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다가서면 누구나 찍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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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다가서면 누구나 찍는 사진
  • 최종규
  • 승인 2010.12.01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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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

 글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춤을 추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잘 써야만 쓸 글이 아니고, 잘 그려야만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잘 추어야만 출 춤이 아니며, 잘 불러야만 부를 노래가 아닙니다. 누구나 글이든 그림이든 춤이든 노래이든 즐깁니다. 제 깜냥껏 즐기고 제 마음껏 누립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찍기로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찍기도 할 테지만, 스스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돈을 치를 테니 찍어 달라 하는 사진을 자주 찍어야 합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모습에다가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내며 돈을 버는 삶이라지만, 뜻이 있으면 ‘나 스스로 바라지 않는 사진찍기’를 하면서 얼마든지 ‘한결 나은 사진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늘 새롭게 거듭나는 사진찍기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벌이 사진을 하면서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거나 빛나는 사진을 내놓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도 벌어야 먹고산다 할 만하지만, 사진은 돈이 아니요, 돈이 있다 해서 사진을 즐길 수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라 할 텐데, 돈벌이에 굳이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될 살림살이라 하더라도 사진을 한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벌이에서는 홀가분하지만, 사진찍기에서는 홀가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꿋꿋하거나 씩씩하게 걷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신나게 사진을 찍기는 하더라도 열매를 싱그러이 맺는 사진찍기로 이어가지 못해요.

 나 스스로 참다이 글쓰기를 즐기고 사진찍기를 즐기자면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내 글감은 나 스스로 내 좋은 삶에서 찾고, 내 사진감은 내가 손수 땀흘리는 내 삶에서 얻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글로 쓴다 할 때에,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편지를 쓴다 할 때에, 나 스스로 내 마음을 들이면서 써야 가장 아름답습니다. 누군가한테 써 달라 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 더 멋들어지게 이야기를 붙이고 멋진 글씨로 적바림해 줄 수 있어요. 그러나, 삐뚤빼뚤한 글씨로 앞뒤가 잘 안 맞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나 스스로 내 사랑이한테 편지를 적바림해서 보낼 때만큼 애틋하거나 아름답지는 못하다고 느낍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그래요. ‘사람 사진 대단히 잘 찍는다’는 이한테 내 사랑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 맡길 수 있겠지요. 참 예뻐 보이도록 사진 한 장 얻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해서 얻는 사진 한 장이 나한테 가장 기쁘거나 고맙거나 반갑거나 살가운 사진으로 자리매길 수 있을는지요. 무언가 이래저래 잘 안 맞는 사진을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게 찍으면 내가 아낄 만한 사진이 안 될는지요.

..  우리 주변에는 존재감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방랑 고양이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일부러 그들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좀처럼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에요 ..  (머리말)

 사진책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를 읽습니다. 도시에서도 가장 번들거린다 할 만한 미국땅, 여기에서도 뉴욕에서 살아가는 골목고양이 삶을 좇아 사진으로 하나둘 담아내어 엮은 사진책입니다.

 저는 미국은 밟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밟을 일이 없다고 느끼는데, 이 가운데 뉴욕 같은 데는 더더욱 밟을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만, 이곳에도 골목고양이가 살아가는구나 하고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를 읽으며 깨닫습니다. 하기는, 미국에도 거지가 있고 뉴욕에도 거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미국에도 나무가 자라고, 뉴욕에도 나무가 자랄 테지요. 버려지는 밥쓰레기가 넘칠 테고, 이 밥쓰레기를 뒤지며 배를 채울 골목고양이는 어김없이 있겠지요.

