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으로 펼쳐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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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펼쳐진 책
  • 정민나
  • 승인 2019.03.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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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권혁웅의《소문들》에 부쳐 / 정민나·시인



(1)권혁웅 시의 방법적 창안
 
필요한 이미지를 오리고 때로는 창조적으로 접합하여 현실을 구축하는 시 쓰기 방법을 몽타주 기법이라 한다.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사물이나 문장들이 새로운 공간에 재인용됨으로써 이미지를 구성한다. 개별적인 파편들을 모아 ‘우회로서의 재현’을 실현하는 글쓰기는 스스로의 진리를 드러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연결하고 위치시킴으로써 건축가와 다름없이 자신의 사유를 드러내는 문학적 몽타주 기법은 강력한 현실성을 불러일으킨다.
 
1.
 
심해는 춥고 빽빽하고 캄캄하다 바늘 방석아귀(Neoceratias spinifer)는 여러 달을 꼼짝 않고 누워서는 누군가의 기척을 기다린다 아귀들은 뼈와 근육이 약하다 옆 지느러미는 짧고 뭉툭해서 안을 수 없고 입은 크고 가시가 돋아 무엇이든 걸리게 되어 있으니 포옹이 포식인 삶도 있다 혼자 사는 건 대개 암컷이다 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먼저 물고 그다음에 파고든다 몸속에 자리를 잡으면 암컷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그러니까, 그게,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 들어 왔다고
 
2.

독거가 있다면 취로사업도 있다 나무수염아귀(Linopbryne arborifera)는 빛을 내는 나뭇가지를 몸 앞에 달았다 그러니까 그가 지나간 곳이면 어디든 길이 난다 수심 3,500미터에서, 발광하는 연둣빛 앞에서 아귀의 피부와 주름을 얘기하는 건 번문욕례다 가만 보면 그 등은 신행길을 밝히는 청사초롱 같기도 하다 춥고 빽빽하고 조용한 심해에서 그는 환한 묵음이다 어린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어도 무단횡단하는 노파가 들을 리 없다 그러니까, 어서어서, 서방인지 남방인지 찾아가야 한다고
 - 권혁웅, 「노인들-야생동물구역3」 전문
 
바늘방석아귀와 나무수염아귀라는 두 개의 이미지를 병치시켜 환각적인 풍경을 형성하는 위의 시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장면과 흡사하다. 아귀들의 모습에서는 ‘노인들’의 이미지를 환기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귀가 갖고 있는 평범한 요소들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수수께끼 같은 무엇이 된다. 아귀와 노인이라는 두 개의 텍스트를 병치시켜 하나의 새로운 통일체를 만드는 것이다. 현실의 삶과 밀접한 관계로 남기 위해 문학 몽타주로서의 그의 시적 아이디어는 영화 필름처럼 변형되어 모순적 의미를 가지고 드러난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재빠른 인터 카팅(inter-cutting)과 클로즈업(Close-up)과 오버랩되는 모티브들, 이중노출과 스크린 분할 투사법 등의 모든 것들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변칙적 구조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위의 시에서 재료를 조직하는 방법은 각각의 텍스트를 잘라내어 다시 짜맞추는 기법이라기보다 두 개의 네가티브를 인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귀라는 생태적인 특성과 노인들의 삶의 형태와 패턴, 질감이 모순된 이미지들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이중 삼중으로 연속적인 환상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것은 권혁웅 시인이 가지는 언어적 위트와 서사시적 경향의 종합적 침투라고 볼 수 있다.

 
2) 이중화 (역설과 반어)
 
이항 대립적인 자질이 공존하는 것은 몽타주의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역설과 반어는 시를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중화하는 요소가 된다.
 
1. 공중(恐衆)
 
최대 유파는 공중인데, 혹자는 이를 공인 중개사의 약자라고도 한다 중원의 모든 현과 읍에 지부를 두었으며 집을 매매하는 자에게 구전을 뜯어 규모를 키웠다 기밀문서를 다루는 이런 곳을 복덕방이라고도 하는데, 무예를 연마하는 기원, 심신을 수양하는 근린공원, 생활터전인 노인정과 함께 공중의 4대 거점이다 최근 정리해고와 의술의 발달로 그 수가 더욱 늘어, 미래의 중원은 공중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참요까지 생겼다
 
2. 초징(楚澄)
 
초나라에서 유래한 철류파로 이름난 문사들이 많이 났으나 최근에는 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교언영색을 일삼아 위명을 제법 잃었다 문필을 업으로 삼아 향교와 서당을 장악했는데 이런 배움터를 초등학교라 한다 학문에 뜻을 둔 자는 이들에게서 배움을 시작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들에게 찍혀 뜻을 꺾은 문사가 부지기수다 악플(惡筆)이라 부르는 암기를 쓰는데 이를 맞으면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칠공에서 피를 쏟는다고 알려져 있다
 
중략...
 
