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속도
상태바
국수의 속도
  • 정민나
  • 승인 2019.10.17 0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수의 속도 - 한영수




국수의 속도
                  - 한영수


아버지 몸에선 바람 소리가 났다
저곳으로 저곳으로 떠다녔다
생활의 등짐 속엔 노래도 한 말
아침저녁 빈자리에 유행가가 흘렀다
 
명절 전야엔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는 지난해 노래를 또 불렀다
‘대전발영시오십분~’
 
국수 가락이었다
대전역이나 이리역 플랫폼에서 멸치육수에 말아 낸
대파 몇 낱이 고명의 전부인
흐믈거리며 목을 넘어가는
넘기자마자 배가 차오르는
국수보다 육수가 많은 가락국수
 
기차는 경적을 올리고
벌써 저만큼 움직이기 시작하고
차장은 호각을 분다
보지 않아도 안다 영화에서 봤다
그런데 ‘발영시오십분’은 무엇인가
 
국물에 힘없이 벗겨진 입천장이,
바람처럼 달려야 하는 야간열차가
‘대전발 0시 50분’을
띌 숨이 없었다는 것
국수의 속도전을
 
국수물이 끓어오르는 동안 나는 호흡해 보는 것이다


 

철도와 함께 성장한 대전은 가락 국수가 유명하다. 시인은 아버지의 속도를 국수의 속도로 바라본다. 아버지가 부르는 ‘대전 부르스의 가락을 국수 가락으로 치환한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목구멍으로 빨리 넘어가는 가락국수로 배를 채우고 저만큼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기차를 향해 뛰어가는 아버지
 
연인과의 사랑의 시간보다 먹고 사는 일이 급했던 이 시절 사람들은 그런 만큼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대전 부르스를 즐겨 불렀다. 그러기에 1956년 만들어져 가수 안정애가 처음 불렀던 이 노래는 조용필이 재취입해 부를 정도로 국민 애창곡으로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1905년 만들어진 대전역은 러일 전쟁과 6.25사변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시간을 뚫고 오늘날 오픈 정보 터미널로 재탄생하였다. 근대 역사의 추억을 간직한 채 전국적인 거점 도시로 성장하는데 발판이 된 대전역은 사실 여행의 출발점이나 도착점이라는 낭만적 선입견보다 후루룩 가락국수를 마시고 바람처럼 재빨리 달려가 기차를 잡아타야 하는 고단한 사람들의 삶의 여정이 먼저 그려지는 곳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전의 ‘가락국수’를 지방의 향토음식으로만 알고 단순히 즐기겠지만 시인은 이 ‘가락국수’에서 아버지의 인생을 읊고 있다. 아버지가 살던 시대의 움직임을 이 ‘가락국수’ 하나에서 포착해 내고 있다. 가락국수는 “대파 몇 낱이 고명의 전부”이고 “국수보다 육수가 많은” 음식이다. 그래도 “넘기자 마자 배가 차”올라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일용한 양식이었다. 바람처럼 달리던 야간열차가 근대화를 수행한 오늘날 한국의 원동력이었다면 그 열차를 잡아타고 가락국수의 속도로 달려와 우리에게 바통을 쥐어 준 아버지는 오늘날 국가발전을 선도했던 주역들인 셈이다.
 
시인 정민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