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통일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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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통일전망대
  • 정민나
  • 승인 2019.08.01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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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화도 통일전망대 / 신중서


[인천in]이 매주 목요일 ‘정민나의 시 마을’을 연재합니다.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반’ 회원들을 지도하는 정민나 시인이 글쓰기반 회원들의 창작시와 기성 시인들의 시를 번갈아 싣고 해설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이와 함께 회원들의 수필 형식의 글도 월 1회 ‘독자칼럼’으로 연재합니다. [인천in]과 인천노인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은 노인여가문화 및 문학을 향유하고 확산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통일전망대
                         
                           <신중서>

 
 
 바다 사이 지척에 두고
저쪽은 개풍군이란다
 
6.25사변이 난지 올해로 69주년
두고 온 문전옥답
강산은 어떻게 변했을까?
 
옛이야기지만
조류학자 원병호 박사는
새 다리에 쪽지 편지를 써서
북한의 아버지와 주고 받았다는데
 
남북을 넘나드는
사상(思想)은 박물관에 넣어 두고
지금은
새가 되고 싶어라
 
너와 나 사이
훨훨 날아올라
고향소식 전해 주렴
 
소리쳐 부르면
메아리만 되돌아 올뿐……
 

평화 전망대는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한 장소인 강화도 최북단에 우뚝 자리잡고 있다.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이 지역은 고구려 시대에는 혈구(穴口) 또는 갑비고차(甲比古次), 신라시대에는 해구(海口)로 불리었다. 강화로 개칭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몰락한 정계의 인물들이 귀양살이를 하던 이곳은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다.

교동도와 석모도를 중심으로 1읍 12면으로 구성된 강화도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마니산과 단군의 세 아들이 살았다는 삼랑성(三郞城)이 있다. 민족의 정기가 서린 이곳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탐방객들이 줄을 잇는다.

이 시의 화자는 6.25때 아버지를 잃고 1.4후퇴 때 거룻배를 타고 이남으로 내려왔다. 옹진 앞바다 어화도에서 2개월 간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기다렸다. 끝내 좋은 기미가 보이자 않자 일곱살 어린 화자는 작은아버지 가족과 피난민 대열에 서게 되었다. 고모 두 분이 살고 있는 이북은 아직도 자유롭게 갈 수 없지만 다행히 최근 남북 두 정상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 중이니 통일 전망대에 오른 화자는 시로서 그리운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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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희 2019-08-01 22:10:41
강화도 통일전망대가 아닙니다. 평화전망대로 해주시구요
사진도 고성통일전망대 사진같습니다.----
강화평화전망대에 가보지 않고 작성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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