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퍼스트? 대학언론, 미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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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퍼스트? 대학언론, 미쳤습니까?
  • 이김건우
  • 승인 2019.03.18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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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김건우 / 서울시립대 2학년, 교지 편집장


복학하고 교지의 편집장을 맡았다. 대학언론이 잘 나간다면 나같이 언론인을 단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던 사람이 편집장이 될 리 없다. 대신 누가 되지 않게 발버둥치고 있다. 대학언론에 어떤 혁신이 필요한가? 이런 고민을 안고 가장 먼저 만나는 선택지는 디지털 퍼스트다. 그러나 디지털 원주민인 20대가 미디어를 어떻게 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디지털 퍼스트는 도리어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결론지었다. 당연히 저널리즘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이의 설익은 결론이니 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론으로 가기까지 거친 생각의 경로는 유효해 보인다. 이 경로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언론의 혁신을 물었을 때 가장 쉽게 나오는 말은 디지털 퍼스트다. 디지털 퍼스트는 흔히 언론사의 모든 역량을 활자에 쏟지 말고 디지털 매체에 쏟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20대는 인쇄 매체보다는 디지털 매체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고 또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인쇄 매체는 느리고 일방향이지만, 디지털 매체는 상시 접속이 가능하므로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친숙한 플랫폼인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 대나무숲이 점점 여론 형성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 언론은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를 외쳤다. 단순히 미디어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갈아 끼우자는 말이 아니다. 디지털이라는 그릇에 맞게 컨텐츠 역시 디지털 원주민에게 친숙하게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플랫폼과 컨텐츠까지 디지털에 다 맞추면 대나무숲, 에브리타임(대학생 시간표·강의평가 어플이나 게시판 기능을 통해 학교별 커뮤니티로 기능하기도 한다.)만큼 읽힐 수 있는가? 나아가 그렇게 읽히면 다시 ‘언론’이라는 왕관을 되찾아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애시 당초 디지털 플랫폼의 여론 형성 구조는 기성 언론이 여론을 형성했던 방식과 다르다. 옛날 옛적 언론은 신뢰성과 권위를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논조를 내비치는 방식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였다. 이와 달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 유저가 적절한 타이밍에 글을 쓰고 생각이 비슷한 다른 유저들이 여기에 가세한다. 공감수와 댓글이 많아지면 다수의 생각처럼 포장되어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이 구조에서 설득은 없다. ‘총공’과 ‘화력지원’만이 있다. 둘 다 인터넷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뜻한다. 결국 유의미한 쌍방향 소통은 점점 사라진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20대는 인터넷에서 설득은 거의 불가능하며 인터넷 여론은 결국 머릿수의 싸움임을 금방 알아채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원주민은 인터넷 여론의 영향을 받는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인터넷 기사 댓글을 떠올려보자. 수차례 댓글조작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베스트 댓글에 담긴 입장을 바로 내면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상황에 계속 노출되다보면 ‘이게 다수의 입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결국 대학언론은 디지털 퍼스트를 한다고 해서 언론의 왕관을 인터넷 커뮤니티로부터 찾아올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애시 당초 언론과 인터넷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로의 전환을 통해 노출도와 보도 속도는 제고할 수 있다. 이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디지털 퍼스트만으로 여론형성 역할을 다시 갖고 오기는 힘들다.

 

디지털 퍼스트? 휴먼, 미쳤습니까?

 
그럼 대학언론은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디지털 매체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다른 돌파구 역시 디지털 매체의 다른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매체는 디지털과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디지털은 컨텐츠를 담는 그릇이고 온라인은 쌍방향 소통을 의미한다. 대학언론은 여성운동의 사례를 통해 이 온라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최근 여성운동의 대표적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이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디지털 공간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집회 등을 통해 가시화한다. 2016년 이후 성평등이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로, 20대 사이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 계기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인터넷에만 머물러있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온라인’상태임을 보여주었다. 실체가 없는 움직임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그나마 대학언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찾아보라고 하면 독자와 스킨십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꼽고 싶다. 대학언론의 잠재적 독자 그룹은 해당 학교 학우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도 모호한 디지털 여론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이 장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은 대학 커뮤니티 안에서도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신호가 난무한다. 하지만 이 디지털 신호가 머릿수 싸움이 아닌 쌍방향 소통으로 만들어졌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대학언론은 그저 커뮤니티에서만 떠들고 디지털 미디어로 노출되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만나고 협업하면서 실체를 보여줄 때 신호는 소음이 아니라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다른 학우에게 닿아 결국에는 여론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다만 독자와 스킨십하고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여론을 형성하는 일은 ‘언론’이 아니라 ‘운동’의 역할일 수도 있다. 언론의 월권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답을 내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대학언론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학생운동이라는 토양에서 자란 대학언론이 다시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운동의 역할을 겸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플루서는 일방향적 미디어의 대화적 미디어로의 전환이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한 혁명적 행위라고 했단다. 관련 전공 학부생도 아니고 저널리즘 뜨내기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이 뛰는 말이다. 대화적 미디어인 줄 알았던 인터넷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대화적 미디어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감히 해보았다. 이 설익은 제안이 보완되고 완성되어 올해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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