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스퀘어, 인천의 그랜드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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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스퀘어, 인천의 그랜드파크
  • 유광식
  • 승인 2019.04.05 0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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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01) 인천대공원 / 유광식


 
<인천in>이 유광식 작가의 [고주파 인천]에 이어 [인천유람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우리 곁에는 인천 시민들의 휴식과 친교, 놀이의 장소가 되었던 곳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아련한 추억이 깃든 장소이면서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 곁에 함께 할 소중한 인천 속 공간들입니다. 그러한 공간들을 찬찬히 유람해봅니다. 작가의 눈길과 발걸음이 전하는, 인천만의 푸른 나날들을 함께 나눕니다.
 


인천대공원 정문, 2019ⓒ유광식

 


4월의 첫 날, 다소 찬 기온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거닐기 딱 좋은 기온과 시야였다. 인천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면 인천대공원이 있다. 차로 가면 빠르고 편리하겠지만, 인천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면 공원에 다다르며 열차 차창 밖으로 대공원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인천대공원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인천 사람들 못지않게 안산, 시흥, 부천 시민들 또한 자주 이용한다. 정문을 지나면 학익진이 연상되는 주차장이 나오는데, 그 규모가 거의 3,000면이나 된다. 개장이 1996년이니 어느새 공원은 20년을 훌쩍 넘긴 청년이 되었다.

내가 처음 대공원에 오게 된 연유는 행사 때문이었다. 근린시설이고 무료이다 보니 허가만 받으면 대규모 행사를 민원 없이 치를 수 있었고,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도 자유로이 참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인천대공원이 싫었다. 행사노동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필 왜 여기서만 행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후 마음을 달래려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공원 연못 주위를 10바퀴 이상 달리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재회한 공원에는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현대적인 모습의 시설과 오랜 시간이 배인 정문의 모습이 교차하며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또한 월요일 오후임에도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용객들이 많아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원은 어느새 봄이었다. 봄 햇살에 코트를 입은 스스로를 자꾸만 원망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풍경으로 변모한 것이다. 가방 없이 삼삼오오 걷거나, 운동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들이 평화로워보였다.

1호 매점 위쪽의 백범 김구 동상은 겉에선 눈에 띄지 않지만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김구 선생 투옥 당시 옥바라지를 한 곽낙원 어머니상도 세워져 있었는데, 두 동상의 완성도는 10% 정도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너무 우람한 척 위세 등등한 모습보다는 낫다. 최근 인천 중구의 백범 역사거리 조성사업에 따라 동상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복잡한 중구는 싫지만 동상이 있어야 할 곳은 대공원보다는 그곳이 맥락상 어울리는 것 같다. 

 

 


백범 김구 선생과 곽낙원 여사의 동상, 2019ⓒ유광식

 


그 어떤 사람도 나쁘게 보이지 않는 곳이 공원이다. 다들 천진하게 칼라색 옷을 뽐내며, 산책의 호흡에서는 건강함이 느껴졌다. 비눗방울을 불며 사진을 찍으려는 남녀 학생들, 엄마의 크루즈운항을 누리는 유모차 속 아기, 커플자전거를 타며 소리 지르는 커플, 반려견과 산책하는 두 남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 킥보드를 타는 여자 아이, 야외촬영을 나온 한 무리의 대학생들, 스트레칭 운동을 하고 배드민턴을 치는 남녀, 달리기 시합을 하는 남녀, 엉덩이 내밀고 밭두렁에서 나물을 캐는 빨간 점퍼 아주머니, 온실 뒤 벤치에서 이야기 나누는 중년 부부, 함께 그네를 타는 두 아주머니, 작업수레를 자전거에 붙여 작업장으로 가는 공원관리원, 목마 탄 딸아이의 무게에 힘든 기색 있는 아빠, 내가 봐도 버거워 보이는 강아지 모양의 흔들 스프링을 타고 노는 한 아저씨 등.

이 중에는 당신의 모습도 있을지 모르겠다. 공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즐거운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평소 감춰져 있던 자신의 평화로운 순간이 자연스럽게 들춰지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거나 버겁거나 해도 모두가 평온한 기색이다. 나도 그랬고 말이다. 복작거리는 삶의 사슬에 묶여 있다면 잠시 인천대공원으로 피신해 보아도 좋을 듯싶다. 가방 한가득 먹을 것을 싸와도 좋을 것이다. 쓰레기는 도로 가져가고 말이다. 

조각공원과 음악당을 지나 동문주차장을 나서며 공원을 벗어나면 만의골이 나오는데, 그곳엔 정말 오래된 장수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800년도 넘는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니 나무의 규모는 매우 웅장해서 신령한 위엄마저 느낄 수 있었다. 나무는 바로 옆 외곽순환고속도로 아래에 있는데, 차량소음이 심한데다가 다리 아래 품바아저씨의 지루박 스피커 소음까지 더해져 온전히 잠이나 이루시려나 싶었다. 부목들에 의지하면서도 우직하게 서있는 모습에 안쓰러웠다.

매년 가을, 당제행사가 열리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언제든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만의골 주변에는 등산객들의 유입이 많아서 음식점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소래산묵밥집의 묵밥이 인상에 남는데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세현이네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의 맛이 있어서일 것이다. 

 

 


공원둘레 산책길, 2019ⓒ유광식


동문주차장 밖 장수동 은행나무, 2019ⓒ유광식


산골짜기를 따라 장수동 쪽에는 인천대공원이 자리한다. 인천에서 조금은 비켜나 있는 곳이지만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보다 인천 비켜선파크가 난 더 좋다. 작은 명상의 공간으로는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시설의 현대화로 공원 규모를 좀 더 확장해야 할 판이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혼자도 좋고, 둘도 좋고, 가족이면 더 좋다. 동료들과도 함께 하고 행사로 들러도 가뿐함을 몰래 훔쳐갈 수 있다. 도중에 대나무 병풍 자리를 찾아보는 묘미도 쏠쏠하고 말이다.

다시 돌아 나온 공원 남문 안쪽에서 옥수수맛 소보루빵을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는데, 인천대공원역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면서 개나리 사이의 작은 벌집을 발견한 순간 움찔하기도 했다. 인천대공원은 2호선 개통으로 우리와 좀 더 가까워졌다. 한편, 뒷짐 지며 걸어가는 여자의 손을 감싼 남자의 손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며 봄이 왔는가 싶었다. 4월, 꽈배기처럼 자라는 왕벚꽃나무의 트위스트 춤이 기대된다.

 
바닥을 드러낸 공원연못, 2019ⓒ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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