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만 되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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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만 되도 좋겠네요"
  • 김인자
  • 승인 2019.06.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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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경비반장 할아버지


"이 짜식도 이제 금방 피겠네요."
"이 자식이라니요? 누구요?"
"예, 어르신 이거 말입니다. 요기 몽우리진 것 좀 보세요."
"아, 이거요? 그르게요. 올망졸망하니 이뿌네요."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는 아침. 아파트 화단 앞에서 긴호수로 화초에 물을 주시는 경비반장 할아버지를 만났다.

"어르신 이 꽃 좀 보세요.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빨간색 꽃이네요."
"아고 제가 빨강색을 좋아하는지 으트게 아셨어요?"
"아침마다 어르신이 유독 빨간 꽃앞에서 '아이구 이뿌다, 참 곱다.' 하셔서 알았지요."
"내가 그랬어요? 몰라요. 자꾸 잊어뻐려요."

자꾸 잊어버린다는 심계옥엄니를 말없이 바라다보시던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빨갛게 핀 나리꽃을 보며 심계옥엄니에게 가만 가만 물으신다.

"어르신, 이 꽃이름이 뭔지 아세요?"
"몰라요. 다 까먹었어요."
"개나리에요."

"개나리요?"
심계옥엄니와 내입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개나리.
'어 이 꽃은 개나리가 아니라 나리꽃인데.' 하고 말하려는 내 입을  심계옥엄니가 내손을 꼭 그러쥐어 막으셨다.

"아, 개나리요? 이렇게 이쁜 빨강 개나리는 제 구십 평생에 처음 봅니다. 봄에 피는 노란 개나리도 색이 참 고운데 이 빨강 개나리도 때깔이 참 곱고 이뿌네요."

그러자 경비반장님 얼굴이 새빨개지셨다.

"어이구 어르신 제가 너무 많이 갔네요." 당황하시는 경비반장님과는 달리 심계옥엄니는 빨강 나리꽃을 애잔히 쳐다보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노란 개나리가 강한 햇볕을 많이 받아서 빨갛게 익었나보네요. 가을 고추처럼 새빨간게 색이 아주 고와요."

경비반장님과 심계옥엄니가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나리가 정말 개나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구 어르신 나리가 맞습니다. 저도 요즘 들어 자꾸만 깜빡 깜빡 합니다."
"어느새요? 벌써 그러시믄 안됩니다. 한창 좋은 나이신데요."
"좋은 나이는요. 저도 낼 모레면 팔 십인걸요,어르신."
"팔 십이믄 젊지요. 팔십만 되도 좋겠네요. 아직도 팔팔한 나인데 어느새 벌써 깜빡깜빡하믄 써요? 잘 잡숫고 잠도 많이 주무시고 하세요."
"예, 어르신 잘 알겠습니다."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겸연쩍은 얼굴로 빨갛게 웃으신다. 그 모습이 꼭 빨간 나리꽃 같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우리 경비반장님 오늘 계타셨네요. 어르신 앞이라 그릉가 막힌 말문이 트이셨네, 트셨어."
아파트 청소일을 도와주시는 청소반장님이 웃으며 다가오셨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예, 요즘 그 댁 개는 어떻게 잘 지내는가요? 그


집 할머니랑은 좀 친해졌나요?"
"아이고 어르신 우리 슈슈를 기억하세요?"
"수순지 보린지 내 이름은 잘 모르겠고요 집에 할무니하고 못 새긴(사귄)개가 있다고 전에 한 번 말했던거 같은데?"
"예, 어르신 우리 슈슈 맞아요. 기억력이 참 좋으시네요.어르신"
"기억력이 좋긴요. 금방 생각한 것도 바로 까먹는걸요. 그 집 개는 먹는건 잘 먹어요? 우리집 감자는 배탈이 나서 며칠 죽게 고생했는데. 날이 점점 더워지니까 짐승들 멕이는거 조심들 해얄거요."
"예. 어르신."
"그나저나 그집 개는 할무니하고는 좀 사겼어요?"
심계옥엄니가 좀 전에 물은걸 또 물으신다. 그런데도 청소반장님은 처음 듣는 것처럼 정성스레 또 대답을 해주신다.

