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을 되찾기 위한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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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을 되찾기 위한 용서
  • 최원영
  • 승인 2019.03.04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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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용서가 만들어 내는 기적




풍경 #104. 용서가 만들어내는 기적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피해자이니까요. 피해를 준 사람이 잘살고 있으면 더더욱 그를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정작 피해를 준 사람은 떵떵거리고 사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삶은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어떤 원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자존감을 심하게 훼손시키고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원망의 결과는 ‘내 인격’이 파괴되어 결국 불행해지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입니다. 내게 상처를 준 ‘너’를 위해서 용서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30년만의 휴식」에서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말합니다.
“용서란 고슴도치를 껴안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용서란 상대가 어떤 일을 했어도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지속적인 약속이다.”
 
「커피 한 잔 명상으로 10억 번 사람들」이라는 책에는 이런 충고가 나옵니다.
“그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까? 뒤틀리는 기분이 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증오의 뿌리는 당신과 당신의 선한 마음을 파괴합니다. 그것은 아픔이 영원히 가시지 않는 상처를 몸에 지니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은 나의 생각이나 반응이나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입니다. 당신이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처신한다면 당신의 마음이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세요. 남을 증오하는 마음은 당신 자신을 증오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겁니다.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 ‘너’를 용서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록 힘은 들겠지만 내 마음의 원망덩어리인 ‘너’를 내보낼 때 비로소 기적 같은 평온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이란 책에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일화가 나옵니다. 용서가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 용서야말로 최고의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장 박사는 유명한 외과 전문의였지만 평생을 서민적으로 살았습니다. 1995년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병원 원장으로 40년과 간호대학 학장으로 20년을 일했지만, 서민 아파트 한 채는 고사하고 죽은 후에 자신이 묻힐 공원묘지 몇 평조차도 없었다고 합니다.
생전에 풍문을 듣고 수많은 가난한 환자들이 몰렸습니다. 자신의 월급으로 그들의 치료비를 대곤 했었으니까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일화가 있겠습니까. 그중 하나를 전해드립니다.
 
장 박사 사택 쪽으로 그림자 하나가 숨어들었습니다. 마침 경비원이 그를 발견하고 도둑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요. 그 경비원은 오랫동안 골수염으로 고생했었는데, 소문에 장 박사 사택과 병원 사이에 있는 골목길에 누워 있으면 돈이 없어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다가 장 박사 눈에 띄어 수술을 받아 완치되었는데, 장 박사는 오히려 수술 뒤에는 힘든 일을 하면 안 된다면서 그 병원의 경비원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경비원은 장 박사에게 진 빚을 갚을 겸 자기 손으로 도둑을 잡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두를 벗고 발자국 소리를 죽인 채 장 박사의 서재 창문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장 박사는 이미 도둑을 잡아놓고 조용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도둑은 자신이 가져온 보자기에 서재의 책들을 싸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장 박사가 말합니다.
“그 책을 가져가 봐야 고물 값밖에 더 받겠소? 그러나 내겐 아주 소중한 것들이요. 내가 대신 그 책값을 쳐 주리다. 무거운 책보다는 돈이 더 낫지 않겠소?”
“원장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니에요. 이 돈을 가져가세요. 그리고 바르게 살아볼 마음이 생기면 다시 찾아오시오.”
 
참 대단한 분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것도 위대하지만, 자신의 것을 훔치려는 도둑에게까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에 ‘아버지의 노트’란 소제목의 글에 제 시선이 멈췄습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보물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적곤 했습니다. 돌아가시던 날이 되어서야 아들은 그 노트를 펼쳐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적힌 것은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고작해야 가족들 이름과 친구들 이름,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며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곤 하셨지.”
“이 사람들이 누군데요?”
“아버지에게 상처를 안긴 사람들이란다. 아빠는 매일 밤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올리신 거야.”
 
독자여러분이나 제게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원망을 가슴에 담아두면 둘수록 행복은 점점 더 멀리 달아나기만 하겠지요. 우리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들을 마음속에서 지워내고, 또 그렇게 지워냄으로써 우리에게 다가올 기적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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