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해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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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해서 궁금하다”
  • 한인경
  • 승인 2019.08.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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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카우보이의 노래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부터 ‘그해 주목받은’ 또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들을 선정하여 평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3월부터는 미추홀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작가와의 협약 하에 <인천in>에 게재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눕니다

 




“Stories live forever, people don't.”
 
『카우보이의 노래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불확실해서 궁금하다”

넷플릭스 공개 : 2018. 11. 16(132분/미국)
감 독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 연 : 팀 블레이크 넬슨, 제임스 프랭코, 리암 니슨, 톰 웨이츠
장 르 : 블랙 코미디
등 급 :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카우보이의 노래』포스터
 
 
1.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에 올려지기까지 다양한 메커니즘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 또한 불특정 관객들의 관심거리도 하나의 방향이 아닐 것이다. 출연 배우, 영상, 연출력, 시나리오, OST, 조명, 음향, CG, 시사성 등 다양한 관객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그들의 관심 포인트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연출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개봉 전 영화라도 어느 어느 감독의 작품이라 하면 그 영화의 분위기 정도는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봉준호’라는 이름 석 자는 예술성과 상업성 두 가지 모두를 담보한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본인도 듣기 좋아한다는 ‘봉준호 장르’는 관객들에게 ‘봉준호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게 한다.
필자가 보증 수표처럼 믿고 보게 되는 외국의 감독 중에서 코엔 형제(에단 코엔, 조엘 코엔)가 있다. 코엔의 영화도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대체로 선악 구도가 불확실하고, 도덕적, 일반적 흐름을 깨트리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물론 반전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영화는 전개되면서 어느 정도는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쩐지 코엔 영화는 이 구조에 그리 친절하지 않다.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그들의 영화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가 있다. 그 외에 ‘파고’(1996),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2001)는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오늘은 그의 최신작 『카우보이의 노래 The Ballad of Buster Scruggs』를 골랐다. 작년 코엔의 영화가 처음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됐다. 그들은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 총잡이, 카우보이, 골드 러쉬 등을 배경으로 시대를 풍자하며 날카로운 일침을 날린다. 권선징악이라든지 해피엔드라든지 일반적 구조를 깨트리면서,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치 있는 코믹을 접목하고 그러면서 조금 깊게 가려진 메시지를 이해하라는 듯이 던진다. 또한 각 에피소드 간 연결된 듯 아닌듯한 스토리 전개로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까지 긴장을 준다.
 
 



2.
 
총 6편의 단편들이 서로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깊어지다 보면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에 놀라게 된다.
 
<카우보이의 노래, 그리고 그 외 미국 개척자 이야기>
1. 버스터 스크럭스 2. 알고도네스 근처에서 3. Meal Ticket 4. 금빛 협곡 5. 곤경에 빠진 아가씨 6. 죽은 자만 남으리라. 이처럼 6개의 에피소드가 전개되는데 챕터가 바뀔 때마다 첫 장의 내용이 써있는 페이지가 넘어간다. 관객은 마치 6편의 단편 소설을 영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코엔 형제의 스토리텔링을 필자의 판단으로 각 챕터를 한 줄로 정리해 보았다.
 
1. 카우보이가 노래하는 강자와 약자 그리고 승리한 자
2. 꼬인 인생 정당함도 억울함도 죽음 앞으로
3. 새 물결 앞에서 자비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4. 금광도 자연도 사람도 모두 지나간다
5. 불안해도 궁금하다
6. 그대로 죽은 자만 남으리다
 
조금 더 들어가 본다. 각 장에서 읽히는 감독의 메시지를 스토리와 함께 알아본다.
버스터 스크럭스는 영화 속 카우보이의 이름이다. 전통적인 서부영화에서 그려지듯 신사답게, 사나이답게 숫자를 세고 총을 뽑는 것이 아니다.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숫자를 세는 규칙은 허무하게 파괴시킨다. 한순간 방아쇠를 먼저 당겨 상대방의 손가락을 차례로 명중시키면서 최후의 한 발을 발사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죽는다. 죽는 사람도 죽인 사람도 마지막 순간을 회피하려하지 않는다. 컨트리 송을 부르며, 말끔하고 밝은 톤의 복장을 하고 등장한 버스터 스크럭스. 하나뿐인 목숨이 오가는 숨 막히는 순간들이지만 영화는 덤덤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처리한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등장한다. 모래바람의 사막, 알고도네스 근처 은행 관리인은 치밀해 보이지 않는 은행 털이범과 맞선다. 쇠로 된 냄비를 온몸을 두르고 서로 총을 겨누는데 은행 털이범의 총알이 냄비를 맞고 튕겨 나간다. 당장 생명줄이 끊어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인데 감독은 관객들에게 웃으면서 지켜 보라 한다. 냄비로 온몸을 무장하다니. 은행털이범 카우보이가 조준해서 맞춘 것은 목표, 즉 상대방의 심장이 아닌 냄비였고, 이 또한 상징성이 읽히는 부분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 통용되는 사회,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불안 등 코엔이 그린 사회 일면이다.
 
