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집 식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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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집 식구들은....
  • 이정숙
  • 승인 2019.06.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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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나의 꿈, 나의 가족, 그리고 시인이 되다 -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샘물반 아이들 6
 
<나의 꿈, 나의 가족, 그리고 시인이 되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학습활동을 하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놀이를 하면서, 또 학교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성장을 한다. 어떻게, 혹은 무엇 때문에 성장을 하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다만 가끔 아이들의 반응과 결과물들을 슬쩍 엿보다 보면 아이들이 훌쩍 크는 지점을 찾을 때가 있다. 그래서 샘물은 게시판이나 벽면 하나 가득 아이들 작품들을 붙여 놓고는 찬찬히 보면서 아이들 마음들을 읽어보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은 어떤 꿈을 꿀까?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모습들을 상상해 내면서 꿈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 꿈은 ‘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거나, '여행을 많이 하는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바로 ‘직업’을 떠올린다. 그 직업은 참으로 다양하다. 여자 아이들은 주로 화가나 피아니스트, 선생님, 무용수다. 남자 아이들은 과학자나 야구선수 축구선수로 몰려 있다. 때론 식물 과학자나 우주 과학자로 제법 세분화하기도 한다. 독특한 직업도 있다. 쉬는 시간마다 컵타 쌓기를 하는 혜지는 컵타(컵+난타) 선수가 꿈이다. 간혹 비밀친구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만들어 주는 은수의 꿈은 캔디 메이커다. 다른 친구에 비해 조금 어린 동원이는 손을 번쩍 들며 큰소리로 ‘자동차 공학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샘물: 와! 멋진 걸. 그게 뭐하는 거지?
동원: ? (글쎄 하는 표정이다)
샘물: (너무 곤란한 질문을 했나보다 생각되어) 자동차 만드는데 관계된 일인가 보다. 그치?
동원: 네.
 
어떤 친구들은 직업들이 좀 더 구체화 되어 있었다. 자기 꿈을 설명하는 시간에 키가 큰 유리는 모델을 한다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와서 워킹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은이와 하영이는 아이돌을 한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선보이고는 틈만 나면 춤 연습을 한다. 외과의사, 스케이트 선수에 목사님도 있었다.
 
샘물: 요셉이는 부모님이 다 하나님을 믿으시나보다. 혹시 아빠가 목사님이시니?
요셉: 아뇨!
샘물: 그으래? 그런데 어떻게 목사님을 하고 싶어?
요셉: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알게 된 목사님인데 제게 책도 주시고 존경스러워요.
샘물: 존경? 와! 그런 말도 알아? 그 책을 목사님이 주셨어?
요셉: 예 목사님이 쓰신 책도 있는데 그건 안 가져 왔어요.
샘물: 요셉이는 그 목사님을 아주 좋아하나보다. 그 목사님을 보니 너도 그렇게 되고 싶은 가보구나.
요셉: 예!
 
2학년 답지 않게 어리고 해맑기만 한 승원이는 뜻밖에 아쿠아리스트가 꿈이라고 한다.
샘물은 짐짓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말을 하나보다 싶기도 했지만 다른 때와 달리 자신 있게 말하는 승원이 표정을 보니 뭔가 자기 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샘물: 아쿠아리스트가 뭐하는 거지? 아쿠아맨?(영화 이야기를 해본다)
승원: 아뇨, 아쿠아맨이 아니라 아쿠아리스트예요. 물 속에는 물고기들 종류가 많이 있는데... 상어 종류는 굉장히 많구요....
샘물: 아, 그러니까 물속에 사는 생물들을 ... 물고기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걸 말하는 거구나.
승원: (샘물의 말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상어 종류는 .... 고래들도..
 
제법 전문적 지식을 동원하고 있는 승원이는 단순하게 결론 내리는 샘물의 말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아니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강했는지 이 기회를 틈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한다. 맞장구를 쳐주다보니 너무나 시간을 잡아먹었다. 샘물은 더 이상 길게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그래그래 승원이가 굉장히 잘 알고 있네~ 다음에 친구들하고 선생님한테도 많이 알려줘! 미래에 아주 멋진 일을 할 것 같애!” 하며 다른 친구에게 말을 건네 화제를 바꾼다. 승원이는 “예” 하고 밝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도 아직도 성이 안 찼는지 자기 짝에게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늘 조용히만 있던 승원이가 입이 트이고 수다스럽기 시작한 게 아마도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 게다.
 
