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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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풀어라
  • 최원영
  • 승인 2019.05.1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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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단순함이 주는 행복


 
풍경 #110. 단순함이 주는 행복

 
살아갈수록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영어나 컴퓨터를 배우지 않았어요. 영어는 중학교부터 배웠었지요. 놀 수 있는 장난감도 별로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공을 차거나 자치기나 비석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할 것도 많아졌고, 옛날과는 달리 세상이 험해서인지 보호자가 없이는 밖에 나가 혼자 놀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집안에서 놀 것들은 무척 많아졌습니다. 한 예로, 컴퓨터를 열면 온갖 게임들이 즐비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무척이나 복잡해졌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배움을 멈추면 세상의 가파른 흐름에 뒤처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한 가지 일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도 별 탈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면 남들에게 뒤처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이것과 동시에 저것도 기웃거리면서 살아가곤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저녁 뉴스의 메인화면도 가세합니다.

저녁 식사를 먹은 후 아내와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패널들의 분석을 듣고 있던 저에게 느닷없이 아내가 외칩니다.
“아니,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었네.”
순간, 무슨 말인지를 몰라 당황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메인화면에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화면 밑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자막뉴스가 보입니다. 저는 메인 화면을, 아내는 자막방송을 보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헤아리지 못하면 이렇게 당황하기 쉬울 만큼 우리네 삶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세상의 빠른 변화만큼이나 복잡해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태도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무척 정직할 수밖에 없겠지요. 농사일 자체가 정직함을 요구하기 때문일 겁니다. 씨를 뿌린 다음부터 수확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 중에서 어느 한 과정에서라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한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입니다. 그런 삶에 젖어 살다보니까 인간성 역시도 정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많은 직업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도 ‘관계’를 통해 돈을 버는 서비스업의 폭발적인 증가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많이 바꾸어놓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서비스를 하는 경쟁사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정직함’이 아니라 ‘승리’만이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과도한 경쟁사회의 고약한 특성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가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부터 ‘너’는 내 목적을 구현하는데 유용한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되어 버립니다. ‘너’는 존중받아야 할 귀한 인간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 정도로 ‘너’의 존재가 바뀌어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내’가 ‘너’를 수단과 도구로서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너’ 역시도 ‘나’를 ‘너’의 수단이나 도구로 여긴다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관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먹이로 여길 수밖에 없겠지요. 눈만 잠시 감고 있으면 코를 베어갈 세상이란 바로 이런 세상이 아닐까요.
인간관계가 나날이 복잡해지는 데에는 이렇게 개개인의 지나친 욕심, 즉 이기심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너’를 속여야 하는데, ‘너’도 똑똑한 사람이니까 ‘네’가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럴 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내야만 하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을 겁니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지요.
 
은퇴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벗들이 꽤 많습니다. 그 동안 복잡한 삶속에 녹아들어 치열하게 살아온 친구들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의 표정에는 자연인들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렬한 희망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이제껏 살아온 도시생활을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습니다. 수십 년을 살아온 터전에는 온갖 관계망이 자신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곳을 떠나면 불안하고 고독한 삶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그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살면서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지혜란 없는 것일까요?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들을 제대로 볼 수만 있으면 속지 않을 테니까요.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내게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나’의 욕망을 ‘너’를 통해서 구현해야겠다는 이기심을 버리면 제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이던 것들이 아주 단순하게 또는 명확하게 보일 겁니다. 그러면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어쩌면 지극히 단순하게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복잡한 사람의 속내는 헤아리기 힘들지만,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속내는 쉽게 드러납니다. 속과 겉이 거의 비슷하니까요. 복잡한 사람의 행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도 같아 함께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지만, 단순한 삶을 사는 사람의 행동은 예측이 가능해서 안심이 되고 그래서 편안해 보입니다. 마치 그 옛날, 농사를 짓던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처럼 말입니다.
 
몇 년 전에 제가 가입하고 있는 인터넷사이트에서 보내준 ‘복잡한 일일수록 단순하게 풀어라’란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서 도저히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참고할 만한 자료인 것 같아 독자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첫째, 도랑에 빠진 젖소를 끌어내라.
둘째, 젖소가 어쩌다가 그곳에 빠졌는지를 알아보라.
셋째, 젖소가 다시는 그 도랑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
 
어때요? 아주 간단하지요? 불이 났다면 우선 불부터 꺼야 하고, 그 후에 화재의 원인이나 누군가의 잘잘못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며, 그런 후에는 그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찾아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세상에 산다고 해도 행복은 지극히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단순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정직’할 겁니다.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너’를 통해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기꾼들도 그런 사람들을 속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천금만금을 준다며 아무리 유혹을 해도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그저 자신의 밭에 김을 매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보람된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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