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우리 센터에서 제일 우수 학생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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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우리 센터에서 제일 우수 학생이세요"
  • 김인자
  • 승인 2019.04.2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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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칭찬


"따님을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키우셨어요?
하긴 우리 딸도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할무니한테 잘하긴 했지만 우리 딸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요. 어찌나 할무니한테 살갑게 잘 하던지 다른 어르신들이 모두 심계옥 어르신 부러워하셨어요."

"에구,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특별히 이뿌게 봐주셔서 그런거지요. 고맙습니다." 요양사 선생님의 딸아이 칭찬에 심계옥엄니가 깊숙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신다.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또 다른 한 손은 배꼽에 대고 유치원 아이처럼 배꼽인사를 하신다.

"그나저나 선생님 친정집은 이번에 불 난거 괜찮으신가요? 을마전에 강원도에 산불이 크게 났다고 하던데. 으트게 선생님 댁은 화마가 피해갔나요?"

심계옥 엄니가 요양사 선생님을 보며 묻자 요양사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아고 화마요? 다행히 저희 집은 괜찮아요, 어르신. 우리 심계옥 어르신이 우리 센터에서 제일 우수 학생이세요. 기억력도 좋으시고 말 수는 적으시지만 경우에 맞는 말씀만 하시고  최고세요, 최고"

아침부터 딸아이 칭찬을 들은 것도 과분한데 90세인 엄니가 선생님한테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자식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 보다 더 기분이 좋고 기쁘다.

"심계옥 어르신은 언어 전달력도 뛰어나시고 만들기도 잘하세요. 올해 들어 부쩍 다리 힘이 빠지셔서 그게 걱정이지 인지능력은 점점 더 좋아지시는 거 같아요. 어제도 저한테 살짝 오시더니 산불화재 피해는 없는지 물으셨어요. 어르신이 제 친정이 강원도 속초인걸 어찌 아셨을까요?"

지난번에 속초에 산불이 크게 났을때  심계옥 엄니랑 티비를 보면서 지나가는 말로 "요양사 선생님 친정이 속초라고 하셨는데 괜찮으시려나? " 했었다.  심계옥 엄니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으셨나보다.

오후 네 시 삼십 분
치매센터에서 돌아오신 심계옥 엄니가 화단에 예쁘게 핀 빨간 튜울립을 보셨다.
"아이구, 예쁘다. 저 빨갛게 핀 꽃 이름이 뭐냐?"
"튜울립"
"아,툴립"

요 며칠 튜울립을 보며 무슨 꽃이냐 계속 물으시는 울 심계옥엄니. 물으실 적마다 "저 꽃은 튜울립이다." 하고 답해드려도 곰방 잊어버리시고 볼 때마다 
"고거 참 이뿌기도 하다.저 꽃 이름이 뭐라고?"
"튜울립. 저 꽃 예뻐? 엄니?"
"예쁘다. 저 혼자 독자적으로 폈어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홀로 피어있는게 신퉁하다."
"그럼 저 꽃은? 저 꽃은 안 예뻐?
"어떤거?"
"저거"
화단 한 구석에 숨어서 핀 빨강 동백꽃이 예쁘기도 하고 엄니가 좋아하시는 빨강이라 "엄니, 저거봐 예뿌지? 엄니가 좋아하는 빨강꽃이 저렇게 많이 폈네." 하고 호들갑을 떠니 심계옥 엄니 별 반응이 없으시다. 좋아하시기는 커녕
"에그, 색깔이 왜 저러냐?" 하며 인상을 찌푸리신다.
"왜 안 예뻐? 엄니가 좋아하는 빨강꽃인데."
"안 예쁘다. 내가 아무리 빨강이 좋아도 저건 안 이쁘다."
"안 예뻐? 난 예쁜데."
"이뿌긴 뭐가 이뿌냐? 저 잎사구 때깔 좀 봐라. 얼룩덜룩허니 색이 바랬잖냐?"
"이파리 색이 좀 바래서 그렇지 꽃은 엄마가 좋아하는 빨강색인데."
"저렇게 욕심이 많은 빨강은 난 안좋아한다."
"욕심이 많은 빨강? 엄니, 꽃이 무슨 욕심이 있어?"
"꽃도 욕심이 있다.욕심이 없으면 저만 빨갛게 이쁘겠냐? 이파리는 저렇게 못쓰게 내버려두고?"
"이파리색이 바랜게 뭐 꽃 때문인가?"
"꽃 때문이지. 그럼 누구 때문이겠냐? 꽃이 저만 욕심 사납게 햇볕을 몽땅 차지하니까 잎사구가 빛을 못봐서 때깔이 저 모양인거다. 꽃이 이쁠라믄 저만 이뿌지말고 잎사구도 같이 싱싱하고 이뻐야지. 저만 빨갛게 이쁘믄 뭐에 쓰겠냐? 그나저나 참 좋더라."