다음 장에서는 사지 없는 인물을 등장 시켜 자비 없이 마무리 짓는다. 계산 할 줄 아는 닭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유랑 극단의 배우는 극단 주인에게 처리된다. 사지가 없는 배우는 처음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만 등장이 반복됨으로써 관객은 지루해하고 새로운 것에 몰려감으로써 자연스레 수익도 줄어든다. 아마도 이 닭도 뭐 그리 오래 살아남을 것 같진 않다. 좀 더 새롭고 신선한 것, 재미있는 것 없을까 하며 강한 자극으로 쏠리는 이 현상이 낯설지 않지 않은가.
 
네 번째 이야기는 금맥을 찾는 노욕(老慾)의 모습이 중심이 된다. 이 4장에서 ‘희망’이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여준다. 오로지 금맥만을 찾기 위해 자연을 파헤치는 노인. 세 번째 에피소드가 전체적으로 화면과 내용이 어둡고, 칙칙했다면, 사슴이 목을 축이고 초록이 눈부신 대자연 스크린으로의 전환에 관객들은 갑자기 눈이 부시다. 우거진 초록과 금맥을 찾고자 삽질로 드러난 대지가 대비를 이루며 군데군데 상채기처럼 드러난다. 멀리서 촬영한 전체 샷은 처절한 파괴라기보다는 그 자체도 다시 거대 자연 속으로 묻힐 것이라고 분명히 전한다.
다음 장은 롱거바우라는 아가씨가 겪게 되는 곤경과 어이없는 자살까지, 강아지 한 마리가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다가오는 시간을 암시하면서 그대로 흘러간다.

마지막 이야기 배경은 마차 안이다. 포트 모건이라는 도시까지 가는 이 마차 안에는 현상범 시체를 싣고 가는 2명 외에 사냥꾼, 남편이 저명한 박사고, 3년간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점잖게 차려입은 나이 든 여성, 마지막으로 프랑스 남자까지 다양한 삶을 살아온 5명이 타고 있다.
목적지 도착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는 마차 속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음산한 기운이 도는 깊은 밤, 천에 휘감긴 시체를 두 사람이 부축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나머지 세 사람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망설이다 마치 비장한 각오를 마친 사람 마냥 굳게 닫혀 있는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들을 실어준 마부는 다시 호텔에서 나오면서 들어서는 이들과 서로 등을 보이게 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3.
 
“Stories live forever, people don't.”
 
영화 포스터에 쓰여 있는 이 한 줄로 감독은 불확실한 인생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사인을 보낸다.
마지막 장,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눈 대화를 정리하며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마차 안에 탄 사람들은 각자 기준에 따라 세상을 구분 짓는다. 세상 사람의 부류는 죄짓지 않는 사람과 죄짓는 사람으로 구분한다든지 또는 죽은 자와 산 자로 구분한다든지 그리고 족제비 같은 한 부류일 뿐이라는 등 5명 각각의 시각은 다르다. 감독은 특정 한 가지를 강요하지 않고 더 이상 분석하지 않는다. 즉 이런 다름이 우리들 삶의 모습, 인생 스토리라는 것.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매니페스토 Manifesto’(2019.7.25 개봉)를 잠깐 들여와 보면, 13가지의 예술사조를 케이트 블란쳇, 1인 배우가 외모를 바꿔가며 소개한다. 마지막 씬은 그 앞에 등장했던 모든 사조를 한 화면에 등장시킨다. 예술이란 하나의 ‘주의’에 머물기보다는 변화하는 흐름을 타면서 앞선 사조들의 영향에서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 마찬가지로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에서도 시대는 다르지만, 각각의 짧은 이야기에는 다른 삶을 사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현재로 옮겨 온다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죽은 자만 남으리라’는 소제목이 섬뜩하면서 영화를 대표하는 한 줄로 정의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인공은 자신이다. 불확실한 앞날이 있을지언정 의미를 만들어 가면서 내가 주체가 되어 당당히 맞서고, 끌어안기도, 깨지기도 하면서 가는 것이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는 필요 이상의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정리하고 생각의 끝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코엔 감독은 약속한 영원한 스토리를 써갈 것이다. 필자는 그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린다.

한인경 / 시인 · 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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