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빈 여러분, 연탄 몇장이나 나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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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빈 여러분, 연탄 몇장이나 나르셨나요?"
  • 이병기
  • 승인 2010.12.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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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뉴스] "왼 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사진촬영을 준비하는 '내빈들'

취재: 이병기 기자

"이렇게 시끄럽게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대단한 일도 아니고. 요즘 기업들 모두 나눔 활동 하잖아요. 그냥 연탄만 주고 가려고 했어요." - 이경봉 (주)이건창호 대표

바야흐로 '연탄 배달' 시즌이다.

연탄뿐만 아니라 김장김치, 쌀, 라면 등 연말이 다가오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여기저기서 이어진다. 더불어 도움의 손길을 '증명'하는 사진도 중구난방으로 늘어만 간다.

3일 인천의 대표적 쪽방촌인 동구 만석동 '아카사키촌'에 '사랑의 연탄'이 배달됐다.

행사가 진행되는 쪽방촌 구 상담소 부지에는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한편에선 난로를 가운데 두고 모인 쪽방촌 주민들, 또는 자리를 잡지 못해 찬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행사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 보인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영하 7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상을 기록한 날. 주최측 관계자들은 이리저리 물품을 챙기거나 내빈 동선을 살핀다. 행사는 연탄 배달과 함께 육개장과 바비큐 파티 등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순서도 마련돼 있다. 음식을 만드는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찬바람 속에 멍 하니 이들을 바라본다.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노인들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 내색 없이 이들을 받아들인다.


오전 11시 시작 시간에 맞춰 행사가 진행됐다. 조금 늦게 참석한 송영길 시장과 함께 조택상 동구청장과 동구의회 의장, 몇몇 언론사 사장이 함께 참석했다.

오늘 연탄을 제공하고 직원들이 직접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이건창호 대표가 먼저 인사말을 한다.

"오늘 이렇게 시끄럽게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다른 분들도 계신데 제가 먼저 말하는 것도 조금 그렇습니다. … 인천지역 기업으로서 더욱 열심히 나눔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송영길 시장, 조택상 동구청장, 동구의회 의장, 언론사 대표 등의 축사가 이어진다. 날씨를 생각해서인지 다른 행사때보다 길지는 않지만, 연탄을 배달하는 데 말이 좀 많기는 하다.

'포토타임'도 있다.

연탄을 전달한다는 피켓을 들고 한 컷. '시장님' 앞치마 입는 사진 한 컷. 연탄 앞에서 기념사진 한 컷. 내빈 축사 사진 한 컷 등.

행사가 끝나기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다. 역시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30분 전, 아니 그 전부터 밥 한끼와 연탄을 받기위해 기다린 어르신들의 손발은 이미 꽁꽁 얼어 있다.

드디어 내빈들의 연탄 나르는 순서가 왔다. 내빈을 따라 행사 관계자와 취재진, 수행비서들이 우르르 연탄을 배달하는 곳으로 몰려간다.

한 5분이나 10분 지났을까.

"사진 다 찍었죠?"

내빈 중 한 명이 말한다.

"사진이 중요한 거야. 잘 찍어."

그리고 나선 다들 '바쁜 일정' 관계로 연탄을 내려놓는다.

일부 내빈은 주민들 틈에 앉아 육개장과 밥을 한 술 뜬다. 서민들 속에서 함께 밥 먹는 모습이 전혀 나쁠 것이 없는데도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물론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것을 결코 마다할 일은 아니다.

종교에서도 "왼 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가.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추운 겨울에도 열심히 일하는 단체들의 수고는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예수나 부처의 말을 조금이나마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빈'이라는 위치를 가진 이들 역시 '사진 한 장 박기 위해' 쪽방촌을 찾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어떨까.

"내빈 여러분들. 오늘 연탄 몇장이나 나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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