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의 벽화, 화려한 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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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의 벽화, 화려한 역사가 되다
  • 강영희
  • 승인 2019.02.21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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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금창동 배다리 벽화이야기 4



오늘도 여행을 온 두 친구가 벽화거리를 찾았습니다. 어제도 VR체험관 탐을 찾은 가족들도 벽화거리를 물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창영초 주변 벽화는 9가지가 있었는데 그게 모두 사라졌고, 그 외의 벽화는 주로 철로변길에 있습니다. 물론 금창안길 곳곳에도 있지만 배다리의 벽화는 결국 온 마을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마을사진관 '다행'에 들러 묻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들러보라고 권하는 곳은 철로변길 입니다.   

 



'도원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왼쪽 편에 있는 길이 '송림오거리'로 이어지는 '샛골로'입니다. 우리는 '배다리 진입로벽화'라고 불렀는데 철로변길(샛골로 73번길)과 우각로 사이 40여 미터의 벽(창영교회 주차장 외벽입니다)에 그려진 벽화 입니다. 원래 하늘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다시 쌓아졌고, 우린 다시 황토색으로 입히고 '여성의 생애주기'를 담아 가을에서 겨울까지 그렸습니다.


  
  
 

물론 이 진입로 모서리-철로변길 입구에는 '인하자원'이라는 고물상이 있었고, 고물상을 오가는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담아 ATA라는 그래피티 팀이 에어스프레이로 생활그래피티를 그렸습니다. 관련해 새로운 시도로서 의미 있게 보기도 하고, 기존 그래피티스트 사이에서는 비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하자원의 경우 강철 외벽이 휘어지는 등의 위험이 있어서 철벽 보완작업을 진행하고, 그 벽에 색을 칠했습니다. 이 작업에 흥미를 느낀 중국집 배달원이었던 친구가 그림을 색칠한 벽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고, 그 벽에 일하는 작업자(무동), 그 길을 오가는 여고생들의 모습, 리어카에 잔뜩 폐지를 싣고 인하자원으로 오는 아저씨 등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새 단장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하자원 주인은 그 공간을 팔았고, 얼마간 고물상을 하다가 다시 팔린 공간에는 지금의 빌라가 세워졌습니다. 인하자원 뒤편 경사가 큰 어두운 계단 골목(좁은 샛골로)에도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마을에 심었던 부들과 길고양이와 민들레를 그려 넣었는데 빌라가 세워지며 없어지고 말았죠.
 
인하자원 바로 옆에는 폐가의 흑무덤이 있었는데 이곳을 보강해 ‘한 평 공원 하루터‘라 이름 짓고 의자를 만들고, 담을 칠하고, 꽃을 심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은 하트 조형물이 어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어린이집이 생겼고, 그 어린이집 옆 작은 집 벽은 황토몰타르를 바르고 문을 칠하고 하얀색으로 담쟁이 넝쿨과 잠자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우리는 그 벽을 황토벽집이라 불렀죠.



 

황토벽집 옆에는 작은 화단에 꽃과 작물을 잘 가꾸는 어머니가 계시고, 그 집 옆 공터는 운동기구고 생겼고, 그 앞에는 항상 태극기가 걸려있어 태극기집으로 불리는데 어르신 내외분이 꽃과 작물을 가꾸시며 개 한마리와 살고 계십니다. 그 옆 창고건물은 배다리솥집 창고입니다.

창고 뒤편 골목에는 어린아이가 빠져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오래된 우물이 뽕나무 아래 자리 잡고 있는데 불안했던 뚜껑도 손보고, 주변도 밝은 푸른색으로 칠했는데 어느 샌가 다시 버려진 화분과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지난해 쇠뿔마을 희망지 사업으로 단장을 새로 했습니다.

 


@세무서가 보이던 길이었는데 작은 집들이 헐리고 커다란 빌라가 세워졌고, 텃밭에는 두 채의 집이 생겼다.


배다리솥집 창고 옆에는 꽤 오랜 시간 여러 이웃들이 어울려 각종 작물을 키워 나눠드시곤 했는데 지난해 새 건물이 지어졌고, 그 옆에 작은 2층 빌라는 수리를 시작했고, 그 옆으로 금창석유(에너지) - 하늘색으로 칠했다가 '등교하는 고양이와 여고생들' 모습이 그려져서 많은 애정을 받고 있습니다. 금창석유 측면으로는 나중에 다시 철로변 할머니들과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아래 화단이 만들어지면서 담쟁이가 그림을 할퀴고 있어 좀 안타깝습니다. 담쟁이를 떼어내면서 벽화의 도료가 함께 떨어졌더군요.



