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의 의미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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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의 의미를 돌아본다
  • 고재봉
  • 승인 2019.08.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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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고재봉 / 자유기고가



 동구 거리 어영대장 축성행렬 ⓒ배영수


한창 신록이 무르익을 때라지만, 그래도 해마다 5월이면 동구는 화도진축제를 열어서인지 조금 더 흥성거리는 분위기가 제법이다. 아마도 화도진공원을 거점 삼아 열기 때문에 축제의 이름이 ‘화도진’일 텐데, 지역의 공원을 테마로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잔치를 벌이는 일이라 동구 사람들에게는 나름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행사로 인하여 두세 해 정도 몹시 마음이 상하여 개최 주체인 동구청에 민원까지 넣은 바가 있다. 이른바 축제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답시고 구청에서 마련한 ‘해괴한’ 행사 때문이다.
 
화도진(花島鎭)을 비롯한 인천의 진지 자리는 기울어 가던 조선의 명운이 아프게 새겨진 장소들이다. 소위 조선을 개항시킨다는 명목으로 서구의 함선들이 출몰을 하였던 까닭에 여기 진지들은 서구 근대세력과 격전을 벌이며 선조들이 피를 흘려야 했던 곳이다. 그러므로 인천에 개항장이 생겼다는 것은 좋든 싫든 우리가 서구 근대세력의 무력 앞에 굴복하였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좌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근대세력 안에는 우리보다 먼저 개항을 하여 기민하게 근대화를 이룬 일본도 들어간다. 여하튼 한중일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개항이란 공히 서구세력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시절이 바뀌어 그 침략의 역사를 축제의 테마로 소비하고 있으니 인정세태의 아연한 변화가 놀라울 뿐이다. 특히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사로 화도진공원에서 한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을 재연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몰역사의 절정이 아니지 싶다. 비록 근대화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고 할지라도, 조미(朝美) 두 나라가 화도진에서 마주한 것은 어찌하였거나 저들이 우리에게 무력으로 시위를 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미국이 대한민국의 최고 우방이고 선린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그 시작에는 폭력과 굴복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흔들릴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기념한답시고 백여년 전 복장을 하고서 화도진공원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응당 부끄러움은 피 흘린 조상의 몫이 아니라 지난 세월을 잊고 자존심마저 축제판에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킨 후손들의 몫이어야 마땅하다.
 
이태 전 화도진축제를 한다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길거리 곳곳에 걸어놓은 모습을 보며 흡사 미국 한인타운 드라마 세트장을 보는 것 같다는 지인의 뼈 있는 농담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한미수호통상조약 일백 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축제의 볼거리로 선전하여 병통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같은 점은 비단 동구의 행사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항의 의미에 대하여 반성적으로 접근하고 그것을 신중하게 소비하고 섭취해야 하지만, 인천시가 여기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개항은 인천을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인천을 알리거나 관광객을 끌기 위한 손쉬운 방편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불만에 가까운 글을 쓰는 입장에서 동구청에 미안한 감정도 있다. 작년의 항의에 가까운 민원 덕분인지, 올해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한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 재연행사는 없었다고 한다. 대신 화도진을 방어하기 위한 어영대장 축성행렬을 재연하였다고 한다. 비록 개선장군의 행렬도 아닌 것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이 여전히 이상하기는 하지만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동구청은 분명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개항의 의미를 생각하여 이러한 행사들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미국이 진정 우리의 좋은 이웃(善隣)이라면 관계 백 년을 기념하기에 앞서 5월의 꽃이 벙그러지는 화도진에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격전의 자리에서 잔치를 하는 것이 단순히 지역 홍보를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우리들의 자신감을 보여준다면 그야말로 잔칫날 분위기로 더없이 좋지 않을까. 그리하여 화도진 축제의 또 다른 말이 ‘평화의 축제’가 되는 날이 온다면 이는 명실공히 인천의 5월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이것은 동구 뿐이 아니라, 인천시가 개항의 의미에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사족을 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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