 골목고양이는 뉴욕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습니다. 큰도시에도 있고 작은도시에도 있으며 시골에도 있습니다. 고양이는 어디에서든 살아갑니다. 개도 어디에서든 살아갑니다. 까치도 까마귀도 비둘기도 매한가지예요. 사람들이 아무 데나 멋모르고 풀어 놓는 바람에 씨가 자꾸 퍼지기도 한다지만, 살 터전인 자연이 차츰 사라지거나 밀리기 때문에, 이제는 뭇 짐승들조차 도시로 몰려들어 보금자리와 먹이를 찾을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도시에서 이런 짐승들이 어찌 살아가나 생각하지만, 짐승들은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찾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시로 몰려듭니다. 사람들은 일자리와 잠자리와 짝꿍을 찾으러 도시로 몰려들면서 이웃이나 동무를 거의 아랑곳하지 않는데, 사람들 스스로 사람을 살피지 않듯이 사람들은 으레 이웃 짐승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골목고양이가 있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골목비둘기가 있든 말든 마음쓰지 않습니다. 골목개가 떠돌든 말든 쳐다보지 않아요. 아니, 쳐다보거나 알아볼 수 없습니다. 거의 언제나 자가용으로 움직이니까요. 자가용이 아니더라도 길거리를 거닐 일이 드뭅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골목고양이를 마주할 틈이 없습니다. 불빛 밝은 길을 거닐면서 달을 올려다보지 못할 뿐더러 별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판에, 길바닥 골목고양이 한 마리를 바라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몇 분 동안 느긋이 마주보지 않아요.

.. 아무리 뒷골목에 숨어 지낸다 해도 동물들(말 나온 김에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누구도)은 사람이 모는 자동차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  (맺음말)

 사진책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는 사진쟁이 녹스 님이 골목고양이를 무척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사진을 한 장 두 장 담아내었기에 일구었습니다. 멀거니 떨어진 채로는 일굴 수 없는 사진책입니다. 골목고양이하고 이웃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저절로 찍고 저절로 엮는 사진책입니다.

 사진쟁이 녹스 님이 골목고양이가 아닌 연예인을 이웃이나 동무로 삼는다면, 가까운 연예인 삶을 살뜰히 사진책 하나로 내놓겠지요. 당신 어머님이나 아버님하고 가까이 지낸다면 당신 어머님이나 아버님 삶을 사진책 하나로 곱게 영글어 놓을 테고요. 꽃을 사랑한다면 꽃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엮습니다. 빌딩을 사랑한다면 뉴욕땅 우람한 빌딩숲을 멋들어지게 담을 테지요.

 그러니까, 사진이란, 누구나 찬찬히 다가서면 얼마든지 찍어서 이루는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찬찬히 다가서지 못할 때에는 아무도 이루지 못하는 문화이거나 예술입니다. 찬찬히 다가서는 넋이기에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이야기 하나 알알이 예쁘게 엮어서 선보입니다. 찬찬히 다가서면서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맞잡는데,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사랑스러울밖에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꾸만 잊어버리는데, 무슨 일을 하든 무엇보다 살며시 손을 내밀어 함께 어우러지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부동산 일을 하든 편의점 알바를 하든 함께 어우러지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 때에는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교사 노릇을 할 생각이든 공무원 구실을 할 생각이든, 내 마음을 바르게 써야 하고 곧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문화재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만 다소곳한 매무새여야 하겠습니까. 인간문화재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만 얌전한 몸가짐이어야 할까요. 골목개 앞에서든 골목고양이 앞에서든 똑같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내 사진감 앞에서 언제나 다소곳하거나 얌전해야 합니다. 내 사진감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사진감을 좋아해야 합니다. 내 사진감을 믿어야 합니다.

 노래쟁이는 노래를 믿고 춤쟁이는 춤을 믿습니다. 글쟁이는 글을 믿고 그림쟁이는 그림을 믿습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을 믿습니다. 서로서로 믿으면서 한동아리가 됩니다. 문화를 하든 예술을 하든 바뀔 수 없는 밑바탕이고, 살림을 꾸리는 자리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밑틀입니다. 내 사랑을 바쳐 내 고운 님하고 한몸 한마음으로 어우러지는 자리에서 빛나는 열매 하나 달콤하게 맛보며 나눕니다. 한국땅에도 골목고양이나 집고양이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무척 많은데, 아직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처럼 살갑거나 사랑스레 사진이야기 꽃피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방랑 고양이 (녹스 사진,사라 닐리 글,한희선 옮김,예담 펴냄,2007.7.27./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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