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울고 구명조끼나 어서 입어”
상태바
“그만 울고 구명조끼나 어서 입어”
  • 최일화
  • 승인 2019.04.19 0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시단] 최분임의 시 <교육의 힘>을 읽고 / 최일화 시인


세월호 사건 5주기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이 있던 해 한 문화단체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성찰하고 문화예술계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어떤 분은 단군 이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 하고 어떤 분은 문화예술 작품 속에 이 사건이 계속 다루어져야 한다며 경각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엄청난 사건에 참가자 모두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관련 예술작품이 확대 재생산 되어 안전한 사회 건설에 이바지해야 한다는데 모두 공감했다. 철저하게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모든 분야에서 제도를 정비하고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관용과 배려, 책임과 질서, 양심과 도덕으로 기강이 살아 있는 사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오늘은 시흥에 사는 최분임 시인의 시집 『실리콘 소녀의 꿈』에서 시 한 편 골랐다. 시인 스스로 침몰하는 배에 갇힌 십대 소녀가 되어 그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그 상황의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시다.


교육의 힘
                                             최분임
 
해경이 곧 온대잖아, 그만 울고 구명조끼나 제대로 입어. 배 옆구리에 선장처럼 든든한 구명정도 주렁주렁 달렸던데 뭐가 걱정이야. 떠오르지 못하는, 끔찍한 상상은 제발 그만둬. 우리가 배운 것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니. 누굴 믿지 못하는 건 아주 나쁜 습관이야. 쓸데없는 예감도 저 맹수 같은 파도 아가리에나 던져 줘. 맹골수로라 함부로 뛰어내리면 물고기 밥이 될 수도 있대잖아. 배가 흔들린다고 추억까지 흔들어야겠니. 어른들 말 잘 듣는 건 네 장점이잖아. 그래, 그렇게 웃으니까 어젯밤 불꽃놀이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그때 우리 벚꽃처럼 환했잖아. 네가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늘 살아남았잖아. 어깨 늘어뜨리지 말라니까. 희망 같은 낱말에 밧줄을 맬 시간이야. 안내방송이 객실이 제일 안전하다고 몇 번이나 그랬잖아. 이건 그냥 처음 보는 시험 같은 거야. 지금 누굴 의심하는 건 시험을 망치는 일이야. 움직이지 말라는데 왜 자꾸 안절부절못하고 그러니. 자, 내 구명조끼에 그 불안을 묶어. 불신도 단단하게 고정해. 승무원들은 뭐 하냐고 자꾸 재촉하지 마. 잘 훈련된 매뉴얼이 곧 우리 안부를 물으러 올 거야. 형틀에 묶인 것 같은 구명조끼, 제발 그 표정 좀 풀어. 그래 안심해, 나도 네가 있어 위로가 돼.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어. 아직 안녕이란 인사를 남기긴 일러.

 
시 속 주인공들의 대화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저 아이들의 목소리는 교정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나누는 대화가 아니다. 봄철 수학여행을 떠나며 기분이 들떠 주고받는 가슴 설레는 얘기가 아니다. 저 대화는 하늘과 땅이 울먹이는 소리며 산천초목이 나지막하게 흐느끼는 소리다. 공포심에 짓눌려 엄마아빠를 부르며 울먹이는 소리며 침착함을 가장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의 비명인 것이다. 미래의 꿈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 울부짖는 탄식이다.

 
끝까지 선장과 승무원, 어른들을 믿으려는 어린 영혼들의 순결한 언어다. 구명정, 구명조끼라는 것도 처음 보고, 객실, 승무원이라는 말까지도 처음 듣는 순박한 아이들이 믿었던 건 구원처럼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이었을 것이다. 선실에 내붙었을 안전수칙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의 모든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정부의 무능, 기업의 탐욕, 실종된 책임의식, 안전 불감증, 위기대응능력의 부실이 한 몸뚱이를 이루어 이 참극을 불러왔다. 수많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의 무능한 대응을 보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5일 '4·16연대‘와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사건 처벌 대상 1차 명단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 13명과 관련 기관 5곳의 이름이 올랐다. “구조가 가능했던 1시간 40분 동안 대기 지시를 내리고 퇴선을 막아 무고한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만들었다"며 당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누굴 믿지 못하는 건 아주 나쁜 습관이야…/ 배가 흔들린다고 추억까지 흔들어야겠니…/ 어젯밤 불꽃놀이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그때 우리 벚꽃처럼 환했잖아…/ 네가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늘 살아남았잖아…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하며 상황을 버텨내는 안간힘과 생명에 대한 애착이 우리를 전율케 한다. 어른들에 대한 신뢰와 청순하고 꿈 많은 십대들의 순진무구한 감성이 끝내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고 만다. ‘아직 안녕이란 인사를 남기긴 일러’ 끝 구절에서 처절한 비극을 예감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사실을 직시하기엔 너무 벅찰 때 비유법을 써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풍자의 형식을 빌린다. 이 시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없다. 위급한 상태의 구체적 상황 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대사는 한 마디도 없다. 십대의 두 소녀가 평소의 방식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전부인데 그 대화 속에 엄청난 비극이 감지되고 있다. 아마 주인공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까지도 죽음에 대해 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위기만 넘기면 즐거운 수학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초창기 잠수함엔 토끼를 함께 태웠다고 한다. 산소 부족을 토끼가 먼저 감지하기 때문에 토끼의 상태를 관찰하여 위험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곧잘 시인을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하곤 한다. 이 시는 어린 두 학생의 대화를 통해 세월호 사건의 책임을 묻고 있다. 시인 스스로 사고 현장의 주인공이 되어 시인의 감수성으로 사건의 참상을 전하고 책임의 소재를 묻고 있다. 아이들은 지금 급박한 신호를 보내며 온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사건이 일어나던 해에 필자도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누가 너희들을 부모의 품에서 빼앗아 갔느냐고, 누가 너희들을 아름다운 교정에서 내친 것이냐고, 무엇이 너희들의 꿈길을 막아선 것이냐고, 너희들도 자랑스러운 단원고등학교 동문이라고……. 정당한 분노는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것은 죄악에 동참하는 것이고 범죄에 대한 방관이다. 지금도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요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사고로 숨진 고귀한 넋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 넋들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은 온 국민의 노력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최분임: 시인. 경북 경주 출생. 2014년 제 12회 <동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제 8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동서문학회, 소래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