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극치, 분바위 앞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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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극치, 분바위 앞 바닷가
  • 류재형
  • 승인 2019.02.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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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해평화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며 - 류재형 / 사진가


 
현재의 소청도 예동마을(노화1리) 항공사진(아이폰 지도 캡처)

소청도 노화동(노화2리) 항공사진, 소청도 2개의 마을에 지붕의 구조를 보면 확연하게 노화동은 주황색, 예동은 청색의 지붕으로 칠해져 있다. 이는 초기1940년대 갈대가 많아 이를 엮어 지붕을 만들다가 돌너와로 지붕을 얹기 시작했고, 이후 스레트, 함석을 거쳐 2016년에 옹진군 환경개선사업 일환으로 주민이 원하는 대로 통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의 예동마을 전경, 중앙의 스레트 지붕과 오른쪽의 돌너와 지붕이 어우러진 마을 모습이다. ?표시가 기뢰폭발사고 현장이고, ●표시는 시신을 묻은 곳, ▲는 일제 때 대리석을 실어나르기 위한 석조물이고 해안에 레일이 깔려있던 곳을 표시했다.(소청도 김봉춘 소장사진)



2018년 9월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의 섬에서 평화를 주제로 하는 문화예술 사업을 공모하였다. 서해 접경지역에서 실현 가능한 문화예술프로젝트 사업을 제안한 것이다. 인천문화재단이 그동안 인천의 섬 지역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다양한 예술활동을 바탕으로 현재의 남북평화 협력 분위기와 평화를 주제로 하는 예술과 문화로 더욱 승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필지는 최근 방영된 OBS의 12부작 [그리우니 섬이다] 소청도 대청도편 로드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였고 이를 계기로 소청도 주민의 도움으로 이 공모사업에 제안서를 내고 실행에 이르게 되었다.
이 제안서를 내는 과정에서 문갑도에서 2000년부터 8년간 진행한 [문갑도 날개를 달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천의 섬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과정이 다른 육지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소청도를 2004년부터 드나들었던 필자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슬픈 이 [기뢰폭발사고]의 아픈 역사를 승화시키고자 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소청도의 서해평화예술프로젝트는 인천 섬 지역의 문화적 잠재성을 평화의 관점에서 읽어내는 과정 중심형 커뮤니티 프로젝트(예술가가 직접 현장에서 마을주민과 같이 진행하는 형태)로 이 지원사업을 통해 서해 접경지역에서 평화의 상생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섬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평화롭게 변모시키는 목적]에 동행하고자 하는데 그 실행 배경을 두었다.

 
소청도와의 인연
 
2004년 10월 31일
소청도에 첫 발을 들였다. 인천광역시에서는 2003년 3월에 인천앞바다바로알기 팀을 조직하고 매달 행정선을 이용해 2년 동안 인천의 모든 유·무인 도서를 탐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2004년은 2년차로서 마지막 섬으로 소청도를 탐사한 것이고 여객선을 이용해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인천지역환경기술센터, 서해연안환경연구센터의 전문가 21명이 참가하였다.
 
인하대 해양관련 최중기 교수, 인천대 물관련 최계운 교수, 심현보 식물전공 교사, 조경두 해안 육상지형연구전공 인천발전연구원 박사, 조강희 환경단체 인천환경연합 대표, 인천의제 물생태분과 최혜자, 사진전공 류재형 사진가, 문화탐방 기록 인천의제21의제지원팀 이재숙, 인천일보 사회부 노형래, 탐사기획 행정총괄 인천광역시 수질보전과장 정연중, 해양수질 측정 인천보건환경연구원 박종수 연구사 등이 동행하였다.
 
당시 이성만 이장(2002년 기뢰폭발사고의 위령탑을 세우는데 역할을 했다)이 재임하였다. 조사에 의하면 108가구에 207명이 거주하며 전복, 해삼, 우력, 미역, 등이 많이 나고 평균 연령 65세, 노동력과 자급자족이 어렵고 식수확보와 포구 확충 대책이 시급하며 중국 어선의 통발 등 바다 쓰레기 처리 지원이 관건이었다.
 
처음 접해본 소청도의 분바위 앞 바닷가는 놀라웠다. 수족관을 방불케하는 말미잘, 홍합, 미역, 다시마, 고둥, 성게, 진두발, 꽂지누아리 등이 어우러진 거대한 자연의 솜씨를 보았던 것이다.
‘분바위 주위의 원생대 10억년 전 남조류가 모아져 화석처럼 만들어진 조수웅덩이(Tide pool)의 모습이 비취색 등 영롱한 색깔이 아름다움의 극치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는 곳이었다.
주민 모두가 어촌계에 등록되어 있었고, 자연환경은 잘 보존돼왔다.
이 보고서는 2004년 12월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사진작품 전시와 더불어 2권의 보고서 사진집 발간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2009년, 소청도 분바위, 아래 위로 거대하게 갈라진 바위의 틈에 앉아 있으면 뒤의 바위 틈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10억년 전에 생성된 이 생물성 바위는 인천의 보물이고 하늘이 소청도에 선물한 위대한 유산이다.

2004년, 소청도 분바위 앞 조수 웅덩이. 2004년 당시의 모습보다 지금은 많이 생물의 개체가 줄었다. 앞으로의 훼손이 걱정된다.

2009년, 소청도 분바위 위에 팔각정도 당시 이성만 이장에 의해 세워졌다. 팔각정 옆으로 주차장이 있어 차가 이곳까지 갈 수 있고, 작년(2018년)까지 소청도에 3개의 팔각정이 더 세워졌다(예동 해변, 동북쪽 산길 전망대, 노화동 해변).
 

 
2009년 7월 10일
인천광역시에서 주관하고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시행한 제1차 인천도시기록화사업의 일환으로 소청도의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2010년 3월에 [변화하는 인천의 도시모습]이란 제목으로 사진집을 발간하였다.
이를 위해 3일간 섬에 머무르면서 소청도의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 2009년, 소청도 북쪽 답동 선착장에서 예동 넘어가는 마을길로 위쪽의 벽돌건물은 한전 발전소이다.

2009년, 소청도 예동 서쪽 해변, 왼쪽 방파제가 조성되기 전 일제 말기 이곳에 레일을 깔고 가로세로 1m 크기로 잘라 대리석(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배로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2009년, 소청도 동쪽 예동해변, 대리석을 배에 싣기 위해 만들어 논 석조물이 지금도 남아있어 평화를 상징한다. 오른쪽이 기뢰폭발사고 현장이다.
 
 
2015년 6월 29일
개인적으로 사진작업을 위해 소청도를 들어가고 소청도의 위령탑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2018년 7월 15-17일
OBS의 12부작 [그리우니 섬이다]에 대청도 소청도편을 맡아 출연하였고, 3일간 소청도에 머무르면서 본격적으로 자료조사로 주민의 증언을 녹취하고 현장을 촬영하는 등 소청도의 기뢰폭발사고 참사를 알리기 위해 방송녹화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편집 과정에서 잘려 방영되지 못하였다.



2018년, 소청도 예동 바닷가에 아직도 남아있는 석조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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