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달나라의 장난」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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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달나라의 장난」을 다시 읽는다
  • 최일화
  • 승인 2018.12.21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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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최일화 / 시인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3>

 
<감상>
 
시인 백석은 생전에 시집 『사슴』한 권을 출간했다. 김수영 시인 역시 생전에 한 권 시집『달나라의 장난』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두 시인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 되어 있다. 어떤 시인은 백석이라는 그물코 하나를 들어 올리면 대한민국 시인의 절반이 따라 올라오고 마찬가지로 김수영이라는 그물코 하나를 들어 올려도 대한민국 시인의 절반이 따라 올라온다고 했다. 그렇게 현대 한국 시인들에게 두 시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코너에 백석의 시「수라」를 다룬 적이 있거니와 이번엔 김수영의 시「달나라의 장난」을 함께 읽어보기도 한다. 김수영이 1959년에 펴낸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시는 그만큼 큰 비중으로 김수영 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시집의 표제로 어떤 시를 선택할 때는 그 시가 시인의 시 세계를 가장 훌륭하게 대변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1959년 전쟁이 한바탕 휩쓸고 간 나라에 거제도 반공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서울에 살고 있던 김수영 시인이 시집을 한 권을 투척한다. 시인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시집이 된『달나라의 장난』이다. 발표 연대순으로 4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표제시를 비롯하여「토끼」「아버지의 사진(寫眞)」「달나라의 장난」「헬리콥터」「눈」「폭포(瀑布)」「서시(序詩)」「광야(廣野)」「사령(死靈)」「꽃」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존 시인들과는 경향이 달리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를 구분하지 않은 파격적인 시어는 물론 내용도 경천동지할 정치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가득한 시집이었다.

 
이 한 편의 표제시를 살펴봄으로써 시인이 무엇을 지향했는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아이가 돌리는 팽이를 신기롭게 바라보며 갖가지 상념을 쏟아낸다.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는 구절은 가장 시적인 눈으로 가장 진지하게 팽이의 도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구절이 될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에서는 시인의 궁핍한 생활상이 드러나 있다.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는 구절은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신기로운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보는듯하다고 하여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시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이 시 속의 시어 “제트기 벽화”와 “비행기 프로펠러”는 과학물질 문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시인의 현재 상황을 묘사하고 그 과학문명 속에서 시인은 어떻게 시대에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응전의 모습을 예감할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라고 하여 시인으로서 자신이 지켜나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날마다 갱신되어야 할 시인의 자화상을 그려본 것이다.
 
시인 앞에서 지금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聖人과 같이” 돌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추앙 받아온 성인은 바로 시인이 지향해야 할 항구적인 방향이며 추구해야 할 영원한 지향점이다. 바로 시인의 이상적인 자화상인 셈이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의 구절은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여 계속 팽이를 돌려야 하는 운명을 생각하면 서러운 것이지만 나의 자유, 세상의 모든 자유를 위해서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해서는 울며 서러워해선 안 된다는 듯이 팽이는 지금 시인 앞에서 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시지포스의 돌을 끊임없이 굴려 올려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시인은 지금 돌고 있는 팽이를 보면서 팽이가 도는 아름답고 신기로운 모습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스스로의 존재 파악과 추구해야 할 시인으로서의 사명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신문학 이래 많은 시인들이 서구 문학에 심취하여 그곳으로 문학의 방향성을 두었을 때 김수영은 일상생활 언어를 과감하게 차용하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백석이 당시 유행하던 서구 모더니즘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복고적이고 서민적인 전통 서정의 세계를 개척해 나갔듯이 김수영 역시 시대의 경향과는 무관하게 언어와 형식의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개척해 나간 것이다. 이 시 속의 화자는 결코 지배계층이 아니며 돌아가는 팽이를 큰 눈으로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그의 내적인 모습은 실로 시와 삶의 혁명을 꿈꾸는 혁명가로서 목표한 세상이 실현되기 까지는 울어서도 안 되고 줄기차게 혁신을 통해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1968년 봄 교통사고로 48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김수영이 한국문단에 뿌려놓은 시의 씨앗은 앞으로 한국문학에 영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학의 영원한 이상으로서, 끊임없이 현실의 개혁의지를 촉구하면서 시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단독성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후배 시인들을 독려하며 함께 할 것이다.  “예술이란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불온하다”는 그의 발언은 적절하고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한 그의 말은 지금도 생생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잘 알려진 시 한 편 더 읽어보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1965.11.4.>

*김수영:(1921~1968) 시인. 1945년「묘정의 노래」로 등단.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대표작으로「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눈」「폭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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