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과 소통,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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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과 소통,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
  • 공주형
  • 승인 2010.11.0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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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 / 인천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거리 곳곳에 피아노가 출현했다. 버스 정류장, 광장, 어린이 박물관, 대학 언저리 등 모두 열일곱 대의 피아노가 놓였다. 모두 기증을 받은 것이다. 길을 가던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피아노가 뜻밖의 장소에 설치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번잡한 거리에 피아노는 근엄한 연주회장의 그것과 확실히 다르다. 알록달록한 색은 기본이다. 장식도 다채롭다. 여기에 피아노에 특별함을 더하는 것이 있다. 피아노에 새겨진 문구이다. "연주해 주세요.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Play me, I'm Yours.) 이 사랑스러운 피아노가 내 것이란다. 마음 놓고 연주하란다.

 
신시네티 거리에 놓인 피아노. 사진 출처www.streetpianos.com

이제 피아노에 쓰인대로 하면 된다. 누구나 무료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 연주 시간은 아침 여덟시에서 밤 아홉시까지이다. 연주 기간도 정해져 있다. 약속된 기일을 채우면 피아노는 지역 단체와 학교에 기증된다.

지난 10월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개요이다. 일명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이다. 국제예술경연대회 '아트프라이즈(ArtPrize)' 행사의 일환이었지만, 2008년 버밍햄을 시작으로 이미 여러 도시를 거쳤다. 상파울로, 시드니, 베리, 런던, 바르셀로나, 배스, 블랙번과 번리, 런던, 뉴욕, 밸패스트, 패치, 신시네티, 산 호세, 그랜드래피즈.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도시들이다.

프로젝트 중심에는 영국 작가 루크 제람이 있다. 그의 예술은 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르지 않다. 영감의 원천과 실현의 장이 같다. 바로 일상이다.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도 그랬다. 아이디어는 동네 동전세탁소에서 얻었다. 어느 날 찾은 빨래방에서 그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타인들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매주 같은 장소를 찾는 이웃들이었지만, 어떤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우울한 도시의 삶은 그렇게 빨래방 안에도 깃들어 있었다.

그는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를 그 자신과 그의 창의성에 관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는 길거리가 시민들의 잠재된 창의성 표출을 위한 빈 캔버스가 되기를 염원했다. 자신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기대했다. 한 작가의 창의적 발상은 서로를 외면하던 도시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버밍햄 시민들은 거리에 부서진 채 방치된 피아노를 발견하고 함께 그것을 수리하고 장식해 연주를 이어갔다. 처음 보는 남녀는 시드니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인연으로 2년 열애 끝에 결혼을 했다. 한 젊은이는 뉴욕 시내에 설치된 피아노 60대를 하루 안에 연주하겠다는 출사표로 시민들의 격려를 받았다. 


상파울로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 사진 출처 www.streetpianos.com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에 쏟아진 반응이 모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랜드래피즈 시민은 집 인근에 설치된 피아노로 인한 소음을 호소하기도 했다. 피아노를 이전해 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반응이 분주한 삶과 맞바꾼, 잃어버린 목소리의 귀환인 것만 같아 즐겁다.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스스로 섬이 되어 단절된 관계 회복의 신호탄인 것만 같아 반갑다.


시드니 프로젝트 중 차이나타운. 사진 출처 www.streetpianos.com

창의 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질문이 부쩍 늘었다. 미술로 아이의 창의력과 'AQ(Artistic Quotient, 예술가적 지수)'를 증진시킬 비법이 궁금한 모양이다. 창의력은 내 아이의 스펙 쌓기, 내 아이의 대학 진학, 내 아이의 취업, 내 아이의 사회적 성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창의력의 과제는 길거리 피아노 프로젝트에서 보듯 더 가치 있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공동의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상과의 연결,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한, 내 아이만을 위한 경쟁력의 도구로 오해되는 순간 창의력은 고정관념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 시대 창의성이 또 하나의 진부함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우리 아이들의 창조적 진화를 위해 창의적인 엄마들이 되기를 부탁한다.


공주형 인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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