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강간은 왜 감형되고 연령이 상향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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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강간은 왜 감형되고 연령이 상향되지 못할까
  • 박교연
  • 승인 2019.10.0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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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9월 10일 2심에서 법원은 10살 초등학생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전직 보습학원 원장을 징역 8년에서 3년으로 크게 감형했다. 하루도 안 돼서 한규현 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고 동의자는 20만 명이 훌쩍 넘었다. 법원은 민심을 전혀 예상 못 했는지 깜짝 놀라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정의 실현 차원에서 직권으로 유죄를 선고한 사안”이라고 변명했다.
 
도대체 의제강간이 어떻게 해서 ‘무죄가 될 사안’이 된 걸까? 현행 형법은 사건 조사 시작 때부터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피해 아동은 밤 10시가 넘도록 조사관의 조사에 응했고, 조사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 질문에는 “직접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던 거냐? 그 사람이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 등이 있었다. 2심 법원은 이걸 피해자 본인이 아닌 타인이 간접적으로 진술한 ‘전문증거’로 판단했고 피해자의 진술을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 밤 10시에 끔찍한 피해 직후에 사건을 진술해야하는 아이의 상태는 조금치도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사실 1심에서도 아이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아 의제강간의 원래 형량인 10년 이상의 징역이 아니라 8년이라 낮춰서 판결했다. 현재 성폭력 법은 피해자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피해 상황을 진술할 것을 요구한다. 피해자는 어떻게 저항했고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제압했는지, 어느 부위를 얼마나 큰 힘으로 눌렀는지,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인지 등을 말이다. 여성단체와 아동청소년 성폭행 사건을 많이 다뤄본 법조인들은 “아동은 사라지고 여성만 남았다”고 이를 비판했다.

 


 
 

폭행과 협박이라는 강간죄 성립 요건을 기계적으로 사건에 그대로 적용한 것은, 우리나라 성폭력 법이 무고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걸 보여준다. 현행 형법은 누군가를 해칠 의도가 전혀 없었던 남성이 한순간의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걸 과도하게 처벌할까봐 극도로 경계하고 조심한다. 그러다 보니 사건을 입증하기 위한 질문들이 외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곤 한다. 구글에 성폭력과 의제강간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결과 역시도 억울한 성범죄 사건을 도와주겠다는 ‘성범죄 전문센터’의 광고다.
 
신기한 건 성폭력, 그중에서도 의제강간 연령상향 및 처벌엄수는 여야가 일찍이 합의한지 오래란 거다. 2012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의원 권선동 의원이 의제강간 연령을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올리자고 발의했고, 2015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또 다시 만 16세로 올리자고 발의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신체·성의식 발달로 13살만 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며 반대 의견을 냈고, 대법원 고위 관계자도 “일부 어른들 시각으로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 일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스스로 결정해 성관계를 하는 것까지 처벌하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동의를 표했다.
 
민심과 반대로 법무부의 결정에 동의하는 대표단체로는 청소년 활동가 모임 ‘아수나로’와 ‘한국 성폭력 상담소’가 있다. 아수나로는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건 위헌이라고 성명서를 냈고, 이미경 상담소장은 아동의 사랑할 권리를 국가가 정할 수 없고 나이에만 치중하는 건 오히려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점을 가린다고 인터뷰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 역시 “아이들을 성적 권리 행사의 주체가 아닌 국가가 보호할 대상으로 축소시켜선 안 된다”며 “근본적 원인은 현행 형법의 강간죄가 폭행·협박만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의제강간 최저기준을 13세로 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그리고 ‘자발적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동 성폭력은 벌어지고 있다. 올 초 대전지방법원은 12세 초등학생을 그의 집에서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6개월을 선고했다. 채팅 앱에서 피해자가 14세라고 주장했고, 대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의제강간이 적용되지 않아 가택침입죄만을 선고한 것이다. 2018년 2월부터 2달 간 중학생을 30여 차례나 성폭행한 학원장은 피해자가 ‘합의된 성관계’라고 진술했기 때문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아직 성적 가치관과 판단 능력이 없는 10대 초반 여중생과 성행위를 한 것은 성적 학대에 해당하지만, 학원장이 전과가 없고 구금이 계속되면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연예기획사 사장은 2011년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처음 만난 15세 중학생을 여러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그에게 각각 징역 12년과 9년의 중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이 사건을 무죄로 확정지었다. 대법원은 “가해자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여중생이 거의 매일 구치소를 찾아와 ‘사랑한다’는 편지를 건넸다”며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판결들을 종합해보면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호하는 건 아동·청소년이 아니라 가해자인 걸 알 수 있다. 사랑, 선택, 자발 등의 허황되고 허울 좋은 단어 때문에 어린 아이는 법의 보호에서 밀려나고 있다.
 
피해자는 결코 성폭력 피해자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됐다. 선택이 개인적 삶을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궁극의 수단으로 찬양될 때, 약자를 지켜주는 법적 최소한의 보호막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성폭력이 결코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현행 형법이 그토록 보호하고 싶은 무고한 피해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는 온통 99%의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나이도 상황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다. 이들은 모두 정의로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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