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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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암소
  • 이충하
  • 승인 2019.01.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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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이충하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회원

암소 한 마리 우리 집 식구들과 10여년을 함께 해왔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머슴이고 하인이다.
 
아버지의 암소 사랑은 각별 하다. 들에 나가실 때는 늘 그림자처럼 달고 나가시고 저녁이면 나란히 같이 돌아오신다. 소가 외양간에서 소똥에 주저앉지 않도록 아버지는 항상 마른 풀을 넉넉히 준비하신다. 소똥을 수시로 치우고 털도 참빗으로 곱게 다듬어서 엉겨 붙어 새집 짓는 일이 없도록 하신다. 시시때때 냇가에 대려가 목욕을 시키고 겨울이면 “소는 등이 따뜻해야 한다” 하시며 볏짚으로 얼치를 두어 벌씩 만들어두시고 마구간엔 멍석과 거적을 둘러쳐 방안처럼 단장을 하였다. 무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나무 그늘로 데려가고 밤엔 모깃불을 밤새워 피워주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소죽을 정성들여 쑤어 주셨다. 소죽은 그냥 소죽이 아니었는데 봄이면 보리밭고랑의 독새기풀, 여름엔 보래기풀로 소화되기 좋은 연한 풀을 골라 늑과(米糠)를 듬뿍 넣거나 여름이면 호박과 감자, 겨울이면 사람도 먹기 아까운 고구마까지 곁들인 것이었다.
 
봄과 초여름 농사철에 소가 힘들게 일할 때는 소에게 막걸리를 대접했고, 보신으로 통 미꾸리, 보약으로 고삼(苦蔘)즙까지 곁들였다. 어머니가 “당신은 나보다 소가 좋으냐?”고 물으시면 “어찌 사람을 소한테 대는가?” 하시면서도 소를 향해 흐믓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소는 일 년에 새끼를 한 마리씩 낳아 주어 어려운 살림에 목돈을 마련해주고 나의 학비 마련에 한몫을 하였기 때문이다. 송아지를 조금 더 길러 중소로 팔아 산골 밭뙈기를 보태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순한 이 암소는 딸 부잣집인 우리 집에서 다루기 쉬어서 식구들 모두 좋아했다. 말을 잘 들어 쟁기질 초보자에게 쟁기질을 가르친다고 동네 사람들이 소를 하루 빌려 가면 품앗이로 이틀이나 사흘 우리 집 일을 도와 주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어머니는 소를 팔자고 하시고 아버지는 안 된다 하시며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드디어 평생 해보지 않았던 부부싸움으로 번질 기세가 되었다. 전에는 싸움이 되는듯하면 어머니께서 쭉 물러나며 “아! 내가 잘못 했는개비요!” 하며 부엌으로 나가셨다. 아버지는 서둘러 들로 가신다. 그날 저녁 밥상은 반찬이 진수성찬이다.
 
어머님은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면 싸움은 반대로 한쪽이 저주면 시끄럽지 않다” 하시며 늘 한 발 양보하셨다. 우리들에게도 “싸워서 잘 되는 일, 세상에 없다.” 하시며 형제우애를 강조하셨다. 이웃사람들과도 다투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지만 한 번 내면 태풍이 몰아치듯 무섭고 아무도 막지 못한다. 그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마음씨뿐이다. 이렇게 두 분은 오십년 결혼 생활에 한 번도 큰소리 내어 싸우신 일이 없는 원앙부부다. 아버지의 일생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마지막 선비이신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장터에서 만나셨다. 곧 서로 뜻이 맞아 사돈을 맺기로 약속하셨다. 이제 갓 열다섯 살이 된 외동딸을 시집보내려 하니 외할머니는 서운하고 안타까워 애가 탔지만 외할아버지는 선비들끼리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시집 온 열다섯 풋내기 신부는 시어머니도 안 계시는 가난한 살림살이에 1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 주부 노릇을 감당해야 했다. 모든 것을 양보하며 인내로 사셨다.
 
그런데 우리 집 암소가 삼 년째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 웬일인지 어머니는 이번에는 물러날 기미가 없으시다. 어머니는 바꾸어야 한다 하시고 아버지는 안 된다 하시며 정면 겨루기를 하는 거였다. 그래도 삼년을 참았으니 어머니도 많이 참으신 거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다른 해보다 남달리 암소를 잘 보살피셨다. 늙은 암소가 겨우내 잘 먹어 살이 피둥피둥 올랐다. 초봄이 되어 아버지가 며칠간 외출하신 틈에 어머니는 이웃에 사시는 당숙을 찾아갔다. 당숙에게 부탁하여 송아지 티를 갓 벗어난 소와 우리 소를 바꾸어 놓으셨다. 암소가 집을 떠나는 날 어머니는 차마 볼 수 없다하시며 눈물이 글썽, 이웃집으로 피하셨다.
 
외출하고 돌아오신 아버지 외양간 소가 바뀐 것을 보고 흰색 무명 두루마기를 입으신 채 외양간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철없는 암소는 멋모르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버지를 핥았다.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서 새 암소를 한 대 쥐어박을 듯 한참 노려보더니 급기야 “그래 네가 무슨 죄가 있느냐” 하시며 자신의 머리를 한번 손바닥으로 치고는 사랑방으로 들어 가셨다. 저녁은 드시지 않았고 닫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긴장하여 숨도 바로 쉬지 못하고 아이들도 소리 없이 손짓 대화만 나누었다.

사람과 사람은 만나고 헤어짐을 계속한다. 사람과 짐승 사이도 그러하다. 어찌하겠는가? 이렇게 늙은 암소는 우리 집을 떠났고 새 암소가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와 새 암소 다시 친구가 되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강산이 몇 번 변하니 소의 역할도 변했다. 세상인심도 변하였다. 사람과 소 사이에 오가는 인정도 사라지고 모든 것을 금전(金錢)으로 따지는 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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