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통과 ‘조마조마’ ‘후들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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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통과 ‘조마조마’ ‘후들후들’
  • 유동현
  • 승인 2019.02.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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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교문 앞 선도부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1968년도 인천공고 앨범. 한눈에 봐도 선도부원의 서열도 알 수 있다.>


예전의 학교 교문은 그 자체가 ‘단절’이었다. 교문 밖과 굳게 닫힌 교문 안의 공기는 천지 차이였다. 교문 안을 들어서는 순간 학생들의 심장박동 수는 크게 뛰었다. 교문도 숨 막히는데 그 앞의 선도부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들 앞을 지나 갈 때 위반하거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선도부는 학교를 황국신민화 수단으로 삼았던 일제강점기 때 ‘자율’ ‘자치’라는 미명 아래 학생끼리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했던 것이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현재도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규율부, 학생자치부, 생활지도부, 명예부 등의 이름으로 운영된다.
 


1959년도 인천여고 앨범. 학생들의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1958년도 동산고 앨범. 선도부가 오히려 복장 위반이다. 나팔바지.

 
선도부는 주로 학생회 간부 중에 뽑혔다. 일단 풍채 좋고 카리스마가 풍기는 ‘형’ ‘언니’ 같은 학생들이 완장을 찼다. 간혹 오히려 선도(善導) 당해야 할 ‘문제아’가 완장을 차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선도부 교사의 ‘개과천선(改過遷善)’ 전략이었다.
선도부의 임무는 단순했다. 복장, 머리길이, 태도 등을 검색했다. 완장 찬 선배들이 양쪽으로 도열하여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반자를 색출했다. 이중 삼중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고성능 눈매로 스캔했다. 검색에서 적발되면 엎드려 ‘빠따’를 맞거나 운동장을 뛰거나 교문 옆에 서서 망신을 당한 뒤 이름을 적히고 벌점을 받았다. 너무 깐깐하게 임무를 수행해서 후배들에게 ‘악질’로 통하는 선배 선도부원은 졸업식 날 혹은 졸업 후 길거리에서 후배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1964년도 인성여고 앨범.

1974년도 대헌공고 앨범. 흡사 군부대 정문을 통과하는 분위기다.

 
검문검색 당하지 않기 위해 선도부 보다 먼저 이른 새벽에 아무도 없는 교문으로 쏜살같이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다. 아예 교문을 통하지 않고 ‘개구멍’으로 등교하는 간 큰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선도부는 학교 안 ‘작은 권력집단’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종종 선도부의 폐해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선도부 학생들이 친한 애들은 봐주고, 간식이나 학용품을 사다 주는 학생의 적발 사실(벌점)을 지워주는 것이었다. 일종의 ‘권력형 비리’였던 것이다.



1964년도 대건고 앨범.

 

요즘은 많은 학교들이 선도부를 자율적으로 맡긴다고 한다. 원하는 학생들 중 ‘면접’을 통해 선발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선도부 합격용 면접 예상 질문이다.

- 선도부 역할을 잘 할 자신이 있습니까, 비장의 무기는?
- 교칙 위반에 해당하는 학생이 벌점을 주려하자 도망가는 경우 어떻게 하겠습니까?
- 선배가 짧은 치마에 화장하고 등교하면 뭐라도 할 것입니까?
-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발견했을 때 조치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친한 친구가 걸렸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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