"요즘은 시므지근해요, 어르신."
"둘이서 좀 사이가 나아졌나보네."
"나아지긴요.처음 데려왔을땐 시어머니가 '너는 좋겠다' 하구 한 대 쥐어박구 똥싼다고 또 쥐어박구 하더니 이젠 서로한테 별 관심들이 없어요."
"관심이 읍어요?"
"예, 시어무니도 이제 때리는 것도 귀찮은지 슈슈 안 건드려요. 그렇게 때리고 구박하시더니. 슈슈도 시어무니가 귀찮게 하든지 말든지 심드렁해요.' 나도 이제 귀찮다.나이를 먹으니까'이렇게 생각하는거 같애요.
시어무니도 당신처럼 늙었다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때리지도 않아요."
"때리지 않는다니 그건 참 다행인데 한집에 살믄서 데면데면 한거 그거 안좋은건데."
"성격이죠 뭐. 우리 시어무니도 그렇게 곰살맞은 성격이 아니셔서요. 우리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도 오면 왔나보다 가면 갔나부다 하세요."
"에구 그게 그런게 아닐건데. 하루종일 식구들 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렸을건데."
"누가요? 우리 슈슈요? 슈슈야 우릴 엄청 반기죠. 옷도 벗기도 전에 겅중겅중 뛰고 나가자고 하고."
"개 말하는거 아니고 그 집 시어무니 말하는거요. 왠종일 식구들 기다렸을거요."
"아, 우리 시어무니요?"
"짐승도 쥔을 기다리는데 사람이야 말해 뭐할까. 우리집 개만해도 에미가 어디 나가서 안 들어오면 현관 앞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려도 안오면 문앞에까지 나가 서서 기다리는데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어요. 그 속이 오죽해야 기다려.
개도 그렇게 식구들 기다리는데 사람이야 오죽할까. 개처럼 왕왕 짖어야만 기다리나?"
"그르실랑가 어쩐가 모르겄네요. 워낙 승질이 남다르셔서여."
"개가 아무리 곰살맞게 굴어도 개는 개예요. 어디 사람만 할까. 개가 아주 의뭉스러워. 지집 식구들은 으트게 그렇게 잘 아는지. 나는 밖에 나갔다 들어와도 오면 오나부다 가면 가나부다 하구 마는데 즈이 식구가 오면 왕왕 짖어대고 아주 좋아 죽어요. 개가 보통 영물이 아니예요. 아마 그집 시어무니도 그래서 자꾸 개를 괴롭힐거요. 자길 무시하나 싶어서.
그나저나 이 차가 왜 또 이렇게 늦어?
할망구들이 또 늦게 나왔나부다."
심계옥엄니가 쓸쓸한 얼굴로 말을 돌리신다.

사랑터차가 왔다. 차문이 열리고 요양사선생님 도움을 받아 차에 오르신 심계옥엄니가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시며 혼잣말을 하신다.

'나란히 둘이 앉았으니까 좋갔다.'
나는 엄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는데 요양사선생님은 얼른 알아들으셨나보다.
"어르신도 맨뒤에 앉햐드려요?"
봉고차 맨뒤에 나란히 앉으신 마스크할머니와 꼬맹이 할머니가 좋아보이셨나보다. 우리 심계옥엄니가.
그제서야 눈치 챈 내가 "이런 우리엄니 왕따예요? "농담 처럼 말하니 당황하신 요양사 선생님 "금새 다음 정거장서 우리 심계옥어르신 옆에 유창봉어르신 앉으실텐데요." 하신다.

"아 그래요?그러면 선생님 이왕이면 우리 엄니 옆에 아주 잘생긴 할아버지롤 앉혀주세요."
"그를까요?"
운전하시는 기사님도 웃고 뒤에 나란히 앉은 마스크할머니랑 꼬맹이할머니가 와~~~하며 웃으신다.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오셨는지 경비반장님이랑 청소반장님이 차안에 계신 심계옥엄니에게 "어르신 잘 댕겨오셔요."하며 깊숙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셨다.
그러자 봉고차 맨 뒤에 앉은 마스크할머니가 빙글빙글 웃으며 심계옥엄니를 콕 찌르며 하시는 말씀
"울 성님 잘생긴 할아부지 필요없으시겄네. 이렇게 인물좋은  젊은 비서가 둘씩이나 나란히 서서 우리 성님 잘 댕겨오시라네."
그말에 빨간 나리꽃처럼 환하게 웃는 우리 심계옥엄니. 다행이다.

나란히 나란히
모두가 함께 빨갛게 웃는 즐거운
아침.
노란 백합과 빨간 나리꽃이 나란히 나란히
경비반장님과 청소반장님이 나란히 나란히
마스크할머니와 꼬맹이 할머니가 나란히 나란히
그리고 청소반장님집에 있는 슈슈와 할머니도 나란히 나란히
오늘 하루 좋아하는 것들과 모두 나란히 나란히~~~~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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