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으로 이뤄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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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으로 이뤄낸 사랑”
  • 한인경
  • 승인 2018.11.2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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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다시 주목하는 영화 -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에는 그해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2017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평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셰익스피어, 영화로 만나다

다시 주목하는 영화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환상적으로 이뤄낸 사랑”
 
개  봉 : 1999.09.18(116분/이탈리아, 영국, 미국)
감  독 : 마이클 호프만
출  연 : 케빈 클라인, 미셸 파이퍼, 크리스천 베일, 스탠리 투치, 안나 프릴, 소피 마르소
장  르 : 코미디, 판타지, 멜로/로맨스                      
등  급 : 12세 관람가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한바탕 환상적인 꿈을 꾸었다면 깨고 난 후 잠시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나름 신선한 체험이 아닐까.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낸 한여름 밤의 꿈을 영화로 펼친다. 지난 여름 이어졌던 최고 기온은 때때로 우리를 무기력하게까지 만들었다. 어느새 그 끈적거림도 아련해졌고 이제는 추위와 잘 지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즌이다. 지난 여름을 반추하면서 어쩌면 느슨해졌을지도 모를 사랑의 근육을 재정비해 보자. 오늘은 영국의 자부심, 영국의 대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원작 중에서 스크린에서 만나는 ‘한여름 밤의 꿈’이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이름만 들어도 몇 가지 제목은 떠오르는 세계적 극작가이다. 비록 그는 수백 년 전의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스크린을 통해서 대중들과 여전히 소통하고 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올리비아 핫세의 청순 이미지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햄릿’의 대사 중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살면서 심심찮게 듣기도 활용하기도 하는 말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역시 우유부단 상황에서 많이 들었고 나 자신도 일명 ‘결정장애’ 처지가 되면 어느새 이 말을 읊조리고 있기도 하다. 시공을 뛰어넘어 그는 우리 생활에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나 유명세에 비하면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학창 시절, 결혼 생활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작품을 통해서 그의 성격이나 인생관 등을 짐작, 추측하곤 하는데,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2016, 한울)에서는 30가지로 분류하여 셰익스피어에 대하여 궁금해한다. 즉답으로 맞다, 틀리다, 이것이다 등으로 밝히기엔 모호한 과거 내용이기에 그의 주변 또는 작품 속에의 여러 상황을 연결하며 접근해 간다. 부분적으로 속이 후련할 정도의 답이 부족한 만큼 그 궁금증이 신화적 스토리를 이어가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록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상업적인 거래와 활동과 금전 관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알지만,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다른 극작가들과 대조적이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2016, 한울)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한여름 밤’은 6월 24일 <성 요한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의 전날 밤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그 밤에 기이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미신이 전해오고 있다.’ (출처 다음 백과) 우리의 24절기 중 ‘하지’ 무렵으로 생각된다. 이날 밤에 요정, 정령들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온다는 설정으로 꾸며진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다.

출연 배우들
케빈 클라인, 미셸 파이퍼, 소피 마르소, 루퍼트 에버릿, 스탠리 투치 등 유명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거의 20년 전에 개봉된 영화이다 보니 배우들의 면면이 새롭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조연(디미트리어스 役)으로 출연했지만 다크 나이트(2008)의 배트맨, 몬태나(2017)에서 블로커 대위역을 맡았던, 지금은 주연 배우로서 입지를 굳힌 크리스천 베일의 20대 모습이 반갑기도 했다. 숲속 소동의 원인이었던 요정 ‘퍽’ 역의 스탠리 투치(1960)는 각본, 감독, 제작자로도 인정받고 있는 영화인이다. 그의 최근 감독작을 소개한다. 올해 9월에 개봉한 ‘파이널 포트레이트 Final Portrait’로 재현한 자코메티의 작업실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부분적이었지만 그의 삶을 읽을 수 있는 영화였다.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신화를 끌어들여 이뤄낸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 결혼식 날 밤, 요정의 왕 ‘오베론’은 요정들에게 어서 신혼 방으로 가서 그들을, 그곳을 축복하라고 명한다. 또한 탄생할 아이들은 평생 행운이 가득할 것이라며 세 커플에게 평화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스토리 구조상 대반전은 없지만, 끝까지 흥미롭게 이어진다. 엔딩 씬, 요정 ‘퍽’, 그를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것만 같았다.

약 400여 년 전에 쓰인 희극이고 영화라는 장르로 감상했음에도 흐름이 어색하지 않았고 대사가 훨씬 자연스럽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어휘의 천재라 불리기도 하는 셰익스피어의 그림자는 시적인 함축된 대사, 은유 등 영화 곳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내용이나 특별하며, 과장된 듯하나 가볍지 않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5~1847)
 
