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제, 치유되고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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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 치유되고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 류재형
  • 승인 2019.04.11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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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연 후 인터뷰 - 글·사진 류재형 / 사진가
  소청소청도 예동 바닷가에 세워진 기뢰폭발사고 위령탑


위령제 공연 팀과 대청면장, 소청1,2리 이장 등과 기념촬영
 
 
 - 공연 후 인터뷰

박춘봉(대청면장)
오늘 위령제를 통해서 우리 소청도가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과거의 아픔도 치유가 되고 함께하는 세상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간다면 그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이성만(2002년도에 위령탑을 세울 당시에 주관했던 이장, 서해오도 수산물직매장 대표)
느낌이라는 것이 산 자의 고마움,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그래서 스스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살아온 세월이 정말로 잘 살고 있었나 하는, 만감이 교차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오늘 공연을 위해 애쓰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공연을 보고 느낀 만큼 앞으로 열심히 잘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순천(대청면 소청출장소장)
이번의 소청주민들과의 대동단결할 수 있는 화합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인천문화재단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주민들이 함께 모여 화합하고 하나되는 자리를 1회성이 아닌 향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너무 좋겠습니다.
 
조성청(소청2리 노화동 이장)
공연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준복(소청도 예동주민, 인천광역시 재정특별보좌관)
1946년도 72년 전에 소청도에서 일어났던 기뢰폭발사건에서 67명의 우리 부모와 형제들이 사망했던 슬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위령제를 통해서 그동안 잊혀져가기만 했던 슬픔의 역사가 우리 고향의 발전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고 우리 지역주민들도 이 행사를 통해서 더욱 하나 되는, 그래서 마을이 단합되고 화합되어 지역발전에 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행사를 위해 고생해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김지훈(소청도 주민, 사건 당시의 생존자)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제가 여기 참여해 행사를 진행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위령제를 지냈으니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가서 하나 같이 행복하게 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이 뒤따라서 갈 터이니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당시 위령탑에 새겨진 사람들이 한 사람도 안 남고 모두 갔어요. 마을 위의 집에서 해변가에 있었던 나의 할아버지 최씨 처갓집에 내려오다가 큰 폭발음이 들렸고 당시 7살이던 내가 벌떡 넘어져 기절했습니다. 폭탄 안에서 유황을 꺼내 오려고 폭탄을 해체하다가 사고가 났어요. 성냥이 없어서 노란 황을 불에다 녹여서 소나무 진액으로 찍어 성냥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나마 1개는 해체해서 유황을 가져간 다음이라서 덜 했고 그렇지 않았으면 마을이 다 날아갈 뻔 했어요. 나는 원래 여기 태생이고 청풍 김씨가 초기에 여기 소청도에 왔어요.
 
김정숙(예동 부녀회장)
오늘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공연이 눈물이 나도록 좋았어요. 이번 위령제를 통해 좋은 일만 오겠지요. 이번 공연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김순옥(당시 이은철 이장 부인)
이번 위령제를 통해 마을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승아 선생님의 춤도 좋았고 새도 좋았습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류재형(프로젝트 총괄, 사진가, 인천가톨릭대 문화예술교육원 사진영상교수)
여기 들어와 장장 6일동안 준비했습니다. 소청도에 70여년 아픈 역사 속에서 처음 위령제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걱정도 많이 했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마을 분들이 좋아하시네요. 마음 한 구석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행복합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힘들었지만 소청도라는 특별히 복 받은 섬에서 이런 행사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기쁨이 마을 분들에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승아(프로젝트팀 예술감독, 행위예술 무용가)
아직도 60년대의 순수함이 있는 이 마을의 어르신들 모습, 이곳에서 어떤,, 뭔지 모르지만 행위를 통해 마음으로 함께 했다는 것 , 공연이 끝나고 같이 부둥켜안고, 이곳의 슬픈 역사를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주민들의 모습들이 좋았습니다.
이 섬에서 문화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행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첫 번째로 주민들을 이해하고 다가가자, 그리고 함께하자 라고 시작했지만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공연이 끝난 후 모든 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셨다는 것이 그것만으로도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춤의 의미는 오로지 하나, 해방 후 기뢰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과 고기잡이 나가 돌아오지 못한 분들에게,,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몸과마음이 함께 그 때 그분들을 추모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소청도는 아직도 60년대의 순수한 때 묻지 않은 곳이고 유네스코지정 지질공원이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습니다.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잘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을 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한마음으로 화합하면 이곳을 지켜갈 수 있고 외지의 분들과 마음의 예의를 갖출 수 있다면 아름다운 섬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곳에 와서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소청도는 자연이 주신 축복의 섬이고 화합된 마음으로 지켜가야 합니다.
 
