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도 시인이 살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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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도 시인이 살고 있었네
  • 최일화
  • 승인 2018.11.1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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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북한 시인 반디의 '붉은 세월' - 최일화 / 시인


오늘은 북한의 시를 읽어보기로 한다. 반디라는 시인으로 반디는 필명이다. 반디의 실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반디의 시집 『붉은 세월』의 추천사를 쓴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회윤 대표는 이 시집을 출판하면서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반디 시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소회를 밝혔다. 우리도 북에서 비밀리에 작품을 쓰는 반디 시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작품을 소개한다.

 
들꽃을 내 사랑함은
 
꽃 중에도 들꽃을 내 사랑함은
그것이 아기의 눈동자 같아
아 아기의 눈동자 같아
 
꽃 중에도 들꽃을 내 사랑함은
그것이 어머니 통치마 같아
아 어머니 통치마 같아
 
꽃 중에도 들꽃을 내 사랑함은
그것이 울어도 남몰래 우는
아 빨래집 아줌마 같아
 

이 시는 우리 민족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북한에도 들꽃처럼 고운 눈동자를 가진 아기가 있다는 것, 북한에도 통치마를 입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 북한에도 빨래를 해주고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우리 이웃이 있다는 사소한 사실이 이 시를 읽으며 새삼스럽다. 우리가 북한을 너무 모르고 오랫동안 북한을 악마의 소굴쯤으로 세뇌를 받아 그런 것은 아닐 런지. 반디가 들꽃을 사랑하는 이유가 한결같이 소박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서민적인 것이라는 것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정서는 북한 사회뿐만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정서이기 때문에 그만큼 정감 있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겨울의 떡갈나무
 
눈 내리는 산허리에
떡갈나무 한 그루
죽은 잎을 가지마다
그냥 달고 서 있네
버려라 미련을 떡갈나무야
가버린 생명은
두 번 다시 필 수 없단다
 
눈 내리는 산허리에
떡갈나무 한 그루
광풍에 시달려도
죽은 잎을 못 버리네
버려라 후회를 떡갈나무야
생전에 너 어이
사랑을 못다 줬더냐
 

김소월 풍의 민요조 가락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시도 북한의 시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북한 시인들의 시풍도 모두 달라서 반디의 시만 읽고 북한 시문학의 경향을 속단하기는 어렵다. 렴형미 시인처럼 남한의 시풍처럼 자유시를 쓰는 시인도 많다. 이 시는 겨울철에 나뭇가지에 죽은 잎을 여전히 달고 있는 떡갈나무를 보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 후회하는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 대비시키고 있다.
 
어서 쓸데없는 미련을 버리고 후회하는 마음을 버릴 것을 권하고 있다.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임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는 충고의 속삭임이 담겨져 있다. 문학은 보편성이 결여되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이 시엔 세계 어느 지역 사람에게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가 담겨 있기에 감동의 요소로 작용한다. 이미 생명이 다한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상심만 깊어갈 뿐이니 다시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라는 교훈이 들어 있다.
 

진달래야
 
진달래야 새봄은
어디서 오니
청제비가 날아오는
강남에서 걸어오니
꽁꽁 언 땅 속에서
눈서리를 이기는
연약한 네 뿌리
거기에서 온단다
 
진달래야 새봄은
어디서 오니
아지랑이 면사포 쓴
천사가 갖다주니
아파도 눈물 참고
칼바람을 이기는
가냘픈 네 가지
거기에서 온단다

 
이 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우 평이한 언어로 간단한 사실을 노래하고 있지만 북한 인민이 기다리는 새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서정을 노래한 시로 읽힐 수만은 없다. 이 시에서 새봄은 자유, 평화, 인권, 평등이 보장되는 새로운 사회를 나타낸다. 모든 것이 내포된 포괄적 개념의 새봄인 셈이다. 정치 사회적인 측면뿐이 아니라 종교적인 메시지까지 포함 되어 있다. 흔히 신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고 한다.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고 말하고 있다. 보편적인 것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메시지까지 이 시엔 담겨 있다.봄으로 상징되는 자유와 평화와 인권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서리를 이기는 연약한 네 뿌리에서 오고 칼바람을 이기는 가냘픈 네 가지에서 온다는 것은 곧 종교적 심상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북한 체제에서 미래의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힘이 아니라 인민 자신들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이 담겨져 있다. 반디 시인이 바라는 대로 어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에도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어서 오기를 간곡히 염원한다.
 
반디 시인은 이를테면 북한의 반체제 시인이다. 여기에 소개하지 못한 상당수의 작품이 북한의 세습독재와 일인독재체제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으며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반디는 이미 소설집 『고발』을 펴내 얼굴 없는 저항 작가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집은 소설집에 이은 두 번째 저서로 탈북민에 의해 남한으로 반출되어 북한인권단체의 노력으로 출간되었다. 북한에도 어서 언론의 자유, 출판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반디: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작가·시인. ‘반딧불이’를 뜻하는 ‘반디‘는 작가의 필명이다.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삶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를 써서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탈북자, 브로커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남한으로 원고를 반출시켰다.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책으로 ’북한의 솔제니친‘이라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소설집은 27개국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영국의 맨 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고발』의 영국판은 영국 펜 번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디는 이 소설집에 이어 두 번째 저서로 시집 『붉은 세월』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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