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진산의 면모를 회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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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 진산의 면모를 회복하려면
  • 박병상
  • 승인 2019.04.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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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계양산 ⓒ장용기>



진산(鎭山)의 면모는 무엇일까? 북풍한설을 막아주며 마을에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는 진산은 산자에게 편안한 보금자리를 죽은 자에게 영택(靈宅)을 제공해주었다. 진산은 우리 삶의 비빌 언덕이었다. 비빌 언덕이 허락하기에 조상은 농사와 초가삼간을 지을 수 있었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터덜터덜 몇 날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오던 가장은 멀리 진산을 보고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는데, 초고층빌딩들로 하늘이 비좁아진 요즘, 진산은 옛 위상을 잃었다. 맑은 물은 정수기가 시원한 바람은 에어컨이 대신한다.

인구 300만의 인천에서 계양산은 시방 진산의 위상을 잃었다. 한남정맥의 일원이지만 일상이 바쁜 시민들은 미세먼지로 흐릿해진 계양산에 예를 갖추지 않는다. 진산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가 없던 시민들은 국립공원이 아니라면 보전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파고드는 크고 작은 건축물에 기슭을 내준 계양산은 모진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1990년 대양개발의 천박한 놀이시설을 계획하더니 롯데라는 대기업에서 골프장으로 위협하지 않았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인천시민의 계양산 골프장 반대 의지에 최종 승리를 안겨주었다. 계양산은 드디어 진산의 면모를 회복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에 발맞춰 지난 3월 28일 오후 계양산을 지켜온 시민들은 인천시의회 산업경제위원회 상임위원회의실에 모여 계양산의 내일을 이야기하는 토론회를 공개적으로 열었다. 계양산의 가치를 보전하는 공원을 만들기 위한 논의였다.

현재 하루 15,000명이 운집하는 곳이 계양산이다. 토론회 참여자들은 진산의 보전을 위해 이용을 통제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공원 조성에 동의하지만 자본의 돈벌이를 위한 천박한 놀이 시설은 단연코 찬성할 수 없었다. 생태와 경관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에서 그치지 않았다. 참여자들은 계양산이 품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자산도 이 기회에 분명히 조명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아직까지 선언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들어온 시민사회의 촛불이다. 인천시와 시의회는 촛불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응답은 무엇일까? 등산로가 분별없이 확장되고 쓰레기가 쌓이는 계양산을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토론회 참여한 시민단체는 거액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요구하지 않았다. 시민의 애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 방법을 전문가에 의뢰하면 공허하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방향을 만들어야 바람직하다.

사심 없는 전문가의 훌륭한 계획이라도 시민참여가 배제된다면 공공의 가치는 퇴색되기 쉽다. 독일의 사례를 귀띔한 한봉호 서울시립대학 교수는 시민이 주도하는 계획이 시민사회에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 미군의 공항을 주택과 도서관 그리고 시민을 위한 문화시설로 개발하려던 베를린 시는 애초의 계획을 바꿨다고 한다. 시혜를 앞세우는 일방적 방침에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베를린 시는 준비한 개발안의 시행을 보류했고, 공항 부지를 한동안 개방했다고 한다. 시민들의 능동적인 이용을 한동안 살펴본 베를린 시는 시민의 의견을 전폭 방영한 ‘템펠호퍼공원’으로 조성했다는 게 아닌가.

베를린의 템펠호퍼공원과 계양산은 여러모로 다르다. 계양산은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생태와 경관을 가진 자연공간일 뿐 아니라 진산이다.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자부심 넘치는 공원으로 가꿔야한다는 점에서 참고가 가능하지만 공군비행장과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능동적인 시민을 어떻게 참여의 광장으로 이끌어오는가에 있다. 시민들과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공원을 조성한다면 계양산은 향후에도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진산의 품에 안겼던 마을은 진산에 경외심을 가졌지만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진산은 진산이다. 공원으로 조성되더라도 계양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를 위한 논의가 시민사회에서 충분히 선행되어야 하고 인천시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열린 논의 마당부터 서두르자.




 ⓒ장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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