요즘은 아이들 일기장 검사를 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것들을 통해 아이들의 생활을 가늠하고 말을 걸어주고 교감할 수 있는 교육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개인 사생활 침해라는 부정적 부분들이 계속 강조되면서, 샘물은 그동안 소신을 갖고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주었던 일기장으로 소통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교육전문가가 판단하는 일을 비전문가 집단들이 판단해서 어떤 힘을 가진 지침들이 내려올 때, 샘물은 의기소침해진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 우려하는 사생활 침해가 되는’ 집과 가족에 대한 단원을 학습하게 된다.

집과 가족을 소개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일, 가족이 좋아하는 것,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등등 두 주 내내 집과 가족에 대한 세세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되는 단원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샘물은 ‘가족이 하는 일’ 수업을 하면서 엄마가 하는 일, 아빠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일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게 했다. 요즘은 부모님이 다 있지 않은 가정도 많아,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배우고는 할머니나 삼촌 등 다른 가족들도 다양하게 쓸 수 있게 했다. 그중 엄마 아빠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에 샘물은 웃음이 나왔다. 한수는 “우리 엄마는 바빠요” 하면서 가족들이 하는 일을 썼다.
 
엄마: 밥한다. 깨운다. 설거지, 빨래, 다림질, 실내화 빨기, 돈 벌기, 동생 옷 입히기, 동생 밥 먹이기, 반찬하기, 시장보기, 은행가기, 나 학원보내기, 학원 선생님하고 전화하기, 동생 씻기기, 재우기, 집 청소하기, 장난감 정리하기, 책 읽어주기
나: 숙제하기, 일어나기, 책읽기, 밥 먹기
아빠: 늦게 오기.
 
한수는 엄마가 집안 일을 다하고 아빠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보다. 맨 처음에는 아빠가 한 일이 늦게 오기 하나만 있기에 아빠가 회사 다니시지 않니? 하시는 일이 너무 없는데? 잘 생각해 봐 너도 모르게 하시는 일들이 있지 않을까? 했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두 개를 더 썼다. ‘TV보기, 잠자기!’
 
한수에 비해 영지는 주로 아빠가 일을 많이 하신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언니와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아빠: 돈 벌기, 밥하기, 우리 학교 보내기, 내꺼랑 언니 가방 챙겨주기, 얘기하기
언니: 청소하기, 화내기
나: 언니한테 맞기
엄마: 아무 것도 안함.
 
아이들은 가끔 시인이 된다. 그런데 샘물은 그 ‘시’라는 걸 알려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 단원을 가르칠 때에는 긴장이 된다. 교과서에 제시된 ‘겪은 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잘 드러나게 솔직하게 표현한다거나 행을 나눈다든지, 반복되는 말을 사용한다.’ 는 방법들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자칫 도식적으로 틀에 박혀 시를 짓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시들을 읽어주며 감상을 나눠보거나 시의 일부를 내 경험으로 바꿔 보기도 하고, 반 아이들이 모두 공유할 만한 주제를 선정해서 칠판에 한줄 씩 써 내려 가며 함께 시를 지어 보기도 한다. 공동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래도 시에 대한 안내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아직 글 읽기도 서툰 친구들에게 ‘시’를 쓴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가 있다.
 
샘물: 자, 이젠 각자 자기 경험을 가지고 시를 지어보자.
아이들: ?? 뭘로 해요?
아이1: 가족을 해도 돼요?
샘물: 그러엄.
아이2: 난 경험이 없는데
샘물: 경험한 게 없어? 네가 생각한 거 느낀 거 그런 것도?
아이3: 난 코코(강아지)로 쓸 거야.
아이4: ??
아이5: 아~ 시는 어려워.
 
슬쩍 책임을 미뤄놓은 것 같은 개운치 않은 학습 안내에 아이들은 제각기 불만을 토로하며 투덜거리고는 이내 뭔가를 끄적거린다. 샘물은 아이들이 자신의 안내를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마조마 하면서도 열심히, 혹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느라 떠들며, 그래도 과제를 수행하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로 교실을 돌아다니다 보니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역시 내 안내가 부족한가보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연필만 굴리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다시 안내를 할까?’

