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센스'와 '플란다스의 개'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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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와 '플란다스의 개' 사이에서
  • 김현
  • 승인 2019.05.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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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애련과 공포에 대하여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고전을 읽고 함께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고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문턱을 넘습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에는 김경선(한국교육복지문화진흥재단인천지부장), 김일형(번역가),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전읽기 연재는 대화체로 서술하였는데요, ‘이스트체’ 효모의 일종으로 ‘고전을 대중에게 부풀린다’는 의미와 동시에 만나고 싶은 학자들의 이름을 따 왔습니다. 김현은 프로이드의 ‘이’, 최윤지는 마르크스의 ‘스’, 김일형은 칸트의 ‘트’, 김경선은 니체의 ‘체’, 서정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베’라는 별칭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14장
 
공포와 장경으로부터 환기될 수도 있고 사건의 구성 자체로부터 환기될 수도 있으나 후자가 더 우수한 것이며 더 탁월한 시인만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플롯은 시각에 호소하지 않더라도 사건의 경과를 듣는 자가 그 사건이 일어날 때부터 전율과 애련을 느끼게끔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86
 


체: 오늘도 탁월한 시인이 만든 플롯 자체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애련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스: 공포하니까 기억에 남는 공포영화는 잔인한 영상이 있는 것보다는 분위기와 스토리로 점점 스산하게 만든 영화들이 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트: 장경이 주는 공포는 순간적으로 놀라긴 해도 금방 잊혀지는데 음산한 음악과 조용한 듯한 작은 움직임, 규정할 수 없는 분위기와 극적 반전 등 전체적인 스토리가 주는 공포스러움은 그 잔상이 오래 가는 것 같아요.
 
베: 우리는 잘 짜여진 스토리가 주는 안정감이 어느 순간 마지막을 설명하기 위한 긴 여정임을 알았을 때 느낄 전율을 작가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곤 하잖아요.
 
체: 영화 ‘식스센스’ 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스: 저는 영화 ‘하얀리본’이라는 스릴러 영화가 주는 느낌이 좀 묘했어요.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는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범인을 알 수 없는 일련의 일들이 흑백영화로 그려지는 모습속에서 음산한 공포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사람마다 느끼는 공포의 요소는 다른 것 같은데 저는 ‘공중그네’라는 책에서 나오는 조폭 부두목이 가지고 있는 ‘선단공포증’ 즉 뽀족한 물건이 주는 공포스러움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스토리와 전혀 상관없이 사물 그 자체가 주는 공포감이 훨씬 커요.


 


체: 공포영화가 아니면서 일상사건이 주는 상황공포도 있을 수 있어요. 펜션으로 여행 온 일가족이 펜션 도착 즉시 문두드리는 소리에 일상적인 반응을 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처참해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보통 펜션에 도착하고 즉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대부분 주인이 왔다고 생각하고 의심없이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범인은 그 점을 노리고 있었던 거죠. 무심하게 하는 반응이 무심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때 나중에 그 경험은 엄청난 공포의 기억으로 우리를 지배할 것 같아요.
 
스: 핵심은 플롯인데 우리 너무 공포 그자체에 매몰된 것 같아요.

 
비극에 고유한 쾌락이란 애련과 공포에 기인한 쾌락이요. 시인은 이 쾌락을 모방에 의하여 산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그 원인이 되는 것이 시인이 그리는 사건 중에 포함되어야 함은 명백한 일이다.”87

 
트: 애련, 연민이라는 뜻이 좀 애매한데요.
 
베: 13장에서 애련은 주인공이 부당히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된다고 하고 있는데요. 안타깝다, 불쌍하다는 뜻인 것 같아요.
 
스: 저는 공감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불쌍히 여기는 연민보다는 고통을 함께하고 공감한다는 의미가 더 적절할 것 같아요.
 
체: 비극이 필요로 하는 요소가 잘 짜여 있을 때, 즉 우수한 플롯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우리는 비극이 주는 고통과 공포를 공감하게 되는데 그 때의 감정이 연민, 애련 아닐까요.
 
베: 예전에 봤던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가 생각 나는데요. 주인공의 애련하면서 슬픈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요. 이 당시에는 어렸을 때라 배경음악과 주인공의 힘겨운 모습이 불쌍히 보였던 것 같아요.
 
체: 가난한 유럽에서 그 당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로 돈벌러 간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나는 스토리 자체가 애잔함을 자아내고 있어 주인공의 슬픔에 공감했던 것을 아닐까요?
 
이: ‘플란다스의 개’라는 만화도 기억나요.
 
체: 요즘 미학강의에서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그림에 대한 얘기 심심치 않게 나오던데요.
 
베: 주인공 네로가 마지막 성당 안에 가리워져 있던 루벤스의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보면서 파트랴슈와 함께 죽어가던 장면은 너무 슬펐어요. 이 감정이 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 두 만화 모두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탄탄한 스토리의 힘인 것 같아요. 작가가 그려내는 사건 속에서 비극적 요소가 충분히 반영됐기에 우리가 공감하고 연민을 느꼈던 것 같아요.
 
체: 요즘에는 그런 만화가 방영이 안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 요즘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에서 우리 스스로 비극에 무뎌진 것은 아닌지, 아니면 공감능력을 잃어버려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스: 플롯 자체에서 느껴지는 애련과 공포는 우수한 플롯의 당연한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보는 아리스토텔스의 생각과 비교할 때 우리는 애련이나 공포 그 감정 자체에만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플롯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체: 우리는 비전문가라 그런 게 아닐까요? 점차 무뎌져 가는 우리의 감각들을 시학을 통해 회복했으면 합니다. 그 기운으로 다음 시간도 함께 해요.
 
정리: 이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손명현역(2009), 시학, 고려대학교출판부.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역(2017), 수사학/시학, 도서출판 숲.
Aristoteles, Manfred Fuhrmann(1982), Poetik, Griechisch/Deutsch, Philipp Rec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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