@처음에는 그저 색만 칠해도 주변 풍경이 벽화가 되기도 했다.

@등교하는여고생과 고양이는 같은 색 가방을 메고 있다.


@배다리의 일상과 닮아있어 자연스러운 벽화

 
창영교회 방향 골목텃밭 벽에는 다양한 꽃과 작물들의 그림이름표를 나무로 그려 붙였다가 다시 타일벽화로 붙였는데 결국은 떼어지고 다른 색으로 칠해졌습니다. 그 앞에는 멋진 커다란 나무가 이웃주민들의 화분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었고, 2008년에는 이곳을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만들어 마을연극을 펼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15분 연극제가 마을 곳곳에서 펼쳐지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봄꽃나무들이 가득한 작은 집에는 노란색을 칠했는데 집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철로변 노랑집’이라고 말하면 바로 찾을 수 있게 되서 좋더라고 하셨습니다. 그 옆에 심어둔 작은나무는 이제 지붕보다 키가 컸습니다.

 



그렇게 노랑집 옆으로 화단을 잘 가꾸는 집에는 복숭아 나무가 꽤 오랜시간 열매를 맺었는데 지난해 병충해로 고생하더니 결국 잘라냈고, 청암사 ‘기타 치는 이장호 벽화’도 7-8년 만에 하늘색 페인트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기타치는 이장호 그림 앞에서 고추도 말리고, 김장도 하고, 눈도 쓸고, 꽃도 가꾸시던 어르신은 집을 팔고 시골집으로 내려가셨고, 새 주인이 단장을 하고 <캘리생활자>라는 이름으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늘을 까고, 고추를 말리고, 박과 호박을 키우고, 한 평도 안되는 터에 4계절 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키우시던 마늘할머니도 몇 해 전 떠나시고 새 이웃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옆으로 긴 하늘벽 ‘그네 타는 소녀’와 ‘자전거 타는 소년’들 벽화 앞에 만들었던 데크가 부숴져 아예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그 옆엔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공원슈퍼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게 문을 닫으셨습니다. 창영어린이 공원 어린이 놀이기구는 제가 있는 동안 세 번 바뀌었네요.
 
공원을 지나면 30여년 만화가게를 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 주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만화벽화로 만들었습니다. 휴지도매점 창고였던 곳은 목공방이 되었다가 금속공방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니다. 그렇게 우각로 뒤편 철로변길 벽화들이 이어졌습니다.

 





창영공영주차장은 사실 우리 작업의 시작했던 곳입니다. 주차장 담 뒤에 끝도없이 나오는 쓰레기를 치우고, 회색벽도 황토몰탈로 칠하고 부조도 만들었고, 바람 부는 언덕 위의 나무, 창밖을 내다보는 소년, 창문을 막은 시멘트벽에 전선위의 참새, 마을 풍경 등을 그렸죠. 그 앞에서 철로변길 황토를 걸러 황토염색축제도 하고, 버려진 가구나 나무조각을 얻어다가 재활용목공도 하고, 스크린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 영화도 보고, 연극도 했습니다.

 

 




가장 눈부신 계절을 그렇게 지났습니다.
 
지난 1월부터 오늘까지 4회에 걸쳐 배다리통신에서 인천 동구 배다리 - 벽화골목을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또 이를 그리느라 애썼던 여러 사람들의 기록으로서 마을 곳곳에 있는 벽화와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기억이 나는대로 담아봤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함께했던 친구들, 이웃들도 떠나고, 새 이웃도 생겼습니다. 많은 벽화도 없어지고 넓었던 하늘도 마을 둘레로 높은 건물들이 생기며 좁아지고 있습니다.
 
인천의 오래된 마을, 벽화가 아니라 책방과 작은 가게들, 그 가게들이 좁도록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책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 했던 마을은 살아남아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벽화 대신 사람이 채워지는 건 왠지 정상적?인 변화겠죠?
 
사실 저는 사람이 가득했다던 배다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작은 상점과 사람들이 많이 살고, 많이 오가는 이 마을 풍경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민방위교육장 벽화>




<공영주차장 벽화>




<한아름슈퍼 >



<금곡안길 벽화들>



<비밀정원 벽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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