샘물은 우선 소재를 여러 개 던져 본다. “우리 반 비밀 친구 뽑기는 어때?, 나를 늘 돌봐 주시는 할머니도 생각나고 ~, 우리 지난 번 수학시간에 고무줄로 숫자 만든 것도 좋고... 야외학습 갔을 때에 그 때 우리 못 나갔잖아.... ” 뭔가 아이들이 떠올릴 만한 것들을 주저리 주저리 얘기하다보니, 용케 뭔가를 생각해낸 몇몇이 ‘아하!’ 하며 쓰기 시작한다. 그래도 영 물꼬가 트이지 않는 아이에게 “우리 아빠는 낮잠만 자요....” 한 두 구절 안내를 한다. 샘물의 애씀이 전해졌는지 또 몇몇의 영특한 친구들이 써내려 간다. 이내 얌전한 영현이가 시를 써서 가져온다. 헉! 수작이다!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아빠>
 
우리 아빠는 잠을 좋아한다.
우리 아빠는 술을 좋아한다.
우리 아빠는 운동을 싫어한다.
우리 아빠는 출장을 자주 간다.
우리 아빠는 회사도 싫어한다.
우리 아빠는 담배를 좋아한다.
 
않(안) 좋은 것은 좋아하고 좋은 것은 않(안) 좋아해서 걱정이다.
 
영현이는 평소 학습에 대한 참여도가 낮아 학습에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시인이었다. 샘물은 이렇게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늘 감동한다. 그리고 이 아이는 이럴거야 하고 속단해 버리는 자신을 반성했다. 아이들은 때로 무심코 지나쳤던 기억들을 소환 해 내는 데도 탁월하다 얼마 전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학습활동이 취소되었던 걸 냉큼 기억해 냈다.
 
<날씨>
매일 매일 바뀌는
날씨. 날씨는 제 멋대로
 
언재는(언제는) 비가 주룩주록
언재는(언제는) 해가 쨍쨍
언재는(언제는) 바람이 쌩쌩
 
매일 매일 바뀌는
날씨.
 
<미세먼지>
미세먼지가 슉슉
나쁜 미세먼지 없어져라!!
중국은 나빠나빠
견학도 못 가게 되었네.
 
샘물은 두 주마다 반 친구들이 서로 고루 친하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비밀 친구, 일명 마니또를 정한다.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지만 아직 어린 친구에게 ‘배려’란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자신이 청소하고 받은 사탕을 몰래 비밀친구 사물함에 넣어주고는 너무나 뿌듯했는지 매일 청소를 하겠다는 친구도 생겼다. 그리고 어떻게 배려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내용을 열심히 기억하고 자기 생각으로 표현해 낸 착한 상우의 시에서 보람이란 게 울컥 다가왔다.
 
<비밀친구>
비밀친구를 뽑을 땐 가슴이
콩닥콩닥 쪽지를
보면 내 짝꿍
뽑았다.
짝꿍에게 무얼
해 주지?
곰곰이
생각하다
같이 놀아줬다.

샘물이 또 한 번 감동한 시가 있다. 한호는 말을 건네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아주 얌전하고 말을 전혀 안 하는 친구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뭘 하는 것도 없이 학교를 다닌다. 급기야는 학교 가서 뭐하냐고 오지 않기도 한다. 그런 친구에게 다그치고 안내하다보면 더 학교가 싫어지고 학교 없는 낙이 없을 듯하여 놀이시간을 확보해 주고 친구와 수다 떨 시간을 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아이는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 글자 쓰기도 서툴고 어눌하다. 그 친구가 그래도 시를 썼다.

우리 반은 다른 반가 달러 진(짐)볼이 있습니다. 우리 반은 화이트보드를 공짜로 주셨습니다. 우리 반은 사탕뽑기가 있습니다. 우리 반은 최고 인지(거) 갔(같)습니다.
 
비록 제목도 없고 행과 연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글자도 많이 틀렸지만 한호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잠시 엿볼 수 있었다.
 
배움이라는 게 한 두 번의 학습으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아이들의 생각과 문화도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건 아니다. 무수히 많은 반복과 무수히 많은 경험들이 몸으로 스며들어 자기 생각을 만들고 성장하는 것이리라. 일상 같은 배움의 시간들 속에서 마음을 키워내는 아이들! 그 아이들 마음을 엿보면서 샘물은 매 순간 어떻게 아이들에게 말을 건넬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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