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잔치집 바라는 골목이웃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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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잔치집 바라는 골목이웃 마음
  • 최종규
  • 승인 2010.12.12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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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찍기] 고향, 사랑스러운 삶터, 살림집

 꽃잔치집은 가을에도 꽃잔치집다운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꽃잔치집이라고 일컫기에는 머쓱한 여느 ‘꽃집’이라든지, 꽃집이라 하기에 살짝 아쉬운 ‘살림집’ 또한 가을에도 꽃집이나 살림집다운 매무새를 잃지 않아요. 꽃그릇 숫자가 백이 넘을 때에는 흐드러진 아름다움이요, 꽃그릇 숫자가 쉰이나 예순이라면 살뜰히 어우러진 아름다움이며, 꽃그릇 숫자가 스물 남짓이라면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고, 꽃그릇 숫자가 열 안팎이라면 앙증맞은 아름다움입니다.

 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철 따라 다 다른 꽃이 피고 집니다. 골목이웃이 손수 심어 일구는 꽃이 어여삐 피어나기도 하지만, 골목이웃은 따로 안 심었으나 바람과 벌나비가 날리거나 옮긴 꽃씨가 곳곳에 뿌리를 내려 꽃 한 송이 어여삐 피어나곤 합니다.

 한껏 들어찬 꽃을 보면 괜히 마음이 부릅니다. 한두 송이 외따로 빛나는 꽃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흐뭇합니다. 골목꽃이 골목길에 퍼뜨리는 골목빛을 느끼면서, 이렇게 골목동네를 환하고 맑게 보듬는 꽃잔치집이나 꽃집이며 살림집마다 이른바 ‘동네를 곱게 가꾸는 보람’을 기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인간문화재’가 있는데, 인간문화재마따나 ‘골목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여 보아도 좋겠다고 느낍니다. 또는 ‘골목꽃잔치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이름이야 어찌 붙이든 좋습니다. ‘골목사랑이’라 해도 되고, ‘골목멋쟁이’라 해도 되며, ‘골목살림꾼’이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이런 이름을 붙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나 스스로 골목사랑이랑 사이좋으며 살가운 이웃으로 지낼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서로를 곱게 아끼며 예쁘게 사랑할 줄 알면 즐겁습니다.

 내 살림돈이 푸진 나머지 돈을 조금 덜어 도와줄 이웃이 아닙니다. 내 자리가 공무원이라거나 정치꾼이라거나 뭣뭣이기 때문에 ‘재개발 대상자’를 가여이 여길 일이 아닙니다. 내 동무가 살고 내 이웃이 살며, 나 또한 살아가는 골목동네입니다. 조용히 이웃하고 살가이 손을 맞잡는 삶을 헤아리면 됩니다.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 그예 이웃이니까 연탄을 보태어 준다든지 보일러에 기름을 채워 준다든지, 밥 한 끼니 함께 차려 먹습니다.

 우리한테는 너른 운동장이 꼭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있던 너른 운동장을 굳이 없애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너른 놀이터가 꼭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잘 있던 너른 놀이터를 애써 없앨 까닭이 없습니다.

 동인천역 앞은 너른터였습니다. 이 너른터는 어느 날 갑자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루아침에 싹 사라졌습니다. 이러면서 높직한 쇼핑센터가 들어섰습니다. 높직한 쇼핑센터는 참 오랜 나날 파리를 날리며 볼품없이 동인천 한켠을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쇼핑센터 만든다며 없앤 너른터를 동인천역 뒤쪽에 새삼스레 만든다고 합니다. 있을 때 알뜰히 건사하지 않다가 큰돈을 들여 다시 만든다고 할 때에는, 슬프게 당신 삶터나 일터에서 내쫓기며 ‘고향을 잃어야 할’ 사람이 생깁니다. ‘고향을 빼앗으며’ 치른다는 보상금은 그 얼마를 준다 해도 알맞다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새로 너른터를 만든다 할 때에는 앞으로 쉰 해나 백 해가 훨씬 지나서까지도 이 자리를 너른터로 살려 놓을 믿음과 슬기가 있어야 합니다. 스무 해쯤 뒤에 다시금 뚝딱뚝딱 아파트를 올린다든지 또다른 쇼핑센터를 세우겠다느니 한다면 처음부터 너른터를 마련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높은 건물이 마을살림이든 지역경제이든 살려 주지 않습니다. 쇼핑센터가 마을이든 지자체이든 먹여살리지 않습니다. 저잣거리 나물장수 할매가 마을살림을 북돋우고 지자체를 살찌웁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햇살은 온 동네를 굽어살피며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겨울을 코앞에 두었든 겨울에 들어섰든, 골목집 ‘해바라기 하는 빨래’는 보송보송 마릅니다.


