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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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
  • 이문일
  • 승인 2010.12.0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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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이문일 / 한심한 인천시 · 정부의 '연평 피란민 대책'

연평도 피란민(避亂民)들의 고통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인천시와 정부의 대책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북한이 쏜 포탄을 뚫고 생사를 넘어 나온 연평도 주민들을 위해 임시거처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중앙이나 지방 정부 다 매한가지다. 인천이란 지역을 넘어 참으로 개탄스럽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는가.

연평도 주민 1300여명이 인천과 경기도 등지에서 피란 생활을 한 지 2일로 10일째를 맞았다. 북한 포격 도발 이후 탈출한 주민들은 지금 힘겨운 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찜질방과 모텔, 친인척 집 등을 전전한다. 더구나 1000여명이 몰린 찜질방은 '피란민 대피소'다. 거동조차 힘든 노인들, 생업을 뒤로 하고 떠나온 가장(家長),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이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룬다.

이래놓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나라에서 적군이 발사한 포탄의 공포로 정든 고향을 등진 주민들을 찜질방에 내버려두던가. 이들을 국가 예산으로 돌보지 않는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 주민들의 탈출을 쳐다보면서 임시거처도 마련하지 못하는 정부와 인천시는 정말 주민들을 위한 '구호비'조차 없단 말인가. 또 국민들의 성금이나 바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피란민들을 계속 방치하고 있는 인천시와 정부는 비난을 받아 싸다. 눈앞에서 피란민들이 인천에다 임시 거주지를 요구해도 돌아오는 건 '탁상공론식' 방안뿐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더는 무서워서 살 수 없으니 영구이주대책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요, 자화상(自畵像)이다. 남 보기가 부끄럽다.


 연평도 주민들이 '찜질방' 생활을 열흘째 계속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인천시장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도 그저 '난감하다'는 처지만 호소하고 있다.

"연평도 주민들의 임시숙소 마련은 중앙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임시주택을 마련한다고 해도 임차비나 운영비, 가전제품 구입 등 소요되는 비용이 많아 인천시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방정부가 비용을 대야 합니까? 우리가 국방권이 있습니까? 지방정부가 아닌 국군 통수권자가 해결해야 합니다." 

송영길 시장이 지난 29일 연평도 피란 주민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대로라면 인천시가 할 일은 없는 셈이다. 정부가 다 알아서 해줄 터이니, 기다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포탄 공포에 시달리는, 어쩌면 전쟁보다도 더한 '아찔함'을 겪은 주민들에게 시장이 토해낸 말 치고는 '책임회피성 발언'이지 않나 싶다. 물론 정부에서 해야 하는 일을 묵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제일 먼저 성토해야 할 대상은 정부이지만, 시의 수장(首長)으로선 '자격미달'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연평면주민비상대책위원회가 1일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대책위는 이날 인천시에서 임시거처로 제안한 방안을 거부했다.

서해5도민 지원대책 빨리 세워야

정부는 국가 안보를 확고히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 제1 책무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무력 공격을 차단하지 못해 피란민을 양산했다. 여기에다 변변한 대책을 신속히 내놓아 시행하지 못한 '직무유기 혐의'까지 더하고 있다. 개탄스러운 현실을 언제까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지….

정부의 '피란민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관련 법규조차 제대로 정비하지 않고 있었다. 만날 정쟁(政爭)이나 일삼고 있었지 정작 필수적인 일들은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 국가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6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른 피해 주민들의 주택 신·개축 비용과 함께 치료비 전액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민방위기본법 외에 달리 더 관련 법규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피해액 산출을 진행중이어서 실질적인 지원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관련 법규 정비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당장 피란민 지원부터 소홀하거나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30일 각각 발의한 '서해5도지원특별법'과 '연평도피해주민지원특별법'을 종합·보완해 입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피란민 지원에는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이보다 더한 피란민 행렬이 잇따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하루빨리 서해5도 주민들을 위한 지원법을 세워야 할 터이다. 서해5도 국방을 더욱 튼튼하게 해 다시는 북한이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물론이다. 인천시도 적극적으로 나서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5도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천으로 피란한 연평도 주민 중 찜질방을 임시거처로 삼아 군색하게 숙식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1인당 50만~10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한 게 지원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천시는 예산 부족 타령 속에 중앙정부의 특별대책만을 기대하면서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어야 되겠는가.
 
현재로선 피란 첫날부터 친·인척 집을 찾아간 일부 주민과 달리 잠자리를 마련할 길이 없던 연평도 주민들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찜질방을 제공한 한 시민이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에 불만을 넘어 불신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피란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주거 공간·시설의 확보와 제공이 아주 시급하다. 

피란의 고통을 더 견디지 못하거나 북한 재도발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생계 터전을 찾아가겠다고 하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도발 이후 연평도를 떠나지 않은 주민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이다. 이들이 겪는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가 정말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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