‘한여름 밤의 꿈’에서 화룡점정처럼 완성미를 더해 준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무엇일까. 음악이다. 낭만주의 독일의 음악가 멘델스존은 17세 때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에 대한 감동으로 그해에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곡이 만들어졌고 그로부터 17년 후에 프로이센 왕 빌헬름 4세의 청으로 12곡이 더 만들어졌다. 서곡과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이 만들어지기까지 틈이 깊지만, 곡들 간의 조화로움이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영화에서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전곡을 기대했다면 아쉽지만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13곡 중 서곡, 녹턴, 결혼 행진곡을 들을 수 있다.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은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과 함께 지금도 혼례 장소에서 널리 쓰이는 곡이다. 셰익스피어의 환상적 상상과 시적 은유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스토리텔링, 멘델스존에 의해 그 스토리가 녹여진 음악들, 그리고 감독은 영화적 완성을 위해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 서너 곡을 삽입하였다. 멘델스존의 음악보다는 셰익스피어의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로 생각된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상징적 의미를 둔 두 장소에서 스토리가 펼쳐진다. 권위, 이성, 낡은 틀의 상징인 현실 아테네와 이성을 벗어난 곳, 환상을 의미하는 요정들의 숲, 이렇게 두 대비점을 설정해 놓고 현실에서의 문제가 숲에서 마법에 의해 해결되게끔 하였다. 요정들에 둘러싸인 여왕의 모습이라든지 젊은 여인 요정들의 몽환적인 장면도 영화에서만 가능한 볼거리다. 셰익스피어는 샘 솟는 듯한 어휘의 잔치를 보여줬고 환상이 보여 주는 신비롭고 익살맞은 설정까지도 유치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영화적 장치로 적절했다.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4쌍의 연인이 등장한다. 아테네의 공작과 그의 약혼녀(티시어스와 히폴리타), 요정의 왕과 여왕(오베론과 티타니아), 부모의 반대로 야반도주 하는 한 쌍의 커플(라이샌더와 허미아)과 그 커플 중 라이샌더를 사랑하는 여인(헬레나), 그 커플 중 허미아를 사랑하는 남자(드미트리어스)가 등장한다. 사랑의 묘약-큐피드 사랑의 화살에 묻은 보랏빛 꽃즙을 눈꺼풀에 바르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사람을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된다는 신비의 즙이다. 이 꽃즙을 요정 ‘퍽’은 다른 사람에게 바르는 실수를 범한다. 이후 뒤섞여버린 관계는 삼각관계를 넘어 사각 관계다.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관계 속에서 울고 웃는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이어질 주제이니. 숲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소동이 정리되면서 4쌍의 커플은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영화로 재탄생된 ‘한여름 밤의 꿈’ 재미있는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영화 속에서 비극적 희극 ‘피라무스와 디스비’가 결혼식 날 공연된다. 부모의 반대로 ‘피라무스’와 그가 사랑한 여인 ‘디스비’가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자결하면서 끝나는 비극적 줄거리다. 스토리가 낯익다. 반목하는 두 집안 몬터규家 로미오와 캐풀렛家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비슷하게 이어졌다. 바로 본 이야기인 ‘한여름 밤의 꿈’에서도 사건의 발단이 된 연인들의 도피 행각도 부모의 반대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읽히는 서사 구조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부분이 여러 장면 있다. 그 중, 관객이 무서워할 수도 있는 장면에 대한 배우들의 걱정이 표현된 장면이 있다. 연극 ‘피라무스와 디스비’ 공연 시 사자의 포효가 나오는데 만일 관객인 공작과 부인이 놀라고 또는 비명을 지르게 되면 배우는 목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배우들의 두려움은 우스꽝스러운 무대 연기로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면, 사자 역할의 배우가 포효 소리를 연기하기 전에 관객이 놀라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사자탈 분장과 탈을 쓴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또한 주인공들이 이용하는 탈 것이 눈에 띈다. 주로 말, 마차 등이 주요 이동 수단이었는데 숲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두 커플이 이용하는 탈 것은 다름 아닌 이륜차, 헤드라이트까지 갖춘 자전거였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최초의 이륜차는 소에르브룅 남작이 발명하여 1818년 4월 6일 파리에서 선보인 '드레지엔'(draisienne).’(출처 다음 백과)이라는 것이다. 자전거는 연인들이 서로를 찾아다니고, 도망 다니며 숲속에서 사랑으로 인한 갈등을 부추기는 보조 수단이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을 쓴 시기는 1595년에서 1596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는데, 마이클 호프만 감독은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자전거를 등장시켜 숲속에서의 연인들의 사랑 소동에 속도를 가했다. 



출처:영화『한여름 밤의 꿈』


사랑

‘사랑은 탓하지 않는 거예요.’
사랑하는 드미트리어스에게 허락해 달라며, 당신 손에 죽으면 행운이라며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 헬레나가 하는 말이다. 400년 후인 지금 들어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 헬레나의 사랑 정의를 전하며 마무리를 짓는다. 영화 속 연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로 확장해 본다.

그 꽃즙을 바르게 되면 제일 처음 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게 된다는데. 나의 눈꺼풀에 바로 이 마법의 꽃즙이 떨어진다면 과연 어떤 대상에게 사랑의 마법이 걸리고 싶은지? 망설임 없이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차피 셰익스피어가 지어낸 환상이니 고민할 필요 없다. 그래도 잠시 쉬면서 투명하고 순수한 출발선에서 한 번 정도 생각해도 될 듯하다.

다시 한번 마지막 장면으로, 요정 ‘퍽(로빈)’이 관객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요정과의 재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담아서 박수를 보낸다. 이 겨울 요정들의 축복이 모두의 가슴에 내리기를.

“생각만 바꾸면 모든 게 편안해져요.
가볍고 시시하며 꿈 같은 이 얘기를 비난하지 마세요.
여러분, 저를 이해해 주신다면 더 잘하겠습니다.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친구가 됐다면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로빈이 꼭 보답하겠습니다.”

 
 한인경/시인, 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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