"뭐가 좋은데 엄니?"
"우리 민정이랑 이번에 핵교서 소풍간 딸기밭 말이야. 잘 만들어 놨드라. 한 몇 억 들었겠어?"
"딸기밭을 어떻게 만들어 놨길래 몇 억이 들어? 금딸긴가?"
"딸기밭도 아주 멋지고 건물도 아주 근사하더라. 민정이랑 나랑 만들어 온거 먹어봤냐? 빵에다가 딸기도 넣고 하얀거 단 것도 듬뿍 넣고 모냥도 이쁘지? 맛도 좋고. 먹어봤냐?"
"아,딸기케잌? 맛있던데. 엄니가 만드셨어?"
"응, 우리 민정이랑 내가 만들었지.
딸기도 한 사람앞에 스무 개 따서 가져가라고 해서 딸기도 따고. 좋더라 싱싱한게."
"스무개? 엄마가 따온거 스무 개 넘던데."
"아 첨에 나랑 민정이랑 딱 스무 개 따서 가져갔더니 거기 선생님이 더 따서 담으라고 하더라."
"스무 개 안 땄어?"
"스무 개 땄어. 딴 사람들은 너무 많이 따서 더러는 덜어내고 했는데 우리는 스무 개가 모자란다고 더 따오라고 해서 가서 더 따왔어. 다른 사람들은 많이 따서 더러 덜어내는 사람도 있고 고자리에 서서 덜어낸 거 먹는 사람도 있고 가지오지야."
"가지오지?"
"어, 가지오지. 사람맘이 다 다르다고.
허긴 올망졸망 새빨갛게 달린거 따는 재미가 좋아서 나도 스무 개보다 더 많이 딸 뻔 하긴 했어.한 개 두 개 세 개 이러믄서 숫자 세다가 잊어버려서 또 다시 처음부터 세고. 이제는 정신이 없어서 달랑 스무 개 세는 것도 어려워. 세다 보믄 곰방 잊어버려."

"엄니 숫자 잘 세시잖어."
"잘 셌지.근데 이젠 못 세. 세다 보믄 죄 까먹어. 우리 민정이가 옆에서 셔주지 않았으믄 나도 많이 땄다고 선생님들이 더러 덜어냈을지도 모르지. 욕심 부리는거 아닌데도 자꾸 세는걸 까먹어."
"할무니들도 세는걸 잊어버리셔서 스무 개보다 많이 담아오셨나보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너무 많이 따왔다고 거기서 재는 사람이 뭐라고 하드만. 허긴 그 사람들도 손해보겠드라. 그 많은 사람들 이거저거 여러가지 공짜로 다 하게 해줘서 손해가 많이 났을거야."
"공짜 아니야 엄니. 센터에서 할무니들 인원수만큼 체험비 내고 한거야."
"그래? 그래두 돈을 을마나 냈는지 모르겠지만 딸기밭 주인 우리 늙으이들 땜에 손해 많이 봤을거야. 할무니들이 스무 개만 따라고 했는데 욕심부리고 더 많이 따고 또 따면서 입에 연신 집어넣고. 그 양이 만만치 않을걸? 먹고 싶으믄 돈을 더주고 사먹든가 허지. 공짜라고 욕심부리믄 안되는데. 암튼 그 사람들 손해 많이 봤을거다.나두 장사해봐서 아는데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게 장사야. 장사 아무나 하는거 아냐. 힘만 들지. 그나저나
우리 민정이가 아주 신퉁하더라."
"왜 엄니?"
"아까두 선생님이 그르잖냐? 우리 민정이 아주 이뿌다구."
"민정이가 어쨌길래 선생님도 엄니도 민정이 예쁘다고 칭찬하시지?"
"이쁘니까 이뿌다고 허지. 딸기밭에서 딸기도 땄지만 케잌도 만들었거든? 컵에다 각자 한 개씩."
"각자 한 개씩?
집에 가져온거 보니까 딸기는 두 팩이고 케잌은 한 개던데."
"원래는 민정이 한 개, 나 한 개 이렇게 두 개 만들었는데  우리 민정이가 지가 만든걸 어떤 할무니 줬어."
"민정이가 자기가 만든 케잌을 어떤 할무니를 드렸다고?"
"응, 집에 있는 할아버지 갖다드리라고.
우리 민정이가 조렇게 이쁜건 욕심을 안 부려서다. 민정이도 자기가 만든거 집에 가져 오고 싶지 않았겠냐? 근데도 자긴 빵 안 좋아한다면서 열심히 만든 케잌을 그 할무니한테 선뜻 내주드만."
"민정이가 그랬어?"
"그랬다.우리 민정이가 빵을 얼마나 좋아하냐? 근데도 자기가 애써 만든거 할아부지 갖다드리라고 그 할무니 주더라.
사람이나 꽃이나 모름지기 욕심부리믄 못쓴다.
그나저나 저 빨강꽃 이름이 뭐라고?"
"튜울립"

꽃 이름은 알려 드려도 매번 잊으시면서 매사에 지혜로우신 울 심계옥 엄니
내일 아침이 되면 화단에 핀 빨강 튜울립을 보고 또 물으실거다.
저  빨강꽃 이름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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