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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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8년차
  • 장현정
  • 승인 2019.10.0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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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애가 하나?"
"아들?"
 
"잘됐네. 아들 하나만 있어도 되네.
아들이니까 남편에게 안 미안해도 되잖아.
뭘 더 낳아. 하나만 낳아 잘 키워"
 
운동하다 우연히 알게 된 두살 손위 지인의 말이었다.
꽤 괄괄하고 씩씩해 보이는 그 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 있구나.
 
 
얼마 전 추석이었다. 다른 집과 비교해보면 겨우 두 시간 전을 지지는 우리 시댁은 천국이다. 장보기도 음식도 어머님이 알아서 하신다. 나는 어머님의 음식 솜씨에 감탄하며 설거지만 몇 번 하고 온다.
 
하지만, 일을 많이 하던 적게 하던 명절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가 있다. 남자들은 부엌 근처에 오지 않는다는 것,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차례 지내는 당일 더 늦게 일어난다는 것, 내가 부엌에서 안달복달 하는 모습을 내 자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 어머님의 부엌에서 어리버리한 내 모습을 나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다는 것. 일 시켜 달라는 강아지처럼 어머님 주위를 배회하다가 일할거리를 찾아 나서는 내 자신이 매우 낯설다는 것.
 
그래서 지난 명절부터 남편에게 설거지를 하자고 했다. 한 두 번이라도 하자고 했다. 뭐 어려운가? 집에서는 늘 함께하는 일이다. 어머님 앞에서 안한다고 평소에 안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 이러한 명절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들이 많아지고 있다. 젊은 친구들은 더 당차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또한 하나씩 해나가리라 다짐한다. 명절 이후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낮아지는 자존감, 이런 것들을 더 이상 겪고 싶지도 않고 물려주고 싶지도 않다.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는 일을 마치고 하루 늦게 갔다. 몇 달 후 또 시댁식구들이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일정이 도저히 어려워 못 간다고 했다. 갈 수 있는 사람만 가면 된다. 남편과 아이만 가면 된다. 남편이 가족을 만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여자라고 시댁에 더 잘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남녀가 평등함을 가르쳤다. 어려서부터 나와 남동생은 같이 집안 일을 했고, 나는 남동생이 뺀질거리면 집안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
 
결혼할 배우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정을 ‘함께 꾸려갈 사람’이었다. 남녀를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아이를 키워갈 사람, 남자나 여자라는 역할 편견에 갇혀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비교적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한다. 내 남편과 함께 하는 삶. 가정의 대소사를 함께 짊어지는 삶, 오늘의 밑반찬과 설거지와 청소와 쓰레기와 빨래와 화장실 청소에 대한 부분들을 의논한다. 결코 작지 않은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서 책임감을 갖고 함께 하는 남편과의 삶에 만족한다.
 
남편의 밥을 해놓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내 남편은 자신과 아이를 위해 간단한 요리나 밑반찬을 할 줄 알고 자신이 먹은 것을 치울 줄 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다. 내 남편의 이러한 함께 함이 내 삶의 질에 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모두의 삶의 모양이 다르지만. 내 남편과 내 삶의 모양이 지금까지 맞아왔던 것은 소소하고 작은 것, 가정에 대한 책임을 함께 가져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의 삶이 즐겁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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