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과 성범죄 온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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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과 성범죄 온정주의
  • 박교연
  • 승인 2019.03.2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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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페이지터너' 활동가


<MBC 화면 캡처>

정준영이 드디어 지난 3월 13일에 그간 저질러왔던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에 대해 시인했다. 하지만 불법 촬영 범죄 형량은 죄의 위중함에 비해 최대 5년 형으로 절도죄인 6년보다도 적다. 불법유포 형량 역시 5년 형에 불과하다. 그래서 불법 촬영 및 유포를 동시에 저지른 정준영의 경우, 형법 가중주의 원칙에 따라 알려진 피해자만 10명인데도 불구하고 최대 7년 6개월 형까지만 구형받을 수 있다.

가중주의는 저지른 죄가 여러 가지일 때 가장 중한 죄를 기준으로 1.5배 형량을 늘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동일한 범죄를 연달아 저지른 범죄자든, 한 번만 저지른 범죄자든 간에 받을 수 있는 최고 형량이 같다. 미국과 여러 유럽에서 시행 중인 병과주의와는 매우 양상이 다르다. 병과주의는 저지른 죄에 관한 형량을 모두 합산하는 방식으로 피해자 수만큼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경우 종종 가해자에게 무기징역보다도 긴 200년, 300년 형벌이 선고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중주의가 형법의 토대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판결은 보기 어렵다. 심지어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는 정준영이 반성한다고 재판장에 호소하고, 피해자 중 일부와 합의할 경우 7년 6개월은커녕 아예 실형을 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대학교 화장실에서 만취한 여성을 강제추행하고 신체 부위를 촬영하는 등 3년간 여성을 상대로 64차례에 걸쳐 불법 촬영을 한 대학생에게, 대구지법은 고작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3년이나 긴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저지른 범죄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가해자에게 쉽게 선처를 말했다.

게다가 이런 경우가 이것뿐이 아니다. 불법 촬영과 유포 범죄에 있어 가해자 온정주의는 너무나 팽배하다. 그동안 불법 촬영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열 명 중 네 명은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대법원이 제출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와 관련한 1심 결과에 따르면, 2018년도 상반기 1심에 부쳐진 809명 중 41.4%인 335명이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고작 10.5%(85명)였다.

현재 형법은 가해자 중심으로 법이 집행되고 있고, 정준영도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꾸렸고, 휴대폰을 초기화하는 등 최대한 유리한 변호를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가 13일에 발표한 사과문에도 “위법한 행위들을 평생 반성하겠다”라는 등 적절한 법률용어가 섞여 있어, 이 또한 이후 있을 재판에 대한 준비작업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 구정모 변호사는 엠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 수가 많고, 동정 여론이 없기 때문에 정준영이 저자세로 혐의를 인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과조차 전략이 되어버린 지금의 형법은 분명한 문제가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른 승리가 괜히 “X 같은 한국 법 사랑해”라면서 공권력을 조롱한 게 아니다. 가해자 온정주의는 가해자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박탈감과 분노만을 안겨주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불법 촬영을 “삶을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검찰에게 법정 최고형 구형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지만, 실제 수사와 선고는 아직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지난 한 해 3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결집하여 불법 촬영에 대해 단죄해달라고 6차례에 걸쳐 시위했지만, 여전히 놀랍게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며칠 전 23일에는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피해자가 3년간 불법 촬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피해자는 “제가 2차 피해, 3차 피해를 당해도 좋으니 가해자가 반드시 제대로 된 죗값을 받게 도와달라”고 절실하게 요청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에 이런 각오가 필요한 것도 문제지만, 그 각오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마땅히 처벌할 수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안으로 불법 촬영 양형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불법 촬영 범죄의 형량이 물건을 훔친 절도죄보다 낮은 이상 정의구현을 위한 적절한 양형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거제도 성범죄 피해자를 변호하고 있는 김상균 변호사는 “절도죄의 형량이 6년인데 의사에 반한 불법 촬영 형량이 5년 이하의 징역이다.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못한 낮은 형량이 이러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양산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하루빨리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뼛속 깊이 인지하고, 수많은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양형 수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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