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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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행복하게
  • 최원영
  • 승인 2019.06.10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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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지금 이 순간 의미 있게 살기
 

 
풍경 #112.  지금 이 순간 의미 있게 살기

 
살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온갖 고민거리와 마주하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고민거리들은 이미 지난 일에 대한 것이 가장 많고, 불확실한 미래의 일에 대한 것들이 그 다음일 겁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과거나 미래의 그것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인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해줍니다.
 
어느 남자가 초췌해진 표정으로 친구를 찾아왔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 자네 얼굴이 세상 모든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어두워.”
남자는 이런저런 일로 인해 불안하다면서 그간의 있었던 고민을 토해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이 해답을 알려주겠다며 그를 공원묘지로 데려갔습니다. 묘지에 도착하자 남자는 당황스러웠는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민을 풀어줄 해답을 알려주겠다더니 웬 공원묘지야?”
“이보게, 친구. 이 세상에서 고민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네. 고민거리란 이렇게 죽어야만 없어지는 거야. 그러니 이젠 죽을 상을 하고 다니지 말게. 자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바로 고민이란 말일세.”
 
맞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많은 걱정거리와 그로 인한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걱정의 종류와 무게 만이 다를 뿐이겠지요. 그런데 그 고민거리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의 일 때문이 아니라 이미 지난 과거나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 때문에 생긴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고민거리로 인해 무너지는가, 아니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선택은 순전히 ‘나’의 몫입니다. 누구나 후자의 경우가 되기를 바라겠지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은 그 고민거리로 인해 내가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세 가지 질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톨스토이는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당신’, 그리고 ‘당신에게 유익한 일을 하라’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나와 마주하고 있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열쇠라고 그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과거는 늘 현재를 기준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규정됩니다. 지독히도 가난해서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도 그가 성공한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그 때의 가난이 오히려 축복이 되었다고 해석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건강한 삶이 하루하루 축적되면 미래의 불안감도 말끔히 지워지게 되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이란 책에는 미국의 유명 연예인이었던 지미 듀란테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쁜 스케줄로 분주한 그에게 참전용사들을 위한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담당자에게 단 몇 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무대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여긴 담당자는 간단한 원맨쇼를 한 뒤 내려와도 좋다고 화답했습니다.

드디어 쇼가 시작되고 듀란테가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예정된 원맨쇼가 끝났는 데도 그가 내려오질 않습니다. 그리고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그의 재치 있는 원맨쇼가 진행되었습니다.

그가 내려오자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단 몇 분만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요.”
듀란테는 객석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답했습니다. “처음엔 나도 그럴 생각이었소. 하지만 저기 무대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됐소.”

담당자는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명의 참전용사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한쪽 팔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팔, 또 한 사람은 왼팔을 잃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즐거워하며, 각자 남은 한 팔을 서로 부딪치며 열심히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전쟁에 나갔다가 한쪽 팔을 잃어버린 그들이 저토록 즐겁게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원래 있었던 팔이 없어져버린 탓에 절망하며 살았다면, 그래서 두 팔이 온전한 듀란테를 보고 전쟁을 원망하고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분노하며 살았다면 그들이 저토록 즐겁게 쇼를 마주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과거에 입은 깊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었을 겁니다.
 
현실의 나를 수용할 때 비로소 보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결국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톨스토이의 가르침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즐겁게 행할 때 비로소 내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비록 팔이 없어도 세상을 유쾌하게 살아가는 참전용사들의 감동적인 박수가 단 몇 분 동안만 의무적으로 쇼를 하겠다는 듀란테를 무려 한 시간이나 하게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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