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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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
  • 한인경
  • 승인 2019.06.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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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틸 라이프 (Still Life)』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부터 ‘그해 주목받은’ 또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들을 선정하여 평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3월부터는 미추홀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작가와의 협약 하에 <인천in>에 게재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눕니다.
 

“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

 
 
『스틸 라이프 Still Life』
 
“고독사 그 ‘고독함’에 노크하다.”

개 봉 : 2014. 06. 05(93분/영국, 이탈리아)
감 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 연 :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갓
장 르 : 드라마
등 급 : 12세 관람가


 

 

1.
 
영화 한 편을 마치 정지된 시간 한 컷, 한 컷을 이어서 완성한 것 같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면마다 자리한 그 고독함들로 상영 시간 내내 숙연했고 안타깝고 그랬다.
 
이승을 떠나는 길, 이 길이 누구에겐 어찌 저리도 혹독한지.
 
흔히 말하는 ‘고독사’를 다룬 영화다.
 
주인공 존 메이는 영국 케닝턴 구청 고객관리과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 처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홀로 사망한 사람의 유품 가운데서 실마리를 찾아 추도문을 작성하고, 가능한 고인의 종교에 맞춘 장례 절차를 준비한다. 고독사의 현장은 익명성이라는 벽에 가려진 인간의 나약한 민낯을 보여 준다.
 
망자의 인생 단서를 최선을 다해 찾으려 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장례를 치르다 보니 비용도 많이 쓰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의 상사는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 아무것도 상관할 수가 없고,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니 무연고 사체라면 신경 쓸 사람도 없는 것이라며 존 메이의 꼼꼼한 일 처리에 불만을 내보인다. 결국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고 한 마디 방어도 없이 존 메이는 22년 차 공무원으로서의 마지막 업무에 올인한다.

신고 전화. 존 메이는 여느 때처럼 신고가 들어온 집으로 향한다. 썩은 내가 난다고 항의가 들어왔고, 사망한 지 몇 주 지난 것 같다고, 사망자의 집은 존 메이의 바로 맞은편 아파트다. 그는 고독사 당사자 ‘윌리엄 스토크’의 삶을 찾아 나선다.
 
필자는 영화 『청원』 평론(인천in. 2018.06.29)에서 ‘존엄사’, ‘연명의료결정법’,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언급한 바 있다. 오늘은 영화『스틸 라이프』를 통해서 고독사, 그 ‘고독함’을 집중해 본다.
 
 
2. 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
 
‘윌리엄 스토크’의 생전 흔적 찾기는 존 메이의 노력으로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그의 주검은 비참했지만, 마지막 길은 지인들의 애도 속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존 메이는 거의 일을 마쳐갈 즈음 안타깝게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고독사는 물리적인 ‘혼자’보다는 ‘단절된 혼자’라는 점에서 더욱더 안타깝다. 씁쓸하지만 대개 주검은 일정 기간 방치되다가 부패로 인한 악취, 주변 신고로 발견된다. 한 달 이상 방치된 죽음, 심지어 백골 상태로 발견된 죽음에 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하곤 한다.
 
존 메이는 평소에 두툼한 앨범에 자신이 맡았던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죽어 갔을 고인들의 사진을 정리해 두곤 한다. 고인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멋진 포즈로 뽐내면서 활짝 웃는 모습들, 그들의 해맑은 웃음에서 자신의 인생 마침이 ‘고독사’, 이렇게 처참하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핵가족화, 가족의 해체, 1인 가구의 증가, 사별, 이혼, 고령 사회, 질병,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이 불편한 상황들은 진행 중이다.
 
독거노인 층에서 많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보건복지부 자료(2012~2016 연령대별 무연고 사망자 수)를 보면 ‘40~50대의 남성’에서 무연고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다. 통계가 말해 주듯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에게도 구체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중년 남성의 경제적 빈곤은 가장의 몰락이면서 가족 관계, 인간관계에서도 자의 반, 타의 반 자발적 고립의 길을 가기 쉽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제적 빈곤, 취업난과 각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 청년세대의 안타까운 고독사 기사도 접한다. 고독사란 그늘에서 나이의 경계는 무너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도 1인 가구이면서 고령의 노인들은 고독사의 고위험군이라 할 수 있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진입한 일본의 한 정책 사례로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시청의 ‘엔딩활동’을 소개한다.