하택후(사물놀이팀 들소리 타오 대표)
이곳 소청도에서 공연을 했고요,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기회이고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소청도가 안고 있는 아픈 역사를 저희가 가진 음악이 쓰임을 통해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들어와서 느꼈던 것은 참 섬이 고요하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안에 아픔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힘을 내어 응원할 수 있었다는 것,, 이 분들이 앞으로도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연이 저희에게도 더욱 뿌듯하고 좋았습니다.
 
문계봉(시인)
나는 인천에 살면서도 섬을 많이 찾아다니지 못했는데 소청도에 아픈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다. 이런 소청도의 아픈 역사를 마을주민들과 더불어 축제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인천문화재단의 이번 서해평화프로젝트 정신에 부합하는 행사 같았고 참 의미 있고 즐거운 행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섬에 아픈 역사를 몰랐고 다시 오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섬이라 생각합니다.
 
김선미(프로젝트팀 스탭, 분장 전문가, 메이크업 교수)
소청도의 마을 분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니 가슴 뿌듯합니다.
 
최다혜(프로젝트팀 스탭, 분장학과 대학생)
이런 자리를 제가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12월 26일 프로젝트 마무리_책자 발간과 보고회
프로젝트 보고회를 위한 책자 작업과 보고회가 12월26일 오후 4시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50여명의 문화예술관계자가 참석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40분간에 걸쳐 동영상을 상영하였고, 책자를 편집한 40점의 사진과 텍스트를 게첩하였다

 


 
 
위령탑의 내용

푸른 파도가 엄실대는 한반도 서쪽 끝자락인 소청도에 혼돈과 질곡의 역사를 온 몸으로 보듬고 숨져간 분들이 있으니, 반세가 넘은 지금에야 비로서 님들의 넋 앞에 옷깃을 여미고 부끄러이 선다.
1945년 10월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에 남과 북이 분단되는 먹구름이 드리워져있었고, 사회 혼란과 일상의 궁핍이 만연한 시기였었다.
이 즈음에 일제가 태평양 전쟁 중에 설치했던 기뢰 3기가 소청도 해안가에 밀려와 이중 1기는 자연 폭발하였고 2기가 남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던 터라 이를 해체하여 연료로 사용하고자 하는 주민의 의견에 따라 1기를 해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10월9일(음력 9월4일) 오후 마지막 남은 1기를 해체하던 중 주민의 부주의로 기뢰가 폭발하여 67명의 사상자(사망 59명, 부상8명)가 발생하였다. 그 폭발음은 소청도를 뒤흔들고 백령도까지 확연히 미쳤다하니. 예동포구의 참상과 통곡소리를 어찌 인간의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리오, 역사는 침묵하고 있으나 그 속에 희생되었던 억울하고 비통했던 삶을 토대로 오늘날 안녕을 구가하고 있는 우리들, 다시는 고난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신 영령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일 것이다.
 
고인들이여! 이제는 찬란한 햇살이 님들의 영혼에 비칠 것이니 평화 가득한 천국에서 편히 잠드소서.
사망자 ,,,,, 명단
 


 
 
고기잡이로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소청도 주민

그동안 7척의 조개잡이 어선에 조업하던 주민, 2척의 홍어잡이 어선의 주민 12명 등 예동, 노화동 주민이 합쳐서 50여명이 넘는다.

 

1995년 2월에 대청면에서 펴낸 대청면지에 단 1페이지만 나와 있는 당시의 참사에 대한 기록, 하지만 여기에도 오류가 있는 사실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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