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앨범은 인천을 담은 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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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은 인천을 담은 역사책
  • 유동현
  • 승인 2019.02.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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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끝) 졸업 그리고 앨범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1968년도 동인천고 앨범


“에또, 여러분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 졸업식의 축사나 격려사는 예나 지금이나 판에 박은 듯,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흡사하다. ‘새로운 세상’ 그거 맞다. 졸업 다음날 아침부터 마시는 공기의 맛이 달랐다. 오랫동안 짓눌렀던 ‘규율’은 날숨이 되었고 ‘자율’이란 들숨이 폐부 깊숙이 들어 왔다.
 
 
1979년도 동산고 앨범

1978년도 제물포고 앨범

 
졸업을 축하하러 온 친구들의 준비물은 꽃다발만이 아니었다. 구두약과 밀가루 그리고 가위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자신을 꽁꽁 감쌌던 것을 빨리 버리고 싶었다. 교복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거나 지겹게 입은 시커먼 교복에 밀가루를 뿌려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범생이 모습을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에 얼굴에는 검정 구두약을 마구 칠했다.

 
 
1958년도 대헌공고 앨범

1960년도 박문여고 앨범. 졸업앨범위원

 
학교생활은 잊고 싶었지만 친구들과의 ‘추억’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졸업 다음날 아침부터 그 시절이 그리워 하릴없이 졸업앨범을 뒤적였다. 졸업앨범은 학교마다 개성과 특징이 담겨 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진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격’이 달라졌다. 어느 학교 앨범은 10년 넘게 똑같은 편집 틀을 유지했다. 무관심한 교장과 게으른 사진사의 합작품이다. 판에 박은 듯 배경이 같은 교정의 장소에 학생들을 세웠다. 졸업연도 때문에 학생들 모습만 다를 뿐 거의 같은 앨범이다. 열의가 있는 사진사는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 밖 장소로 기꺼이 출장 촬영을 했다. 극성맞은 사진사는 아예 학생들을 시내 곳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셔터를 눌렀다. 그들 덕분에 졸업앨범에 옛 인천의 다양한 풍경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었다. 앨범이 곧 ‘역사책’이 되었다. 이 지면을 빌어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낡은 졸업앨범 모음

졸업앨범 속표지

1969년도 졸업앨범을 촬영한 ‘문화사장(寫場)’ 사진사

 
필자는 1년여 걸쳐 개교한 지 60년 이상 가량 된 인천 시내의 고교들을 방문해 졸업앨범을 열람했다. 대다수의 학교가 의외로 앨범을 완전하게 보관하고 있지 못했다. 특히 배움터를 이전한 학교들은 이삿짐을 싸는 과정에서 분실된 듯 듬성듬성 이빨이 빠졌다. 아쉬운 대로 과거의 인천을 기억하고 옛 학생 문화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을 골랐고 전문가(홍승훈 사진가)의 손을 빌어 재촬영, 보정했다. 이곳에 연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은 책 한권이 다음 달 안에 출간된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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