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갈래 계획을 땋은, 싸리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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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갈래 계획을 땋은, 싸리재길
  • 유광식
  • 승인 2019.09.19 2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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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경동 싸리재길 / 유광식
경동 싸리재길, 2012ⓒ유광식
 

지난 9월 첫 주말에 태풍 ‘링링’이 거센 돌풍과 함께 찾아왔을 때, 나는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부실한 베란다 큰 창을 깨뜨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신경이 매우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쥐는 코너에 몰렸을 때 고양이에게 덤빈다고 하지 않던가. 바람길이 있는 한, 창문이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을 믿었다. 다행히 큰 참사는 없었지만, 동인천역 주변을 돌아다니다 몇 가지 피해 사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링링은 구) 인천카톨릭회관 터의 가림벽을 안다리 걸어 재끼고 녹색 헌옷수거함을 자빠트렸다. 옥수수알 털듯이 지붕 기와를 뽑아 날릴 때는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회오리에 휩쓸려 날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다행히 인천문화양조장 앞을 지키는 깡통로봇은 안쪽으로 잠시 피신을 하러 갔기에 화를 면했다. 

 
태풍 ‘링링’에 쓰러진 구) 인천카톨릭회관 터 가림벽, 2019ⓒ유광식
 

애관극장에서부터 발걸음을 내딛는다. 주말에는 차량이 인도를 잠식하므로 인도와 도로를 지그재그 오가며 걸어야 한다. 비어 있던 산부인과 건물은 카페로 둔갑했고, 오래된 집 한 곳은 분홍색 외투를 걸치고 전시가 한창이었다. 그 옆 아름다운가게는 역 앞에 자리했던 것을 확장 이전해서인지 공간이 자원 순환 활동을 펼치기에 넉넉해 보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저녁 6시면 땡! 끝난다는 점이다. 기독병원 아래 문화공간 ‘플레이캠퍼스’는 지난한 리모델링을 했고 이번 연도 10주년 기획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쇠약한 건물 사이사이로 현대식 파사드가 인상적인 곳들을 만날 수 있다. 골목 안쪽으로도 가게와 공간이 숨어있고 말이다. 그렇게 200여m 내려가다 보면 배다리마을에 닿게 된다. 나룻배 기다리듯 신호 기다려 건너면 바로 배다리 헌책방거리다.

 
경동 기독병원입구 사거리, 2018ⓒ유광식
 

동인천역 가까운 곳에는 이 지역의 중요한 길목이며 바람길인 ‘싸리재길’이 있다. 애관극장에서 시작되어 언덕이라기엔 조금 민망한 재를 넘으며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이어지는 좁은 2차로 길 말이다. 싸리재길은 옛날에는 인천과 서울을 잇는 길목이었고, 지금은 중구와 동구를 잇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이곳 또한 가만히 놔둘 수 없었나 보다. 이곳에 자못 우려스러운 분위기가 스며있었다.

집과 가게가 한 몸인 Cafe '싸리재‘는 수년 전, 이 길의 이름을 그대로 간판으로 하여 연 곳으로, 커피&음료를 마시며 그윽한 향기와 음악 속에 여유를 머금을 수 있는 장소이다. 이 주변의 건물들이 2~3년간 집중적으로 거래되었다는데, 좋은 소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은 대개 인천이 아닌 타 도시권에 거주하는 개인이나 법인 등에 매입됐고, 이후 카페나 음식점, 문화공간 등으로 탈바꿈했다. 모바일 검색에 능숙한 젊은 층들은 주말이 되면 싸리재길의 공간들을 찾기 바쁘다.

 
경동 Cafe '싸리재' 1층(풍금), 2016ⓒ유광식
 

골목길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지역 거주민으로서 이상야릇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떨쳐 낼 수는 없다. 장소는 시간을 품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간을 존중하며 걸어가는 방향이 아닌 것 같다. 누구를 탓하랴마는, 그나마 위안이라면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인천민주로드’ 답사를 한다는 것이다. 답사로 중 한 코스인 <인천항↔창영초>까지 이어지는 그 길 가운데 경동 싸리재길이 있다. 한편, 답동성당 뒤쪽의 너른 공영주차장은 옛날 민간해운회사 이운사에 이어 지역의 금고 역할을 했을 법한 조흥은행 부지이기도 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애맨 돈을 빠트리고 갔는지 짧은 시간에 깊어진 시간을 훼손하는 검은 손으로 자란 건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된다. 

 
경동 공영주차장(옛 이운사, 조흥은행 터), 2019ⓒ유광식

배다리 산업도로 에코동산에서, 2019ⓒ김주혜
 

‘상점이 생기고 사람들이 많아지면 뭐니 뭐니 해도 좋은 것이고, 동네가 살아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대해 과연 그러할까 하는 의문 섞인 생각이 든다. 우리도 옆 동네와 똑같은 형국(도시재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살아가야 할까?) 재생이 아닌 복제로 말이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은 과연 가능한 것이었다.

 
배다리 우각로의 어느 건물 외벽화, 2017ⓒ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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