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 칠장사, 박문수와 임꺽정을 품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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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칠장사, 박문수와 임꺽정을 품은 절
  • 심형진
  • 승인 2018.11.1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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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칠장사, 일곱명의 도적을 현인으로 만든

칠장사


워크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근에 있는 칠장사를 들렀다.
칠장사는 오랜 부침을 겪었지만 유독 교육과 교화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은 절이다. 창건은 신라시대로 올라간다고 하지만 고려 초 광종에 의해 국사가 된 혜소대사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역사적으로 가장 확실하다. 혜소국사가 중창할 때의 일화에서 절과 산의 이름이 유래했다. 절을 중창할 때 주변에 웅거하고 있던 일곱 명의 도적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어, 일곱 현인이 웅거한 산이라는 뜻으로 칠현산(七賢山), 절은 칠장사(七長寺)가 되었다. 후삼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고려가 창건 된 시기이니 아마도 일곱 명의 악인은 이 지역에 웅거한 지방 토호이거나 산 도적이었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이 절은 후삼국 중 왕건과 관계가 있는 궁예가 어린 시절 머물렀다. 활쏘기를 배워 명사수가 되었다는 활터가 명부전 옆 부도 밭에 있다. 혜소대사가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을 만든 거나 궁예가 활쏘기를 배워 후삼국 시대의 한 축으로 우뚝 선 것이나 모두다 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다.


임꺽정이 병해대사에게 선물한 목조불상이 모셔진 극락전
임꺽정이 병해대사에게 바친 목조불상이 모셔진 극락전


칠장사는 고려시대에는 매우 큰 절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완전 사라지기도 했다. 지역의 세도가가 명당이라고 소문난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절에 불을 질러 모든 스님들을 쫒아냈다. 일부 스님은 절과 함께 타죽었다고 하니 혜소가 일곱 명의 악당을 교화한 것과는 달리 폭력적이다. 그 후 다시 절이 된 경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벽초 홍명희의 소설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임꺽정과 그의 스승 갖바치 병해대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신발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부터 안성맞춤으로 유명한 안성에 방짜 유기와 더불어 갖신도 안성맞춤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를 위해 봉헌했다는 목조불상은 극락전에 모셔져 있다. 임꺽정과 이병학이 의형제를 맺은 곳도 이곳 칠장사이니 일곱 명의 도둑에 더해 임꺽정과 이병학까지 도둑이 모두 현인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후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어린 나이에 광해군에게 목숨을 잃은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아 크게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창불사에 인목대비가 내린 어시 족자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시기에 중건한 사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은 동서남북 각 방위에서 부처님을 호위하는 무사인 사천왕상은 전국 어느 절이나 비슷하지만 이곳은 유난히 사천왕상에 깔려 있는 악귀의 모습이 다른 절과 다르다. 서민의 삶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바로 악귀이니 악귀는 시대를 반영한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 때의 악귀는 바로 청나라 군사이다. 사천왕상이 짓누르고 있는 악귀의 형상도 따라서 청나라 군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둑들의 이야기에 더해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린 박문수도 이곳과 관련이 있다. 칠장사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이야기를 인용하면,

‘천안 사는 선비 박문수가 과거 시험을 보러가기 위해 한양을 향하던 중 칠장사 나한전에서 하루 밤을 묵는다. 저녁 공양을 올린 후 불공을 드리고 잠에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날 밤 꿈에 나한이 나타나 과거시험의 시제를 알려주며 총 8줄의 답안 중 7줄을 가르쳐주고 나머지 한 줄은 네가 알아서 써내라 하였다. 다음 날 한양으로 올라가는 내내 꿈에 나타난 글과 마지막 시구를 생각하며 도착한 과장에서 시험을 보는데 나한이 가르쳐준 시제라 깜짝 놀라 답을 작성하여 장원급제한다.’(칠장사 홈페이지에서)

나한전은 오랜 수련을 통해 부처나 보살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 나한이 된 분들을 모신 곳이다.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박문수가 공양을 올리고 예불을 올리기에 적당하지 않은가?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도 오랜 수련을 통해 부처가 되었으니 절집 어디나 자기 수련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다들 한 번씩은 경험이 있겠지만, 시험 보기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하다 잠이 들면 가끔 꿈속에서 수학문제를 풀 때가 있다. 아마도 박문수에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으리라. 시험문제와 답을 알려주면 누가 만점을 맞지 못할까! 최근 불거진 숙명여고 교무부장과 쌍둥이 딸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에서라도 문제가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 염원하는 수험생과 그 부모들이 박문수가 묶었다는 나한전 옆 최근에 조성해 놓은 박문수 어사길 초입 다리에 수많은 기원을 매달고 있다.
내일 모레면 수능시험이다. 이 시험을 준비하느라 수고했을 모든 수험생들에게 어사 박문수와 마찬가지로 7줄의 준비와 한 줄의 운이 있기를 빈다. 자신이 한 만큼 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길, 수험생들 비위 맞추느라 가슴 속에 소화기 하나씩 품고 지냈을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해원의 날이 되기를 혜소국사 비각과 나한전 앞에서 기원한다.





가을 칠장사 햇살 받아 빛나는 단풍나무 잎이 눈부시다. 봄에 꽃 피우고 여름에 열매를 맺느라 수고롭고 애쓴 이파리들이 비로소 모두의 눈길을 받는다. 가을이 깊다.
 
2018년 11월10일 워크숍 끝나고 들른 안성 칠장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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