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최종병기 ‘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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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최종병기 ‘주판’
  • 유동현
  • 승인 2019.01.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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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주산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1957년도 인천여고 앨범. 학교 대표를 뽑는 교내 주산대회 모습

1964년도 인천고 앨범. 인천고의 뿌리는 ‘상업학교’이다.

 
취업시즌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을 얻기 위해 영어, 컴퓨터, 봉사활동 등 갖가지 스펙 쌓기에 온 힘을 쏟는다. 3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고용시장에서 우대받는 취업 스펙 중 하나는 주산 실력이었다. 주판알 잘 튀기면 은행원, 경리사원 등으로 취업하기가 수월했다. 상업계 학교는 물론 일반계 고교 취업반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은 주산 시간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판은 필수 사무용품이었다. 은행 창구나 관공서 책상은 물론 동네 어귀 구멍가게 계산대 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1963년도 선인고(성광상고) 앨범. 상업고 학생들의 ‘문방사우’ 주판.

1966년도 선인고 앨범. ‘주산왕’ 지도 아래 자율 주산 연습 시간.

 
1950년대 상업학교에서 주산은 의무 교육이었고 60년대 초·중학교에서는 특기교육과정이 되었다. 신학기 학교 앞 문방구의 대목 학용품으로 주판이 낄 정도였다. 한창 때는 전국 10여개 공장에서 생산하는 주판이 한해에 10만개씩 팔리기도 했다. 골목마다 주산학원이 들어섰고 아이들은 한글과 구구단을 깨치기 전에 조기교육으로 주산을 배웠다. 엄마가 만들어준 다양한 색상의 천주머니에 주판을 넣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개구쟁이들은 주판으로 친구들의 머리를 밀어대는 장난을 치곤했다. 주판알에 밀린 까까머리는 눈물을 쏙 쏟아냈다.
 


1964년도 대건고(영화중) 앨범.
1963년도 인천여상 앨범. 인천여상 강당은 각종 주산대회의 단골 장소였다.

 
주산자격증은 확실한 '취업증명서'였다. 1973년 중구 사동에 있는 경기은행 본점에서 상고 졸업자를 대상으로 남자행원 약간 명을 모집했는데 고시과목은 주산, 부기, 종합상식, 작문이었다. 당시 인천상의는 전국주산경기대회에서 입상한 지역 실업계 학생들에게 시내 기업체 취업을 알선해 주었다.
실업계고 주산부 학생들이 거둔 성적에 따라 그 학교의 위상이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했으며 각 시도의 선거종합상황실 투개표 상황집계는 상업고 주산부 학생들이 도맡아 처리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자계산기가 일상화되면서 주산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제 ‘주판알 튕기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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