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물푸레나무 회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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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물푸레나무 회초리
  • 최일화
  • 승인 2019.08.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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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통일 염원 사화집《상상탐구》5호를 읽고 - 최일화 / 시인


오늘은 계간 《계간문예》 소속 [계간문예작가회] 회원들의 2019년 사화집에서 시 한 편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 사화집은 자유·평화 그리고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시인 작가 157분이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수록된 시작품들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김창완 시인의 작품이 가장 감동적이고 민족의 염원을 잘 대변하고 있다. 고 김규동 시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작품으로 김규동 시인의 원작보다도 더 강렬한 울림을 주고 있다. 시인은 우리나라를 이상한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분단 7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두 나라로 쪼개진 나라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한 한 민족이 70여 년 이상 쪼개져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분명 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나라다. 시를 읽어 보기로 한다.


 
백두산 물푸레나무 회초리

                                       김창완


이상한 나라 탈출한 망명 시인을 하세요?
어머니 슬하 떠나온 지 60년 넘었는데도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나라에서
소쩍새 피울음 울 듯 시를 쓰며 살았던 소쩍새 시인
어머니 무릎에 얼굴 묻고 울고 싶었던 울보 시인
 
“꿈에 네가 왔더라 멀고도 먼 날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정말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울기만 하더라.”

꿈에 들은 환청 같은 어머니 목소리 하마 잊을까
뼈에 새기듯 돋을새김으로 목판에 새겨
후배 시인들에게도 나누어 주다가
조각칼 잡을 힘조차 없어진 나이 여든여섯
2만 3000여 나날이 절망이 된 예순세 해
예서 더는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어머니 계실지도 모를 나라로 망명해 버린 시인

“빈 하늘 쳐다보며 쫓아다니다 보니 그 많은 시간 다 가 버렸어 북녘 내 어머니시여 놀다놀다 세월 다 보낸 이 아들을 백두산 물푸레나무 매질로 반쯤 죽여주소서”
 
늙은 시인은 가서 어머니 만났을까요?
어머니 앞에 종아리 걷고 회초리 맞았을까요?
어머니는 아들의 종아리 쓰다듬으며
소나무 둥치 같더니 앙상한 삭정이 되어 오다니
어서 가라고 등 떠밀어 보낸 내 죄다 하시며
당신의 종아리를 때리셨을 지도 모릅니다

갈라진 나라 붙여 놓지 못하고 세월 다 보낸 죄
갈라진 나라 하나로 이어질 때까지
이상한 나라가 이상하지 않은 나라 될 때까지
울보 소쩍새 김규동 시인 울지 않을 때까지
우리도 백두산 물푸레나무 회초리 맞아야 합니다
 
*인용: 김규동 시 <북에서 온 어머니의 편지> <죽여주옵소서> 중에서 임의 발췌 재구성



김규동 시인김규동 시인은 192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1948년 월남했다. 월남하던 해부터 민족분단 문제, 사회노동 문제 등을 시로 표현하면서 문학의 현실참여를 실천하였다. 1970년대 군부독재와 산업화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운동에 참여하였고 현실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꾸준히 했다. 분단문제를 극복하려는 희망과 의지를 시에 담았으며 80년대 들어 발표한 시는 독재 권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였다. 정치적 부조리를 정면으로 언급하며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문학운동에 동참하다가 2011년 향년 86세로 작고했다.
 
김규동 시인이 꼼 속에서 들은 어머니 목소리를 뼈에 새기듯 돋을새김으로 목판에 새겨 후배 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대목엔 울컥하며 가슴 먹먹하다. 이승에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 또 울컥해진다.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소나무 둥치 같더니 앙상한 삭정이가 되었다며 늙은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월남하여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온갖 고난을 이겨냈을 아들을 생각하며 어머니는 어서 자유를 찾아 가라고 등 떠밀어 보낸 일을 몹시 후회했을 것이다.
 
김규동 시인의 이 비극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이산가족들만의 비극도 아니다. 온 겨레의 비극이며 민족의 통한이다. 갈라진 나라가 다시 이어질 때까지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지금은 저승에서 울고 있을 김규동 시인이 울음을 멈출 때까지 우리는 백두산 물푸레나무로 종아리를 맞아야 한다. 그렇다. 온 국민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우리 모두는 회초리를 맞으며 기어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왜 하필 백두산 물푸레나무인가.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 남과 북 8500만 민족의 웅장한 기상, 민족정기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김창완: (1942 ~ ) 대한민국의 시인. 전남 신안군 출생. 조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호는 금오(金烏).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개화>가 당선되고, 같은 해 '풀과 별'에 <꽃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1976년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시집에 《인동일기》(창작과 비평사, 1978년),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실천문학사, 1984년) 《나는 너에게 별 하나 주고 싶다》(자유문고, 2000년), 《봄이니까》(지혜서, 2015) 등. 제 4회 오늘의 시인상, 제 27회 윤동주 문학상, 제 2회 계간문예문학상. 현재 계간문예창작원 시창작 강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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