5. 파파(婆跛)
 
평소에 노파나 절뚝발이로 위장한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철저히 이익만을 좇는 전문 살수 집단으로 만금을 주면 임금도 암살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펼치는 천라지망을 파파라(婆跛羅)라 하고 파파라에 걸려든 경우를 일러 파파라치(婆跛羅治)라 한다 한번 파파의 표적이 되면 집에서도 길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청운답보라 불리는 경공의 대가들이어서 어디든 잠입과 매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략...
 
7. 용역(龍)
 
용산에서 발흥했으면 우면산의 검경(劍京), 발치산의 공산(恐汕)과 함께 3대 조폭이었으나 동이와 오환의 대살육 때에 -이를 육이오(戮夷烏)라 부른다- 검경과 연합, 공산을 궤멸하여 장안을 장악했다 정직한 자를 잡아가고 가난한 자를 태워 죽이며 속이는 자에게 쌀을 주고 부유한 자의 곳간을 지켜, 그 악명이 자자하다 최루탄지공, 개발이익조, 아수라권, 물대포신장, 소요진압권 등의 연합 무공을 쓴다
 
중략...
 
9. 사군(思君)
 
충의를 으뜸가는 덕목으로 내세우지만 고리대금이 주된 일이다 장문인이 장씨여서 세간에서는 이들을 장문세가(長門世家) 혹은 장사꾼이라 부른다 “떼인돈 받아드립니다”에서 “달아난 고세인 처녀 잡아드립니다”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한다 우공산이라, 멀쩡한 산을 옮기고 상전벽해라, 보기 좋은 바다를 메우는 게 이들의 일이다 임금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어 탈세와 포탈이 이루 말할 수 없다
 - 권혁웅, 「소문난 - 유파(流派」 부분
 
안과 밖의 두 요소가 배리(背裏)의 관계를 이루는 이 시에서는 그 모순이 표면과 이면에서 배치된다. 세력이 다한 소림, 무당, 화산, 아미, 곤륜, 개방 같은 유파가 작금에 위명을 날리는 것은 표면화 되어 있는 모순(역설)이고 집을 매매하는 자에게 구전을 뜯는 복덕방이 기밀문서를 다루는 곳이라는 진술은 이면화된 모순 즉 반어에 해당된다. 21세기 초입에서 IMF를 겪은 우리나라는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정리해고 되어 생산현장이 아닌 복덕방과 기원, 근리공원 같은 공중 장소에서 배회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시인은 그런 사람들의 수가 증가되는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부동산의 잦은 거래로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성토하는 것이다.
역설과 반어라는 이중화된 어법으로 재료를 조직하는 시인의 구조적 패턴은 모순된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변화된 현상들의 상호침투를 일으켜 구축된 새로운 유파(流派)를 감상하는 것이다.


3. 다르게 말하기 - 알레고리
 
권혁웅 시집 전반에는 그 내용의 이면에 또 다른 파편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알레고리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의미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중, 초징, 기독, 덕후, 파파, 중마, 용역, 성어, 사군, 고세”라는 추상개념은 기존의 어원과 상관없는 한자를 음차하여 현세의 인간문제를 교훈적으로 지시한다.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 진리 등을 드러내는 알레고리는 시인 권혁웅이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이것은 특수한 것으로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고, 낡은 것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미적 가치보다 당대 삶의 문제에 무게를 두는 알레고리는 각각의 보조관념(공중, 초징, 기독…… 등)이 한 개의 원관념(세력이 다한지 오래 된 유파가 위명을 날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환기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이다. 이것은 미적인 상징이나 이미지에 대립하는 부자유, ‘추(醜)’로서의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완성된 가상이 아니라 파편화된 조각이며, 그로써 역사의 퇴락을 증거”한다.
 
최근의 시에서는 하나의 장면이 다른 장면을 부르는 계기적이고 선형적인 형식을 갖기보다 “개별적이고 자립적인 형상들의 충돌과 조합을 통해서 한 편의 시를 축조하는” ‘몽타주’ 구성 방식이 배치되기도 한다. 인과율에 따른 장면 다시 말해 하나의 미장센 안에서 구성되는 진행이 아니라 시인이 제시하는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 체계와 대응하는 관계로 전환된다.
 
나란히 늘어선 장면과 시행들이 충돌하거나 조합하면서 분리되었던 몽타주 조각들은 상호작용과 더불어 제작물의 내용이 되는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시인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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