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라면 할머니 손톱 보고 당장 칭찬해드렸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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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라면 할머니 손톱 보고 당장 칭찬해드렸을텐데...'
  • 김인자
  • 승인 2019.05.0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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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기분 좋은 스타트


가정의 달 5월이라 그럴까요? 아님 빨간 날이 많아서 일까요? 미리 와서 약 처방 받아가려는 사람,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 손 잡고 온 사람, 콜록 콜록 잔 기침하는 사람, 병원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합니다. 두 달 전에 예약 해놓은 병원 내원 날짜가 어제인걸 깜박했어요. 사실 오전과 오후에 두번 씩이나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일 저일 처리하다보니 간다간다 해놓고 못갔지요.

"내일은 오전에 오셔야해요. 선생님께서 오후에는 수술이 있으셔서 오후엔 진료가 없으세요. 그리고 내일은 예약일 지나고 오시는거라 창구에서 다시 접수하셔야해요. 그러니 꼭 오전에 오세요."

두 번이나 약속을 어겼는데도 전화속에서 전해지는 담당간호사의 따뜻한 목소리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오전에 꼭 오라는 간호사의 거듭된 당부 때문에 치매센터 가시는 어머니를 배웅하자마자 그 길로 곧장 병원에 갔어요.

까똑.
병원 앞 횡단보도 앞. 친한 책벗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신기하네요. 그녀도 나처럼 시어머니 약을 타러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하네요.

 
"어머님 약타러 병원가려고 버스탔어요.
옆에 할머니 손톱이 너무 이뻐서 말을 걸까?말까?. . .
샘이라면 할머니 손톱 보고 당장 칭찬해드렸을텐데...
선생님 생각하며 용기 내 봅니다.

"할머님, 손톱이 너무 이뻐요~"
"울딸은 더 길고 이뻐요.."

-침묵-

"그럼 언니 손톱이랑 바꿔줄까?"
"바꾸고 싶다고 막 바꿔져요?
할머니, 그럼 얼마에 바꿔주실거에요?"
"언니는 내가 그냥 공짜로 바꿔줄께."

그러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시면서
"나는 이제 내려요. 조심히 가요."

할머니가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네요.
샘 생각하면서 용기 내었습니다.
용기내게 해주시는 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할머니께서도 잠깐이지만 기분 좋아지셨겠죠? 저처럼요.
샘도 좋은 기분으로 스따뚜~~~!!"



반가운 문자 덕분에 병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어요.

기분좋게 병원에 도착하니 접수 창구에도 진료실 앞에도 사람들이 바글 바글합니다. 예약일 지나서 왔기 때문에 접수를 다시 했습니다. 대기표를 뽑으니 접수번호가 60번째 뒤입니다. 세상에나 어제는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접수하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합니다. 1층인 신경과에서 심계옥엄니 치매약을 타야하고 2층인 심장내과에서 기침약을 타야는데 이럴 땐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두 시간쯤 기다려 신경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할머니 그동안 어떠셨냐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당장 어제 새벽에 화장실 가시다가 쓰러지셨단 말씀을 드렸습니다.식사하시다 두어 숟갈 드시곤 목이 막혀 더이상 식사도 못 하셨단 말씀도 드렸지요. 의사선생님이 아프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난 왜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선생님, 우리 엄니가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오만 군데 안아픈 곳이 없어요."라고 하소연을 하는 걸까요. 울 할무니들처럼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벗으시며 어디 한번 맘껏 말해봐 하시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으시네요. 이렇게 구구절절 아픔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비단 나뿐만 아닐텐데 의사선생님은 선한 미소를 지으시며 낮은 목소리로 이리 말씀해 주시네요.

"그러게요. 어르신들이 아프지 않으시면 참 좋겠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어쩔 수가 없으세요. 그저 조심 또 조심 하는 수 밖에요. 다리에 힘이 없으시니 주무시다 곧바로 일어나 걸으시면 안되세요. 특히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실 때 무조건 조심하셔야해요. 일어나서 바로 걷지 마시고 자리에 잠시 앉아 계시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걸으시라고 하세요.식사하실 때도 첫 수저를 잘 떠서 넘기셔야해요."

내 뒤로도 대기하고 있는 진료환자가 줄줄이 사탕인데 의사선생님이 서두르지 않고 자상하게 답을 해주시니 괜히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어요.

"사실 어르신들은 밥을 드실 때보다 물을 드실 때 각별히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물을 드실 때요?"
"예, 어르신들이 밥을 드실 때는 그나마 조심들 하시는데 물을 드실때는 급하게 그냥 쭉 들이키시거든요. 그러다 목에 걸려 힘들어하시죠. 가장 위험한건 급하게 드시다가 폐로 물이 들어가면 큰일 나세요.그러다가 폐렴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 물을 드실 때 정말 조심하셔야해요."
"어떻게 조심해야할까요?선생님"
"예, 가장 좋은건 숟가락으로 한 숟갈씩 떠서 드시는게 좋아요 찬물보다는 따뜻한 물을 드시는게 좋구요."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인데 잘 지켜지지 않는 상식 하나를 또 배웠습니다.
물을 드실 때는 '따뜻한 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천천히 드시기'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꼭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인사하고 나오는 제게 의사선생님이 부탁까지 하시네요.
이번엔 삼십 분을 더 기다려 심장내과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두 달 전에 뵈었을 때보다 심장내과 선생님 얼굴이 많이 안되셨네요.

"선생님, 그동안 어디 아프셨어요?"
이런, 이런 경우를 주객이 전도되었다하나요?
"왜요? 제가 아파 보이나요?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런가?" 의사선생님이 농담을 다 하시네요. 아픈 분들이 많아서 그러시대요. 힘드시겠어요. 했더니 좋아서  하신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랍니다.

"좋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그 어려운 일을 제가 하고 있지 말입니다." 배우처럼 말씀하시는 의사선생님 방을 처음으로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다른 의사선생님 방과는 좀 다르더군요. 방도 넓고 둥글고 하얀 소파가 있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인기쟁이 의사선생님이셔서 그런가 병원에서도 특별한 혜택을 받으시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수염도 자르지 못한 카슬한 의사선생님과 대조되는 희고 깔끔한 소파가 왠지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흰 소파에 누워 잠깐 잠깐씩 쪽잠을 주무시지 않을까 싶네요.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힘든 일을 즐겁게 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뵙고 나오는 길. 기다리면서 힘들었던 그 오랜시간이 자상한 의사선생님 덕분에 한번에 보상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사는 힘든 일이지만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해요." 하고 말하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차안에서 만난 할머니의 예쁜 손톱을 보고 예쁘다고 말을 건네는 따뜻한 관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이 말 저 말 말씀들이 많으셔도 귀찮아 않으시고 친절하게 할머니 할아버지 넋두리에 일일히 응대해주시는 따뜻한 마음,
이 모두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길 바래봅니다.

오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많이 많이 하는 의미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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