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라일락의 세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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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라일락의 세월천
  • 장정구
  • 승인 2019.10.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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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월천 -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부평 GM공장 내부 세월천


 “우와~ 이렇게 키 큰 라일락이 있었네요”
 “봄이면 진한 라일락 향기에 발길이 저절로 이리 향해요”

 세월천에서는 우리나라 최고령일지도 모를 20여 그루의 라일락이 있다. 우리말로 수수꽃다리인 라일락은 외래종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봄향기를 대표한다. 인천역 플랫폼에 있던 최고령 라일락이 고사한 후 필자는 봄이면 한국GM 부평공장 안 세월천 라일락을 찾는다. 인천항 개항 이후 많은 서양문물이 인천을 통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런 연유로 인천에는 우리나라 근대를 대표하는 최초, 최고 문화유산과 산업유산뿐 아니라 자연유산들도 제법 있다. 라일락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공원인 자유공원(만국공원)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양버즘나무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령 플라타너스도 있다. 요즘도 많은 외래식물들이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된다.

 우리나라 고유종 수수꽃다리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평안남도, 함경남도, 황해도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수꽃다리속(Syringa Linné, Lilac)에는 수수꽃다리 외에도 정향나무, 개회나무 등이 있으며, 외국의 경우에는 약 30여종의 라일락이 있다. 60년대 관상용으로 많이 심었고 최근에는 우리 종을 개량해서 다시 들여온 미스김 라일락을 많이 심는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교류사업으로 우리나라 자생 수수꽃다리를 황해도에서 가져다 인천역에 심어 인천역 라일락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세월천 라일락


 세월천은 한남정맥의 원적산 석천약수터와 삼천약수터에서 시작된다. 원적산공원 끝자락 등산로 입구에서 두 물줄기가 만나고 원적산 북서쪽에서 발원한 다른 물줄기를 만난 후 산곡동 거산아파트 옆에서 복개구간이 시작된다. 이후 뫼골공원 앞, 영아다방사거리를 지나 한국GM부평공장 서문에 이른다. 공장 안으로 이어진 세월천은 동문을 지나 갈산천으로 그리고 굴포천으로 흘러든다. 옛날 항공사진을 보면 세월천은 지금보다 서쪽에서 청천천을 만났다. 한국GM공장과 부평공업단지 조성, 서부간선수로가 갈산천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원적산 공원 내 세월천


 부평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시작된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자동차 생산공장 계획이 있었고 1962년에는 새나라자동차가 일본 닛산자동차 부품을 들여와 부평에서 조립했다. 이후 신진자동차를 거쳐 새한자동차로, 대우자동차로, 지금의 한국GM까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현장이 바로 부평이고 세월천이다. 첫사랑의 쓴맛을 알게 해주는 라일락, 비록 외래종이지만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라일락, 가장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라일락이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의 한복판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후 세월천 라일락 그늘 아래에서 차를 마신다.

 세월천은 약 1.8km가 덮여있다. 대부분 세월천로라는 이름의 도로가 되었다. 세월천로는 청천농장에서부터 원적산공원을 지나 한국지엠공장 서문까지 연결된 도로다. 한국GM공장 홍보관 주차장을 지나면서 복개가 끝나는데 조립사거리까지 라일락과 단풍나무가 조경수로 근사하게 심겨져 있다. 조립사거리부터 콘크리트는 아니지만 도장작업을 위한 덮개가 씌워져 햇볕이 들지 않는다. 사실상 복개다. 인천녹색연합에서 2006년 인천의 복개하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후 기업의 사회공헌 하천복원사업 첫 번째 대상지로 꼽은 곳이 세월천이었다. 홍보관 앞마당 지하에 소규모정화시설을 설치하고 공장에서 사용한 물을 정화해서 바로 흘린다면 하천복원과 노동자 환경복지 차원에서 모범사례가 될 것 같다.

 세월천 상류에는 도롱뇽과 가재, 엽새우, 플라나리아, 날도래 등 수서생물이 관찰된다. 부영공원 오염토양정화를 위해 맹꽁이를 이주시킨 원적산 공원에서는 장마철이면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등산로에서는 두꺼비들이 어렵지 않게 관찰된다. GM공장 안에서는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세월천 메마른 물길을 지키고 있다. 봄이면 라일락 향기 짙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이 드리운다.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일품이고 겨울에는 눈 내린 풍광이 근사하다. 

 가을이다.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른 내려와 빨간 단풍잎 아래서 따뜻한 차 한 잔에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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