36. 인천 중구 경동. 2010.11.10.12:27 + F16, 1/80초
37. 인천 중구 경동. 2010.11.10.12:28 + F16, 1/80초


 가을이 저물어 가는 무렵이라지만, 사루비아꽃이 골목 꽃밭 한켠에 곱게 자라납니다. 아직까지 안 지고 핀 사루비아꽃이 다 있다니, 하면서 놀랍지만, 꽃을 아끼고 사랑하는 골목이웃한테는 새삼스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사루비아꽃 가운데 하나는 꽃밭이 아닌 돌틈에서 피어납니다. 아, 올해에 따로 심어서 자라는 사루비아꽃이 아니라 지난해에 심었던 사루비아꽃에서 씨앗 하나 돌틈으로 파고들어 올해에 힘차게 피어난 꽃이겠구나 싶습니다. 한창 가을햇살 받으며 꽃 사진을 찍고 있자니, 이 꽃밭을 돌보는 집임자 아주머니가 저를 들여다보고는 “어머, 꽃 사진 찍어 주어서 고마워요.” 하고 말씀합니다. “네? 아, 뭘요, 저야말로 이렇게 예쁜 꽃을 찍도록 어여삐 길러 주셨으니 고마워요.”


38. 인천 동구 송현1동. 2010.11.10.10:56 + F16, 1/60초
39. 인천 동구 송현1동. 2010.11.10.11:05 + F6.3, 1/40초
40. 인천 동구 송현1동. 2010.11.10.11:07 + F16, 1/60초

 동인천역 뒤편에 너른터를 새로 만든다면서, 이 자리에 있던 저잣거리를 싹 밀어냈습니다. 아직 몇 집은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집과 가게가 이 터전에서 쫓겨났습니다. 돈을 조금 받았든 넉넉히 받았든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제 고향으로 삼아 뿌리내린 사람들이 제 뿌리를 빼앗겨야 하니까요.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당신 삶터에 깃든 분들은 이 자리, 이웃집 헐린 이 빈터에서 돌을 고르고 흙을 일구어 텃밭을 일굽니다. 텃밭을 일군 한켠에는 빨랫줄을 잇고 바지랑대를 드리웁니다. 텃밭과 바지랑대와 빨랫줄과 빨래가 어우러집니다. 그리고, 제가 다리품을 팔며 인천 골골샅샅을 누벼 보았을 때에 꼭 한 군데에만 남았다고 보이는 ‘애관극장 나무 광고판’이 바로 이곳, 동인천북광장 재개발 터 나무집 바깥벽에 곱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 광고판 또한 언제 사라질는 지 알 길이 없겠지요. 한국 영화사이든, 인천 지역사이든, 무슨무슨 학문을 하거나 문화사랑을 한다는 분들은 이 나무 광고판에 어떤 손길과 숨길이 서렸는지를 헤아려 줄는지요.



41. 인천 중구 전동. 2010.11.10.11:18 + F7.1, 1/50초
42. 인천 중구 전동. 2010.11.10.11:19 + F7.1, 1/50초


 가을볕을 쬐면서 차츰차츰 물드는 골목동네 풀과 꽃입니다. 골목풀과 골목꽃 둘레에 우람하며 튼튼하게 선 나무전봇대는 가을에는 가을빛으로 물듭니다.


43. 인천 중구 내동. 2010.11.10.11:30 + F9, 1/60초

 봄에 이 골목꽃을 본 이라면, 이렇게 누렇게 바래는 잎사귀가 무슨 골목꽃인 줄 잘 알겠지요. 올 오뉴월에는 함박꽃이 흐드러졌고, 사오월에는 매발톱꽃이 아리따웠던 골목집 앞을 십일월에 다시 찾아옵니다. 오래도록 한 자리에 서서 발길을 떼지 못합니다.


44. 인천 중구 내동. 2010.11.10.11:30 + F7.1, 1/60초

 골목개가 맞은편 집에서 컹컹 짖습니다. 건너편 골목집 담을 따라 사뿐사뿐 걷던 골목고양이가 깜짝 놀라며 발길을 멈춥니다. 한동안 가만히 골목개 짖는 소리를 듣더니, 이 골목개가 저한테 달려들 수 없는 줄 깨닫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는 제 갈 길을 갑니다.


45. 인천 동구 송현2동. 2010.11.10.10:58 + F6.3, 1/25초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한낮이 가까워도 볕이 들지 않습니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골목풀잎과 골목빨랫줄이 파르르 떱니다.


46. 인천 중구 전동. 2010.11.10.11:21 + F9, 1/40초

 꽃은 삼월에도 피고 유월에도 피며 구월에도 피고 십일월에도 핍니다. 꽃을 사랑하는 분 눈에는 예쁜 꽃이 언제나 고개를 까딱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비춰, 이 반가운 인사에 마주 인사를 합니다.


47. 인천 중구 경동. 2010.11.10.12:30 + F16, 1/80초

 도시 한복판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에도 어김없이 까치밥이 있습니다. 까치밥이에요. 아파트숲을 이룬 곳에도 감나무가 자라나요? 감나무가 자란다면, 이 감나무에도 까치밥이 남았나요? 골목집 까치밥을 올려다보며 사진 한 장 찍는데, 조그마한 골목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지에 앉습니다. 이리저리 총총 뛰어다니다가 하나를 골로 콕콕 집어서 1/3쯤 먹고는 다시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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