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를 적시던 하천, 아파트 숲의 계곡이 되어 가다
상태바
평야를 적시던 하천, 아파트 숲의 계곡이 되어 가다
  • 장정구
  • 승인 2019.05.29 07: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 나진포천 -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나진포천과 둑길>


‘2조7천억원을 자전거도로 만드는데 썼다!’


뱃길에 배는 없고 자전거만 있다고 경인아라뱃길을 자조와 한탄 섞인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등장하는 표현이다. 굴포천 방수로, 경인운하를 거쳐 아라뱃길이 된 아라천에는 자전거 행렬이 이어진다. 자전거 행렬은 언제부턴가 잘 포장된, 단조로운 아라뱃길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주변 산으로 향했다. 수백만원짜리 MTB 매니아들은 산악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 근교 산을 찾는다. 아라뱃길로 잘린 한남정맥, 자전거도로가 연결되면서 입소문을 타고 하나 둘 산악자전거가 찾아들었다. 야트막한 한남정맥의 산줄기는 산악자전거를 타기 안성맞춤이다. 

“잠실 살아요. 한강 따라 아라뱃길로 자전거 타러 왔다가 왔어요”
“서울 근교에서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요. 동호회에서 여러 번 산악자전거 타러 아라뱃길 왔어요”

그렇게 나진포천이 발원하는 한남정맥 마루금에는 산악자전거 코스가 생겼고 흙을 다져 만든 자전거 점프대까지 만들어졌다.


 


지금 나진포천 상류와 중류 주변은 개발이 한창이다. 일명 검단신도시 개발사업이다. 산을 깎아내 누런 황토가 드러난 곳이 수백만평이다. 포크레인 굉음이 끊이질 않고 덤프트럭들이 연신 드나든다. 공사장 한 옆으로 검은색 차양막에 덮힌 더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언뜻언뜻 보이는 내용물은 철거된 건물 잔해들, 건설폐기물이다. 

폐기물 더미들 뒤로 초록빛 잔디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공동묘지다. 아파트가 올라간 후 입주하게 되면 입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뒤로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어찌 생각할까? 수도권에 위치한 한남정맥에는 대규모 묘지가 많다. ‘변두리’였던 검단이 아파트 숲이 되어가면서 ‘중심’이 되고 있다. 굴포천 상류에 위치한 인천가족공원, 부평공동묘지는 골짜기라 산에 오르지 않고는 잘 안보이지만, 검단신도시 주변 공동묘지는 언덕 위, 산능선부에 위치해 있어 주변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검단에 아파트 숲은 묘지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산 사람의 집과 죽은 사람의 집이 잘 공존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좋으련만.



<나진포천 상류 꼭대기는 묘지다>
 

‘굴려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요즘 인천지역 대표적인 현안 중 도화지구 악취문제와 청라소각장 현대화사업이 있다. 도화지구 옆 악취유발업체는 이전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이전 비용을 두고는 논란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악취유발의 책임은 분명 업체에 있지만 도화지구에 아파트가 건설되기 전부터 위치해 있던 업체는 이전비용을 모두 부담하기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청라소각장은 2001년 가동을 시작했다. 청라지구는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아파트가 올라간 것은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다. 소각장이 먼저 있었음에도 주민들은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환경피해를 호소하고, 건강권과 재산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소각장과 업체는 먼저 위치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억울하다, 입주할 때 주변 여건을 살피지 않은 주민들의 책임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어떻게 소각장 옆, 악취유발업체 옆에 대단위 아파트가 입주했느냐 도시계획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묘원 꼭대기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계양산이 지척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진포천 옆 건너로 모내기가 한창이다. 옆에서는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복토 중이다. 상류로 조금만 올라가면 나진포천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습지가 나온다. 

나진포천은 인천을 대표하는 5대 하천 중 하나다. 인천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하천살리기사업의 대상지였다. 나진포천은 인천 계양구 둑실동에서 발원하여 서구 당하동, 마전동, 불로대곡동에서 지방하천 대곡천을 품고 김포에서 계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총길이 10km 남짓 짧은 하천이다.
 


<나진포천 완정교 주변에 방치된 쓰레기>


둑실 굿당, 예비군 훈련장을 지난 나진포천은 태평아파트와 검단SK뷰아파트 사잇길, 당하탑스빌아파트에서 당하풍림아이원아파트까지 서곶로 구간 두 곳에서 약1km가 덮혀 있다. 2006년 나진포천을 복개해서 조성한 서곶로는 북쪽으로 곧게 뻗다가 늘어선 팬스 앞에서 갑자기 좁아진다. 또 다시 검단신도시 공사현장이다. 다시 물길이 보이는 다리 주변으로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복개 종점부에서 스며나오는 악취에 자동으로 손이 코를 막는다. 완정교부터 한강까지 나진포천 열린 구간에 다리가 20개가 넘는다. 검단신도시 내 구간에 몇 개의 다리가 더 생길 예정이다.

높이 둘러쳐진 팬스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만난다. 아직은 비포장인 나진포천 둑길을 따라 손잡고 산책하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비 온 뒤라 신발에 흙이 묻었지만 여유롭고 정겹다. 아파트가 올라가면 하천 둑길은 포장되고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조깅하는 모습이 많아지리라. 하천 둑길에 올라서니 물길이 저 아래다. 5미터가 넘는다. 비스듬한 하천 변으로 지난해 어른 키는 족히 넘게 자란 단풍잎돼지풀에 검고 흰 비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둑길 반대쪽으로는 찰랑찰랑 물 잠긴 논에 막 모내기가 끝난 듯 모가 어리다. 아직 써레질 중인 논에는 작년 벼 밑동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다. 둑길을 따라 걷자니 분명 한강이 멀지 않았을 텐데, 산보다 높고 빽빽하게 올라가는 아파트들에 숨이 막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