리에게 기억에 남을 잠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신이 빗방울을 뿌리고 서둘러서 어둠을 선사해, 주저 앉혔나 보다” 하고 남편은 대꾸한다.

  “지금이니까 말하지만 비가 더 왔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아주 위험한 자리였어, 나는 마음이 불안해서 잠이 깊이 들지 않았어, 그런데 당신은 코까지 골면서 잘도 자더라” 남편이 말한다.

   “정말? 코 까지 골면서? 염치없네”

   우리는 개선장군이나 된 듯이 한껏 마음이 뿌듯해져서 여유롭게 주변도 둘러보면서 천천히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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