 
무연고 납골당의 오래된 유골을 정리하던 카즈유키 차장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했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카즈유키 차장과 뜻에 힘을 실어준 요코스카 시청은 일본 공공기관 내 처음으로 누구도 혼자 두지 않겠다(もひとりにさせない)’라는 표어를 내걸고 시민을 상대로 엔딩활동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엔딩활동이란 고령화 사회 일본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생전에 준비하자는 개념으로 젊은이들의 취업 활동((就活)과 동음이의어인 슈카츠’(종활·終活)로도 불린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요코스카시의 종활(終活)정보 등록전달사업은 시민이라면 연령, 소득, 자산, 친척의 유무 관계없이 무료로 자신의 기록(본적, 긴급연락망, 활동 커뮤니티, 담당 의사 연락처, 장례 방법, 유서 보관 장소 등)을 등록할 수 있다.
현재 요코스카 시민 110명이 등록했고 그중 1명의 등록자가 얼마 전 사망했다. 카즈유키 차장은 생전에 남겨둔 등록 기록으로 하나뿐인 고인의 조카에게 부고 연락이 갔으며 남겨진 유언에 따라 장례식을 치렀다고 전한다. (경향신문 2019.04.11)
 

요코스카시의 ‘엔딩활동’은 늙고 병들고 고립되고 가난에 찌든 후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자체별로 비슷한 정책들이 있겠지만 다시 한번 환기한다. 상황에 맞게 내 주변, 이웃부터 노크 좀 해 보면 어떨까. 2015년 아시안 게임(’90) 역도 금메달리스트 김병찬(46) 선수가 숨진 후 나흘 만에 발견되었고, 옷을 몇 겹으로 껴입은 채 혹한 속에서 죽음을 맞고 후일 발견된 어느 여성분, 너무 아프다며 유서를 쓰고 홀로 죽어갔을 어느 분, 주검 주변엔 빈 술병들만이 전부였던 어느 분…… 사회적 관심과 복원으로 인생 마지막 길 외롭지 않게 배웅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3. ‘고독사’ 그 고독함

 

출처:영화『스틸 라이프』
 
 
다시 영화로.
말수가 거의 없고 좁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존 메이, 길이까지 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세팅된 식탁과 책상, 단출한 식사 메뉴, 무표정 일상, 시계추 같은 출퇴근 모습, 단벌의 옷 등 장면마다 한 점의 정물화였다.
 
‘도도새’는 천적이 없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날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은 멸종된 새로 알려져 있다. 시청의 납골당 즉, 무연고 사망자의 골분이 보관된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낱말 퍼즐을 맞추면서 날지 못하는 새가 무슨 새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도도새’라는 존 메이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납골당을 떠돈다. 감독은 기계처럼 돌아가는 그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은 듯한 그의 집은 어쩌면 그가 맞이할 죽음까지도 상상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스크린 너머 그의 모습은 마치 날고 싶어 하는 한 마리의 도도새가 퍼뜩거리는 듯 안타까웠다.
 
고독사 장례식의 유일한 조문객이었던 존 메이, 본인의 장례식은 어땠을까. 신부는 애도하는 이 아무도 없는 죽음이지만 예를 다하고, 그의 관은 묘지로 이동된다. 묘지 한쪽에서는 그의 마지막 업무였던 윌리엄 스토크 건- 인생 단서를 찾고자 각처로 다녀 모이게 된 조문객들의 애도 속에서 그의 관이 내려가고 있다. 근처에서는 묘지 관리인 두 사람이 존 메이가 묻힌 곳에 기계적 손놀림으로 바삐 흙을 덮고 있다.
 
감독은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이 지점에서 클라이맥스를 보여주며 ‘삶과 죽음의 성찰’에 방점을 찍는다.
그동안 존 메이가 거둔 망자들의 영혼이, 그가 정성껏 철해 두었던 앨범 사진 속 그 모습으로 아직 봉분도 올리지 못한 그의 무덤 주변으로 모여든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결코 혼자 두지 않을 것이라며 죽음까지도 홀로 맞았던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것 같았다. 명장면이다.
 
삶도 죽음처럼, 죽음도 삶처럼 서로는 한 개인 삶의 일부이면서 전부이기도 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고도 하던데. 우리 각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결국은 동네 사는 서로의 이웃들이다. 돌연사든 자살이든 서서히 죽어갔든 마지막 길을 지켜줄 사람 없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려는 이웃이 있다니. 누구나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을 터. 바쁘게 살면서도 행복했던 시절이 그 ‘혼자’에게도 있었을 터. 그러면서 어찌어찌 인생 살다 보니 ‘혼자’가 되었고, ‘혼자’는 이렇게 힘들다가 저세상 가겠거니 하면서 시간을 점차 분실해간다면……‘혼자’에겐 넘지 못할 산보다도 높아 보였을 담 너머에서는 거창한 담론보다 내 이웃부터 문 두드려보고 손잡아 주면.
 
고독사를 참으로 고독하게 조명한 영화 『스틸 라이프』다.

한인경/시인, 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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