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말, 배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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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말, 배려의 말
  • 최원영
  • 승인 2019.10.2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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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말 잘하는 방법


풍경 #126. 말 잘하는 방법

최종욱 선생이 쓴 『CEO, 책에서 성공을 훔치다』에 HP 공동창시자인 빌 휴렛의 일화가 나옵니다.
 
휴렛이 늦은 시간까지 자신의 집무실에 있다가 우연히 복사기를 켜둔 채 나갔습니다. 복도 끝을 돌아서려는 순간 그날 당직근무를 하던 한 여성이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여보세요! 복사기가 켜져 있잖아요.”

머쓱해진 휴렛은 사무실로 돌아가 복사기를 끄고는 당직 여성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휴렛에게 이런 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회사의 재무상태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하는지를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휴렛은 예의를 갖춘 채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정중히 사과를 하고, 앞으로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회사 야유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당직여성은 그제야 비로소 휴렛이 누구인지를 알았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빌 휴렛이 진정으로 직원들과의 대화에 가치를 두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빌 휴렛의 태도가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사장인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말단 직원에게 “그런 일 하라고 당신을 고용하지 않았느냐?”며 호통을 치거나, 다음날이면 해고통지서를 보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휴렛은 아랫사람의 지적에 그저 고개를 숙이고 끝까지 들었고, 급기야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 마치 잘못을 꾸짖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초등학생처럼 말입니다. 참으로 멋진 모습이지요?
 
잘못이나 실수는 누구나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잘못이나 실수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으로 드러났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곤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즉시 고개를 숙이면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시 용서를 구하는 태도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실 말을 잘한다는 것이 ‘달변’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달변가는 똑똑해 보이지만 그 말의 진실성에는 왠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눌하지만 왠지 진실해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겐 왠지 믿음이 가고 벗이 되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곧 진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실한 말은 ‘배려하는’ 말입니다. ‘나’의 입장이나 기준에서 던지는 말은 대개 꾸중이나 비판하는 말로 비쳐지지만, ‘너’의 입장이나 기준에서 던지는 말은 상대에게 용기를 주고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됩니다. 말은 당직 여성이 잘했지만, 정말 말을 잘한 것은 휴렛입니다. 그녀가 용기를 갖고 그 이후부터 더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었으니까 말입니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가르치고, 새로운 사실을 제안할 때는 마치 그가 잊어버린 것을 우연히 다시 생각하게 된 것처럼 제안하라”는 경구가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에 창의성이 부족하다며 핀잔을 받던 출판사 디자이너의 멋진 성공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책 표지 디자이너로 일하는 알렉스는 자신이 열심히 만든 디자인을 출판사에 가져갔지만 담당자로부터 매번 퇴짜를 맞았습니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알렉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고,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었지만 신통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디자인 초안을 들고 출판사 담당자를 만나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디자인을 하다가 막혔는데 제 힘으로는 도저히 풀리질 않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 주실래요? 전문가인 당신이 몇 마디 의견만 주셔도 제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자 담당자는 웃으며 자신의 의견을 주었습니다.
며칠 후 담당자의 의견을 자신의 디자인에 녹여낸 디자인 원본을 제출했고, 드디어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알렉스의 말입니다.
“예전에 나는 내 생각대로 만든 디자인을 사람들이 무조건 받아들여주길 바랐다.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객에게 의견을 구한 뒤, 그 의견을 작품에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자신이 창조적인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 있는 사물이나 일에 대해 자연히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 그래서 내가 억지로 팔려고 하지 않아도 고객이 먼저 나서서 구매한다. 왜냐하면 내 디자인은 곧 그들의 디자인이기도 하니까.”
 
말을 잘하는 것이 진실한 말, 배려의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을 잘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말하기보다는 듣는 시간을 늘리고, ‘나’를 보여주려는 것 대신에 ‘너’를 보여주려고 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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